언젠가부터 mbti는 자기소개의 한 부분이 되어 버렸습니다. 첫 만난 사람도,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모두 나의 mbti를 묻습니다. 그것이 정말 나의 유형이 궁금해서인지 아니면 그저 대화의 공백을 채우기 위한 질문인지는 모르겠지만요.
mbti에는 17가지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16가지의 유형 플러스 mbti를 믿지 않는 유형이요. 저는 그 중 17번째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이 성격유형의 구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17번째 유형은 너무 무례해 보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믿지않는 나의 성격유형을 외우고 다닙니다.
나는 내성적이고
나는 감각적이고
나는 사실적이고
나는 계획적입니다.
Istj 라고 말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반으로 갈립니다.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 사람과 상종도 못할 유형이라며 웃어버리는 사람 두 종류로요. 나는 속으로만 생각합니다. istj인데 그래서요?
애초에 사람의 성격을 16가지 틀에 맞춘다는 것이 무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조차도 그 날의 기분에 따라 계획형과 즉흥형이 왔다갔다 하는걸요.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만 주시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의 말실수를 지적하고 선의의 행동으로 한 일에도 공개적으로 나를 저격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싫었습니다.
우리의 관계에 변화는 없었지만 어느 시점 이후 나는 그 사람이 더 이상 싫지 않았습니다. 예민하고 불만이 많은 그 사람의 앞에선 내색하지 않던 사람들이 그가 없는 곳에선 입고 있는 것, 하고 있는 것들을 조롱하듯 비웃는 것을 들은 이후로부터요.
그제야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포장된 자신만을 내놓습니다.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척하다가, 없는 곳에서는 조용히 비웃고 평가합니다. 그런 이중적인 표정들 속에 섞여 있다 보면 그게 자연스러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내가 싫어하던 그 사람의 성격은, 화가 나면 장소와 시간과 상황에 관계없이 내뱉고, 불만이 있으면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그것은 오히려 드문 종류의 솔직함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내면과 겉모습이 거의 같은, 그런 몇 안 되는 소수의 사람.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황에 맞춰 얼굴을 바꾸고, 나 역시도 그 틈에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무엇이 진짜 나일까.
겉으로 보여주는 내가 진짜인지, 마음속에서만 움직이는 내가 진짜인지.
,그 사람 어때?, 라는 평가에 맞추어 나는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내 모습만큼만 보이고 있습니다.
무엇이 더 나쁜 것일까요.
무례한 솔직함과 거짓된 친절함이란.
16가지 성격유형이라는 것은, 진짜 내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적당히 여백을 채워 넣어도 무리 없어 보이는 단순화된 초상화 같은 것일 뿐입니다. 적당히 숨길 수 있는 정도의 유형을 만든 것은, 나를 감출 방법을 주기 위한 마이어스 부녀의 선물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