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함부로 하지 마세요
사람의 성격을 표현할 때 자주 쓰는 수식어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다정함. 친절. 상냥. 예의바름. 모두 좋은 말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고 사랑하고 싶습니다.
아쉽게도 그 한 사람의 내면을 알아보는 것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다정함이라는 표면 아래 욱 하는 모습이 숨어있기도 하고, 예의바른 모습 뒤에 가까운 사람에게 함부로 하는 모습들을 보기도 하니까요.
사람의 내면을, 본성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니면 기계 스펙처럼 숫자로 보인다면 좋겠습니다. 다정함 80/100, 친절 20/100.
다변한 상황 속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의 행동을 수치화하거나 일반화하기는 어려운 일일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보아야 할 것은, 그 사람의 사회적인 모습이 아닌 사적인 모습일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회사동료로서 친절하고 예의있는 사람이 아닌, 연인으로 나를 대하는 모습과 방식을요.
나는 자주 속았습니다. 타인을 향한 그 사람의 모습이 나에게도 같을 것이라고요. 그리고 상처받기를 연속했습니다. 남일 때의 나와 친밀한 사람으로 나를 다르게 대하는 것인지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관계가 달라졌을 뿐, 나는 같은 사람인데도요.
그것은 아마도 정성을 들여야 하는 존재와 그렇지 않은 존재로서의 나, 그 사람에게 내 존재의 의미가 달라졌기 때문이겠죠.
나를 향한 사적인 모습, 나는 그것을 ,정성,이라 명명하고 싶습니다.
정성, 무언가 정성스럽게 빚어내는 행동과 태도라면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정성을 요구할 순 없는 일 같아요. 그건 입력과 출력같은 문제가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정성을 기대하기보단 포기하는 것이 빠를 것 같습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정성스러운 사람일까요?
정성을 들인다는 것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태도를 보여야하는 것일까요.
그 사람과 짧은 대화를 위해 서둘러 집을 향하는 것.
그 사람이 한 말을 곱씹느라 밤잠을 설치는 것.
그 사람을 생각하면 어느새 두세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는 것.
이 정성을 보이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예쁘게 포장한 선물처럼, 나의 마음을 고이고이 포장하면 나의 정성이 보일까요.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나의 어두움을 꺼내면 나의 정성이 느껴질까요.
선물박스 속 물건들을 예쁘게 놓기 위해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합니다. 그렇게 놓인 선물을 받은 사람이, 그 안에 나의 정성이 보인다 합니다.
정성이란 그렇게 넣고 꺼내고를 반복하는 일인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