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있는 만큼의 양보

by lee


독일에서 대중교통을 탈 때마다 흘러나오는 안내문구 중엔 ,Sitzplatz für Notweindgier, 라는 말이 있습니다. Notwendiger,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버스나 지하철에는 ,노약자석,이 있습니다. 이전에는 어르신 또는 장애인들을 위한 자리였지만, 요즘은 임산부, 아동까지도 이 Notwendiger에 포함됩니다.




오랜만에 등교시간에 전철을 탈 일이 있었습니다. 전철 안은 큰 가방을 멘 학생들, 그리고 출근하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운 좋게 자리를 잡았지만 마음이 편안하진 않았어요. 저 무거운 가방을 멘 학생들에게, 혹은 피곤한 몸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때문이었습니다. 때마침 한 할아버지께서 큰 가방을 들고 전철에 올랐습니다. 할아버지는 내가 앉은 자리에서 2m 쯤 떨어져 서계셨어요. 자리를 양보하려 엉거주춤 일어나는 나를 먼저 발견한 할아버지는 괜찮다는 눈짓을 보내셨습니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빼곡한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불편했습니다. 할아버지가 가까이 계셨다면 있는 저 가방이라도 들어드렸을텐데요.




이렇게 버스에서, 전철에서 짐을 들어주는 것이 당연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어릴 때까지는요. 버스를 타면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이 짐을 받아 무릎 위에 올려주곤 했었어요. 엄마의 장바구니도, 내가 멘 책가방도, 가방의 크기나 안에 들어있는 물건, 깨끗함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흔쾌히 다른 사람의 짐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었습니다.

그래서 짐을 들고 버스를 타는 일이 별로 힘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배려가 당연해 지지 않은 요즘, 그때의 그 배려가 얼마나 여려운 것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소지품을 맡겨도 될 만큼 상대를 믿고, 상대의 물건을 내 무릎위에 흔쾌히 올려 줄 수 있는 마음. 그건 작은 마음이 아닐거예요.




양보라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 아프고 지친 내가 앉아있는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힘든 일일거예요. 앉아있는 사람에게 ,일어나, 라고 요구할 수 있는 일도 아닐 것 같아요. 그건 양보가 아니라 강요같거든요.

어떤 이에게는 상대의 짐을 무릎에 올려놓는 것까지도 힘든 일일지 모릅니다. 그 사람의 사정을 우리는 모르니까요.


가끔 Notwendiger 자리에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어릴 적의 저는 그런 장면에 눈살을 찌푸리곤 했습니다. ‘저 자리는 저 사람을 위한 자리가 아닐 텐데’라는 생각 때문에요. 이제 와 돌아보면, 그 생각이 얼마나 편협하고 오만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보이지 않는 사정을 외면했던 나 자신에 대해서도요.




할 수 있는 만큼의 양보를, 줄 수 있는 만큼의 배려를 생각합니다.

Notwendiger를 위해 자리를 비워두는 것.
Notwendiger가 아니어도 자리를 양보하는 것.
자리를 내어줄 수 없다면 짐을 덜어주는 것.
그리고 Notwendiger가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나, 누군가가 짐을 덜어주지 않았다고 해서 쉽게 오해하지 않는 것.

양보는 반드시 눈에 띄는 행동일 필요는 없습니다.
일어나지 못한 채로도, 손을 내밀지 못한 채로도, 우리는 서로를 존중할 수 있습니다.
그저 상대의 사정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 그것 역시 할 수 있는 만큼의 양보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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