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하얗게 빛나며, 다양한 글자를 뱉어내는 모니터 앞에, 한 남자가 서 있다. 그의 눈에는 경악이 서려 있다. 떨리는 손은 결국 핸드폰을 놓치고, 그것은 바닥에 튕겨 한 화면을 보인다. 그 화면 속에는 Artemis라는 말과 그 아래 [연결 중]이라는 말이 떠 있다. 남자의 눈에는 회복되지 못한 충격이 남아 있었다.
마치 기억을 되짚어보듯, 남자의 머릿속에는 다양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이고, 달의 모습이며, 누군가와 통화하던 자기 자신이오, 눈물을 흘리던 자신의 눈방울이었다.
새하얀 달이, 고요하게, 고독하게, 도도하게 밤하늘을 가득 채운다.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한성이라는 이름의 한 남자는 바깥바람을 맞으며 앉지 못하고 서성거린다. 한 손에는 핸드폰이 밝은 빛을 토해내며 누군가와 연결이 되었음을 알린다. 그는 다급하게 수신 허용을 누르고, 전화를 받고 말한다.
“한월아, 안녕?”
“오빠! 미안해. 오늘 연구가 좀 늦게 끝나서 연락이 늦어졌어.”
“아니야, 괜찮아. 이렇게 한월이 목소리 들을 수 있어서 난 너무 기쁜걸?”
“흐흐. 진짜? 다행이다. 오늘 말이야, 달 암석으로 알루미늄 생산해내는 것에 성공했어. 달에 도착한 지 17개월 만에 성공이야. 그거 관련해서 회의하느라 늦은 거야. 이게 아노사이트로부터 산화알루미늄을 추출하는 게 늘 어려웠단 말이야? 다른 이물질이 끼면 안 돼서. 아, 아노사이트가 뭔지 내가 전에 얘기해줬었나?”
“응, 그건 얘기해줬었어.”
“아 그래? 그러면 오늘 진행한 일이 뭐냐하면, 그 아노사이트에서 산화알루미늄을 추출했단 말이야. 그리고 그걸 산소랑 알루미늄으로 분리해냈어. 덕분에 알루미늄도 얻고, 동시에 산소를 생산해냈어. 새로운 산소 공급원을 찾아낸 거야! 이건 정말이지! 대단한……….”
하늘에 뜬 달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한성은 강의실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아련하게도 따스했다. 그의 노트북에는 한 사람과의 채팅이 떠 있었다. 어젯밤 전화로 대화했던 내용이 문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17개월이라는 용어가 눈에 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컴퓨터에 입력했다가, 이내 지웠다. 그의 눈빛에는 알 수 없는 심려로 가득했다.
그때 수업을 하던 교수가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프로젝트 아르테미스라는 말을 언급했다. 이것은 한성의 정신을 깨웠다. 그는 고개를 들어 노트북 너머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 여러분들, 최근에 뉴스 보셨나? 그 한 달 전에 프로젝트 아르테미스가 드디어 달에 착륙했다더군. 17개월인가 18개월인가 전에 실패했던 아르테미스 4 이후로 시행한 건데, 다행히 성공했나 봐요. 그래가지고 이제 달에서 살 수 있도록 환경 구축에 들어가나, 뭐라나. ”
이야기를 듣던 한성의 손은 잘게 떨렸다. 그러나 주먹을 꽉 쥐고는 노트북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열려 있던 채팅을 닫고는 빈 화면을 틀어놓았다. 노트북의 배경 화면에는 한 여성과 공원에서 함께 찍은, 아주 사이 좋은 사진이었다.
“아무튼 꽤 흥미로운 이야기니까 다들 뉴스로 한 번씩 확인해보시는 것을 추천할게요. 오늘 강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교수의 이야기를 다 듣고는 한성은 잠시 창밖을 쳐다보았다. 다른 이들이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잠시 기다렸다가 노트북을 덮고 강의실을 빠져나왔다.
강의실에서 나온 한성은 근처 공원에 가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았다. 그리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과거 기억의 편린들이 스치기 시작했다.
한월이 그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그리고는 따라오라는 듯 재촉한다. 공원에서 뛰노는 그녀의 모습은 매우 느리게, 동시에 매우 흐릿하게 보였다. 공원의 장면들이, 과거 행복했던 기억의 순간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그녀가 핸드폰을 들이밀면서 그에게 이야기했다. 흐릿하고, 느리게, 마치 물속에 가라앉아 들리는 듯한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오빠! 나 합격했어! 최연소 우주비행사가 될 수 있다고! 아르테미스 4에 탑승할 수 있게 되었어!”
모든 것이 몽롱한 세상 속에서 한성은 한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눈빛은, 그의 표정은 한없이 흐뭇함으로 가득했다.
한성은 나무 그늘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기억 속의 그와는 달리, 지금의 그의 눈에는 어떠한 기쁨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펼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마치 금지된 무언가를 검색하려는 듯, 서서히 무언가를 검색했다.
‘아르테미스 IV’
검색창에 입력한 단어, 자동 추천 검색어에는 ‘아르테미스 IV 비극’, ‘아르테미스 IV 탑승자’, ‘아르테미스 IV 한국인’, ‘아르테미스 IV 한월’등이 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눌러야 하는 엔터를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누른다. 로딩된 화면을 가득 채운 것은 아르테미스 IV의 발사 직후 폭발 사고와 관련된 기사들 뿐이었다. 한 기사에는 사고로 인해 탑승 중이었던, 최연소 우주비행사이자 한국인 우주비행사인 한월의 죽음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성은 떨리는 눈으로 기사의 날짜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2028년 4월에 작성된 것들이었다. 그는 시선을 내려 컴퓨터에 떠 있는 날짜를 확인했다.
‘2029년 11월 12일’
그때 한성의 핸드폰이 주머니에서 진동했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Artemis IV [한월]’
그는 수신 버튼을 눌러 전화를 연결하고는 말했다.
“어 한월아…. 왜?”
“그냥……. 갑자기 오빠 생각나서 연결해봤어. 마침 오늘 쉬는 날이라서, 하는 것도 없었거든.”
“그래? 잠깐만.”
한성은 가방을 정리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오빠는 지금 뭐 해?”
“나? 산책 중이었어. 이제 들어가려고.”
그는 상기된 목소리와는 달리, 힘없는 발걸음으로 공원을 빠져나갔다. 둘의 통화 소리는, 서서히 바람에 쪼개져 사그라들었다.
문이 하나 있다. 한성은 말없이 문 앞에 서서 고민하고 있다. 떠올랐던 먼지도 가라앉을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한성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문을 열었다. 그것은 작은 자취방이었다. 마치 방금까지 사람이 살던 곳 같은, 그런 방이었다. 벽에는 다양한, 우주와 관련된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책상에는, 하나의 노트북이 켜져 있었다. 그 화면에는, 마치 AI가 사람의 대화를 대신 만들어내고 있는 듯한 것이 담겨 있었다. 한성은 발걸음을 옮겨 노트북 앞에 서서 가만히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노트북에 알림 떠올랐다.
“#주의# 노트북이 17개월 6일 12시간 12분째 가동 중입니다. 재부팅 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이후 알림은 자동으로 꺼졌다. 한성은 잘게 떨리는 손을 움직여 노트북을 살며시 만졌다. 그의 머릿속에 노트북을 받으며 고마워하던, 한월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한월은 노트북을 받고 매우 기뻐했다. 그러면서 진짜로 자신에게 주는 것이냐며 몇번이고 물어봤다. 그럴 때 한성은 말했다.
“그렇다니까. 너가 너무 대견해서 선물해주는 거야.”
과거의 말을 현재에 와서 잇는다. 한성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 노트북 위에 후두두 흩뿌려진다. 그는 왼손으로 눈을 훔치며, 오른손으로 천천히 노트북의 전원 버튼을 누른다.
‘핏’
일순간 화면이 꺼진다.
“보고 싶다…. 나의 동생아.”
그는 노트북을 덮고는 말없이 그곳에 서 있었다. 그날의 밤에도, 달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