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아이에게 물려줄 유산, 바로 'Good Fit'
부모자녀관계가 왜 중요한지 알아보려면, 먼저 ‘인간관계’의 필요성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고 생각과 감정을 나누며 관계를 맺을까요?
사회적 동물이니까?
가장 간단명료한 답이죠.
한 인간이 탄생하기 위해선 인간과 인간이 만나 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혼자서는 태어날 수도 없고, 살아갈 수도 없는 존재인 거죠.
제 주변에는 사람에게 상처받고 다신 사람 근처에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술이나 독서, 게임’ 등 무언가에 매달리며 사람에 대한 허기를 채우는 경향을 보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호튼 쿨리는 ‘거울자아이론’을 통해 왜 우리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쿨리는 인간의 자아가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생성’된다고 했는데요.
이렇게 형성된 자아를 ‘거울자아’라고 부릅니다.
저희 어머니는 아주 어려서부터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시켰는데, 인사를 해야 하는 대상이 매우 광범위했습니다. 한 번이라도 얼굴을 아는 사람은 당연히 해당되고, 횡단보도에 멈춰서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릴 때 옆에 서 있는 아저씨나 할머니께도 인사를 해야 했죠.
저는 동네에서 ‘인사 잘하는 아이’가 되었고, 마치 선거철의 국회의원처럼 마주치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반가움을 표현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어느 날, 동네에서 어떤 아저씨를 처음 만나 인사를 했더니,
“너 돈 있니?”
라는 예기치 못한 질문을 받았죠.
인사를 하라는 것만 배웠지, 돈을 달라고 했을 때의 반응은 알지 못해 저는 일단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아저씨는 끝내 제 인사는 받지도 않은 채, 돌아서서 갈 길을 갔습니다.
요즘 같으면 모르는 사람이랑은 말도 섞지 말라며 주의를 받았겠지만, 어린 시절 저는 ‘인사 잘하는 아이’라는 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충실하기 위해, 구걸을 하는 아저씨에게조차 먼저 다가가 미소를 지었던 거죠.
저는 ‘인사 잘하는 아이’라는 자아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사람들이 저를 예의 바르고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생각한다고 상상하면서, 사람들의 상상 속의 제 모습을 진짜 나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거울처럼 사람들에게 비친 내 모습이 어떤지 상상해 보고, 그에 맞춰 외모와 태도, 인상, 감정 등을 조절합니다.
이처럼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인식하고 이해하게 되므로, 우리가 어떠한 인간관계를 맺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당연히, 부모인 나는 아이에게 ‘거울’이 됩니다.
저처럼 어머니라는 거울을 통해 ‘예의 바르고 친절하며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나’를 발견하면, 아이는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결국 아이의 자아에는 ‘부모가 아이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반영되어 있는 겁니다.
호주의 디킨 대학과 머독 어린이 연구소의 공동 연구 결과, 어린 시절의 학업성적보다 긍정적인 인간관계가 성인이 된 뒤 삶의 만족도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연구는 총 804명의 아이들을 32년간 추적하여 조사했는데, ‘아동 및 청소년기에 친구와 교사에게 인기가 있었는지, 친구가 없어서 외롭지 않았는지, 부모와 애착관계는 어떠했는지, 취미활동에 참여한 정도’ 등 주로 '인간관계와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도'의 관련성을 알아봤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어린 시절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맺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요.
연구에 참여한 그레이그 올슨 교수는 “어린 시절의 좋은 인간관계는 평생을 두고 지속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예전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제목만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죠.
입시경쟁이 치열한 우리나라에서 행복을 결정하는 요인이 성적이 아니라는 말에 다들 의심을 품었으니까요.
하지만 수많은 연구에서 이 영화의 제목이 맞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한 여러 요인 중 ‘인간관계’가 대표적이라는 것도요.
그런데 돈과 명예, 학벌보다 ‘좋은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믿으시나요?
방송과 뉴스에 나오는 성공한 사람들 중 재산이나, 명예나, 업적이 아닌 ‘인간관계’를 내세운 사람들은 거의 보지 못하죠.
말로는 ‘건강한 관계가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고 하지만, 물밑에선 물질적 성공을 쫓으라며 모순된 메시지를 전달하니까요.
고립・은둔 청년 54만 명... 10명 중 8명, “벗어나고 싶다”
얼마 전 본 신문 기사의 제목인데요. 읽으면서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많은 청년들이 모두 학벌, 직업, 경제력에 대한 불만족 때문에, 고립과 은둔을 선택한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요?
저는 우리 사회가 '관계 자본의 취약성'이라는 매우 중대한 사회적 과제에 직면했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많지만 외롭고, 사회적 지위가 높지만 허무하며, SNS에 행복을 진열하지만 진정한 내 것은 아닌, ‘진정한 인간관계’의 균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죠.
아이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주고 싶으세요?
부모가 자녀에게 공부해서 성공하라고 말하기 전에, 가족과 친구와 건강한 관계를 이루는 게 더 중요하다고 소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아이는 이미 부모인 나로부터 행복을 결정짓는 ‘관계 자본’을 물려받고 있는 겁니다.
부모와 아이 사이 ‘Good Fit(잘 맞는 건강한 관계)’을 위한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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