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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육진심 Feb 28. 2024

'붕어빵'과 '잘 놀라는 쥐'

아이와의 관계가 ‘불안’하거나, ‘행복’한 관계를 꿈꾸는 부모에게


“나한테 해준 게 뭔데?”


아이의 휴대폰에 저장된 가족사진은 모조리 휴지통에 던져진 지 오래고, 그나마 남아있는 사진마저 거칠게 삭제 버튼을 누르는 아이.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내려앉고 망막 가득 눈물이 고입니다. 



그런데, 아이는요?

아이는 기쁘고 행복할까요?


아이 얼굴을 보니 분노와 슬픔이 가득 서려 있습니다. 

마음에 멍이 드는 건 부모만이 아닙니다. 


아이의 내면에선 

‘이러다 엄마, 아빠가 진짜 나를 버리면 어쩌지?’라는 불안과 두려움이 넝쿨처럼 뒤덮고 있을 테니까요 



아이에게 소리 몇 번 지르고 잔소리 좀 했을 뿐인데, 아이가 왜 그런 생각까지 하냐고요?


아이에겐 부모만큼 만만하고 든든한 대상도 없으니까요. 


만만하다는 뜻을 오해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에겐 보이고 싶지 않은 약점처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편안한 사이일수록 경계가 있어야 하는 법인데, 부모가 종종 선을 넘을 때가 있습니다. 


“난 이게 좋아.”

“그게 뭐야? 그것보다 이게 낫지.”


 “나 화나!”

“화가 왜 나? 화내는 건 안 좋은 거야.”


아이가 선택한 것도 틀리고, 아이가 느끼는 것도 틀리고.

자신의 결정과 감정이 존중받지 못하니 아이는 자신감과 자기 확신을 잃어가고, 내면에는 비판적인 부모의 목소리만 가득합니다. 


아이가 무엇을 할 때마다, 내면의 부모가 이렇게 말하지요.


“그건 안 돼. 옳지 않아. 다시 해봐.”


그러다 결국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잘못된 거야”


아이는 자신은 뭔가 부족하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믿게 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부모가 ‘자격 미달’인 나를 버릴 것이라는 불안에 휩싸이죠. 


어른도 상대가 자신을 외면할 것 같으면, 먼저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처럼, 아이가 부모를 밀어낼 때도 같은 심정입니다. 


아이는 이미 버림받을 것 같은, ‘유기 불안’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마지막 남은 자존심으로 안간힘을 쓰며 부모에게 저항합니다. 


난 아빠, 엄마 없어도 잘 살 수 있어.

우리는 이 말의 숨은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난 혼자될까 봐 무서워. 날 사랑하고 아껴줘.

부모도 그러고 싶은데, 가끔 아이와의 관계가 감당하기 벅찹니다. 


비바람에 꽃잎이 지듯 희망도 기대도 없이 멀어지기만 하는 아이와의 관계에 온기를 불어넣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면, 아이와의 ‘Bad Fit(잘 맞지 않는 나쁜 관계)’을 ‘Good Fit(잘 맞는 좋은 관계)’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합니다. 



아이가 맺는 최초의 인간관계인 부모자녀관계는 
아이가 세상에서 맺어갈 모든 관계의 틀이 되니까요.


붕어빵, 겨울철 인기 간식이죠. 틀에 반죽을 넣어 구워내면 똑같은 붕어빵이 줄줄이 나옵니다. 


부모자녀 관계는 ‘붕어빵 틀’과 같습니다. 


아이가 태어나 최초로 만나는 부모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아이는 사람들과 붕어빵처럼 비슷한 관계를 만들어 내니까요. 


‘심리적 지문, 혹은 심리적 지도’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사람마다 지문이 다 다르듯 기질과 같이 유전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심리의 무늬도 개인마다 다릅니다. 

어떤 아이는 예민하고, 어떤 아이는 느리고, 어떤 아이는 순한 것처럼요. 


그러면 이 ‘심리적 지문’은 손가락 지문처럼 평생 변하지 않을까요?

NO!

심리적 지문은 달라집니다. 


행동 후성유전학을 연구한 데이비드 무어는 우리가 살아가는 다양한 맥락과 상황에 따라 
유전 물질이 활성화되거나 비활성화된다고 말합니다. 


그의 저서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에 흥미로운 실험이 있어 소개해 드릴게요. 


'잘 놀라는 쥐'는 어떻게 잘 놀라는 쥐가 되었을까?



생후 10일 동안 새끼 쥐는 어미 쥐에게 보살핌을 받습니다. 

어떤 어미 쥐는 섬세하게 핥아주고 털도 골라주지만, 그렇지 않은 어미 쥐도 있습니다. 


그런데 핥기와 털 다듬기를 적게 받은 새끼 쥐는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유전자를 활성화시키는 단백질이 적게 생산되어 스트레스를 조절하지 못하고 ‘잘 놀라는 쥐’가 되는 거죠. 


문제는 어릴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성장해서도 ‘잘 놀라며 스트레스에 취약한 쥐’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아이가 예민한 기질의 유전적 특성을 갖고 태어났다고 해도, 생애 초기에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심리적 지문’은 달라집니다. 


마치 예민하게 태어난 쥐가 어미 쥐의 민감한 보살핌을 받으면, ‘잘 놀라지 않는 쥐’로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이 원리는 부모인 나에게도 적용됩니다. 

내가 어린 시절 나의 부모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에 따라 지금의 나의 모습도 바뀔 수 있었던 거죠. 


프로이트 역시 생애 초기에 중요한 사람과 가졌던 상호 관계의 양상이
심리적 지도에 흔적처럼 남아 개인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합니다. 

아이의 어린 시절 ‘부모자녀 관계’가 중요한 이유, 이제 이해하시겠죠?


아이와의 관계가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붕어빵’과 ‘잘 놀라는 쥐’를 떠올려보세요.


내가 지금 아이와 이루는 관계가 ‘붕어빵’처럼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맺게 될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의 ‘원형’이 되고, 만약 아이가 나와 건강하지 않은 관계인 ‘Bad Fit’을 맺게 되면, ‘잘 놀라는 쥐’처럼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작은 생각과 감정의 변화만으로도 아이와 나의 '심리적 지문'은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겨울이 겸허하게 봄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계절입니다. 


아이와의 행복한 관계인 'Good Fit(굿 핏)'을 꽃피우기 위한 노력은 계속됩니다. 




사진 출처


https://blog.naver.com/maiisa02/223320823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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