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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육진심 Feb 29. 2024

'마음'도 산후조리 하셨나요?

부모의 마음을 돌보지 않으면, 아이와 'Bad Fit'이 됩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부모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OO 씨, OO 선생님, OO 과장님' 등으로 불리다, 이제 'OO 아빠'와 'OO 엄마'로 불리지요. 


부모가 된 후, ‘대략 난감’을 느끼는 건, 양육서에 나오지 않는 비예측적 상황들이 속출하기 때문입니다. 


사이렌처럼 울리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소방대원처럼 민첩하게 출동하지만, 말이 아닌 울음이라는 언어는 외계어처럼 통역이 어렵습니다. 


부모는 임신을 하고 출산 전까지 아이가 세상에 나와 잘 적응하도록 성장시킵니다. 


엄마의 뱃속에 있지만 아이는 부모의 ‘목소리와 기분, 생각, 행동’ 등에 영향을 받지요. 




태아일 때부터, 아이는 부모와 관계를 맺어갑니다. 


온기 가득한 손길로 배를 쓰다듬으며 아이의 태명을 부르면 아이는 편하고 안전하다고 느낍니다. 


부모의 몸과 마음은 아이를 낳아 키우기 위해 일종의 ‘부모 모드’로 전환됩니다. 


물론 부모가 되는 과정은 즐겁고 유쾌한 것만은 아닙니다. 


체중 증가와 호르몬의 변화, 심리적 부담감 등 아무리 책과 미디어를 통해 공부해도 현실이 되면, 복잡한 감정들에 압도되어 두더지 게임처럼 분노가 튀어나오거나 속절없이 눈물이 흐르기도 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출산으로 인해 소진된 신체를 회복하기 위해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의 마음’은요? 
마음도 산후조리하셨나요?


부모는 신체뿐만 아니라, 마음도 출산의 과정을 겪습니다. 


심리적 출산으로 인해 지치고 혼란스러운 마음도 산후조리가 필요한데, 우리는 이 부분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죠. 



아이가 엄마로부터 세상으로 나오면, 엄마는 아이와 일체감을 느꼈던 심리도 분리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엄마는 약간의 허탈감과 상실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보고 경험하고 생각하며 느끼는 것을 그동안 아이와 공유했는데, 이제는 ‘나 따로, 아이 따로’라는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고, 아이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과 힘을 쏟아야 하니까요. 


출산 전에는 뱃속의 아이에게 “저기 바다 봐. 정말 아름답지. 너랑 같이 와서 엄마, 아빠는 행복해. 너도 그렇지?”라며 경험을 함께 했습니다. 


하지만 한 살이 된 아이를 데리고 바다에 가면, '아이가 바다를 봐서 좋은지, 엄마, 아빠와 함께 와서 행복한지'를 아이의 비언어적 표현을 통해 파악해야 합니다. 



좋아? 안 좋아? 배고프다고? 집에 가자고? 
도대체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를 보고 왜 우는 거야.

산후조리원과 육아용품은 철저하게 준비하면서 ‘심리적 출산’을 대비하는 부모의 수는 적습니다. 


말조차 통하지 않는 아이는 엄마를 통해 모든 욕구를 해결하려 하고, 엄마는 온 힘을 다해 아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느라, 잠시라도 쉬면서 재충전할 내면의 공간이 없습니다. 


산후조리원에 있다고 심리적 돌봄을 받는 것은 아니니까요. 



엄마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만, 신생아기의 아이는 엄마의 마음을 읽지 못합니다. 


부모도 나처럼 생각과 믿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서,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는 ‘마음이론(theory of mind)’은 3세나 되어야 발달하니까요. 


아기는 ‘엄빠 마음’을 이해하지 않는 게 아니라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마음의 산후조리를 하지 못한 엄마가 ‘나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없어.’라는 생각에 슬픔과 좌절에 빠져, 

기저귀를 갈아주지 않고 아이의 울음에 반응하지 않아도, 아이는 그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아이는 원하는 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악을 쓰며 울 것입니다. 


‘마음이론’이 발달하지 않은 영아는 자신의 욕구에만 관심을 보이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니까요. 


아이가 당장 모든 것을 해달라고 재촉하지 않고 “네. 알았어요. 기다릴게요.”라는 태도만 보여도 부모의 짜증과 불안은 가중되지 않겠죠. 


물론 아이도 언젠가는 그렇게 됩니다.

성장하면서 부모와 ‘Good Fit’을 형성하면 말이죠. 

하지만 당장은 아닙니다. 


지금은 아이도 무언가 되어가는 ‘과정의 시간’을 달리는 중이니까요. 



만약 부모가 ‘마음의 산후조리’를 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출산 후 마음을 충분히 돌보지 않았다면, 자녀의 마음에 온전히 관심을 기울일 수 없겠죠. 


마치 수명 다한 배터리처럼 조금만 심리적 에너지를 써도 부모는 마음이 쉽게 방전됩니다. 


‘마음 산후조리’를 하지 않으면 산후우울증과 같은 질병을 겪기도 합니다. 


임신기에는 ‘아이가 뱃속에서 건강하게 잘 클까? 아이를 잘 낳을 수 있을까? 아이를 낳으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등과 같은 걱정에 사로잡히죠. 


이러한 고민은 아이를 출산한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출산 후에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모성과 부성이 부족한 건 아닌지, 육아 지식은 충분한 건지, 물품은 다 구비해 놨는지’ 등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엄마가 산후조리를 하는 이유는 아이를 낳는 과정이 너무나 고되고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몸을 돌보는 일은 당연히 여기면서 마음을 온전한 상태로 바로 세우는 것은 왜 등한시하는 걸까요?


독립된 존재로 살던 부모는 아이와 몸과 마음을 나눠야 하는데, 미처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양육 과정은 혼돈 그 자체가 됩니다.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해 싱크대 앞에서 허겁지겁 먹는 판에 명상을 하며 내면을 들여다볼 틈이 없습니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잠을 자는 편이 나으니까요. 


그렇게 마음의 산후조리는 여름방학 숙제처럼 밀리고 밀려 잊힙니다. 

하지만 마음에 침습한 우울과 불안을 방치하다 보면, 곰팡이가 생기고 결국 부패하고 맙니다. 


마음의 산후조리를 하지 않은 채 아이와 상호작용을 하면, 

생애 초기부터 자녀와 ‘Bad Fit(잘 맞지 않아 건강하지 않은 관계)’을 이룹니다. 


아이가 놀고 싶을 때, 나는 자고 싶고, 아이한테 책이라도 읽어주려 하면 아이는 책을 집어던집니다. 


아이와 주파수를 맞추느라 영끌까지 해서 모은 에너지를 다 쓰고 나면, 육아고 뭐고 다 포기하고 동굴에 들어가 숨고 싶어 지죠. 


아이를 출산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이와의 관계에서 감정적 충격과 소요를 잘 다루어왔는지 생각해 보세요. 


뱃멀미를 하듯 마음이 요동치는데 괜찮다며 꾹꾹 누르고만 있었다면, 이미 마음에 여러 구멍이 뚫려 있을 것입니다. 


내면에 뚫린 블랙홀을 그대로 놔두면,
나와 아이, 모두를 삼켜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방치했던 ‘마음의 산후조리’를 시작해야 합니다. 




사진 출처

https://www.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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