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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육진심 Feb 29. 2024

아들을 보고 웃었더니 “왜 쪼개?”라는 말이 돌아왔다.

부모가 아이와 갈등을 반복하는 이유 세 가지(1)

왜 쪼개?

아빠는 사춘기 아들과의 어색한 사이를 풀고 싶어 미소를 지었을 뿐인데, 아들의 반응이 가관입니다.


“아빠한테 쪼개? 그래, 내가 오늘 너를 반으로 쪼개주마!”     


모처럼 시도한 화해의 제스처는 몸싸움으로 번지고, 엄마는 중간에서 둘을 말리느라 만신창이가 됩니다.    


  

잘 좀 해보려는데 '아이와의 관계', 왜 자꾸 엉망이 되는 걸까요?


부모가 아이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는 이유, 세 가지에 대해 이제부터 하나씩 알아볼게요.    

       


첫째, 부모는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수진 씨는 매우 차분하고 신중한 사람으로 화를 내는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이에게도 다정하게 대했고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며 경청했죠.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화병을 깨뜨렸습니다.

평소 같으면 아이가 다치지 않았는지부터 확인했을 텐데 수진 씨는 깨진 화병 조각을 모으느라 여념이 없었죠.      


엄마가 저리 가라고 소리를 지르자 놀라 뒷걸음치던 아이는 깨진 조각을 밟아 발에서 피가 났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꽃병을 보며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 꽃병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사이가 돈독했냐고요?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어릴 때 아버지와 이혼하고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간 후, 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자 다시 연락해 온 냉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수진 씨는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병간호를 했습니다.

하지만 눈을 감는 순간까지 어머니는 ‘미안하다’는 사과조차 하지 않았죠.      


어머니의 죽음 후, 보석 몇 가지와 약간의 재산, 그리고 어머니가 직접 빚은 꽃병이 남았습니다.

수진 씨에게 어머니는 애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우면서도 증오를 느끼게 하는.      


꽃병은 수진 씨가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분노를 투영할 수 있는 대상이었습니다.

어머니와 유일한 연결고리였던 꽃병이 깨지자, 그동안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던 수진 씨의 어두운 그림자가 밖으로 나와버린 것입니다.      


나답지 않게 왜 그랬지?

수진 씨는 아마 평소 자신과는 다른 모습에 놀랐을 겁니다.      


우리도 누구나 한 번쯤 유사한 경험을 합니다. ‘이건 내 모습이 아닌데...’     


왜 나도 모르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을 갖고 있는 걸까요?     

우리는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지시를 받아,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니까요.


우리의 사고, 정서, 행동은 의식과 무의식의 조합으로 발생하는데, 말 그대로 ‘무의식’은 자각할 수가 없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가 어떤 행위를 했을 때 의식에 해당하는 부분만 알지, 무의식적 동기는 알지 못한다는 거죠. 그러니 나의 행동의 이유를 내가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회 심리학자인 티모시 윌슨은 ‘적응 무의식(adaptive unconscious)’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Wilson, 2021).         



적응 무의식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이 무의식은 우리의 ‘판단, 감정, 사고, 행동’을 발생시킵니다.      


따라서 ‘적응 무의식’이 어떤 생각을 하게 하고, 감정을 느끼게 만들며, 행동을 보이도록 하면, 말 그대로 의식이 아닌 부분에서 조종하는 거니,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고 추론만 할 뿐인 거죠.      


부모가 아이와의 긍정적인 관계를 맺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적응 무의식’이 부모의 판단, 감정, 사고, 행동을 유발할 때입니다. 


부모는 의식적으로 통제가 안 된 것들이 쏟아져 나오니,
자신도 ‘내가 왜 이러지?’라며 당황합니다.   

어떤 부모는 사이가 틀어진 자녀에게 화해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아이를 질책하고 공격합니다.      


“그러니까 네가 버릇없이 안 굴면 아빠가 화를 안 냈지. 아빠가 집에 오면 인사 정도는 해야 하잖아. 너는 게임이 아빠보다 더 중요해?”     


대화하자고 불러놓고, 또 잔소리를 시작합니다.

아이의 말은 듣지도 않고, 아버지의 감정과 생각만 늘어놓습니다.    


아버지는 왜 그러는 걸까요?

  

이 경우, 아버지의 '적응 무의식'은 아이와의 화해보단, 자신이 얼마나 화가 나고 힘든지 아이에게 전달하는 게 목적인 겁니다.

적응 무의식의 통제를 받고 있는 아버지는 아이와 갈등을 반복하는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심러와 핸슨(2023)은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대해 다 아는 듯 행동하지만 사실은 알지 못하며, 어떠한 행동에 대해 이유를 댈 때 거의 조작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합니다.      


“도대체 왜 그랬어?”라는 질문에 우리가 답을 할 때, 그 이유가 거의 조작일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무의식적 동기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죠.      


수진 씨의 사례에서 왜 깨진 꽃병 대신 아이를 먼저 챙기지 않았냐고 물으면, 수진 씨는 선뜻 대답하지 못할 겁니다.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라는 답이 가장 정확할 테지요.      


그나마 나 자신에 대해 가장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이 나인데, 그런데도 내가 왜 아이한테 이런 감정을 느끼고 행동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건, 역으로 아이와의 관계에서 나 자신을 통제하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나도 나를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니 포기해야 할까요?


아니요. 그래서 부모에게 자기를 마주 보고 이해하는 ‘자기 분석’이 필요한 겁니다.   

   

자기 분석에 관한 부분은 차차 알아보기로 하고, 부모가 아이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는 이유, 그 두 번째에 관해선 다음 회를 통해 말씀드릴게요.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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