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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육진심 Mar 02. 2024

부모와 아이의 '진실게임'

아이와의 사이가 마음대로 안 풀리는 이유 세 가지(2)

지난 회에는 부모와 아이 사이에 갈등이 반복되는 이유 중 첫 번째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https://brunch.co.kr/@459430a354354ac/38


오늘은 두 번째 이유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예전에 '진실게임'이라는 TV프로그램이 있었는데요. 혹시 기억하시나요?

참가자들 중 실제로 어떤 직업이나 자격, 능력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이고, 나머진 그 역할을 흉내 내는 사람들인데, 그 속에서 진짜를 찾아내는 내용으로 구성되었죠. 


'진짜 차력사는? 진짜 성우는? 진짜 초등학생은?'

참가자들은 모두 자신이 진짜라며 타당한 논거를 제시합니다. 

결과가 밝혀지고 나면, '저 사람이 진짜라고?'라며 놀라는 일이 다반사였죠. 


내 입장에서 보면, 분명 저 사람이 진짜여야 하는데, 결과가 나의 판단과 다를 때, 어떤 기분이 들까요?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내 입장에서의 진실'때문에, 갈등이 발생하곤 합니다. 


부모가 아이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겪는 이유, 그 두 번째는 바로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발생하는 '진실게임' 때문입니다. 


부모의 자기 중심성으로 인해 아이의 관점을 수용하는데 한계가 있고, 그로 인해 아이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자신이 믿는 진실이 상대에게도 진실일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심지어 전혀 근거가 없는데도 그렇게 믿을 때가 있죠. 


연애를 시작할 때 상대의 문자에서 마침표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내 생각이 상대의 마음일 거라 믿는 것처럼요. 


'문장마다 마침표를 찍다니, 나한테 거리를 두려고 하는 거야? 나와 빨리 가까워 지기가 싫은 거겠지. 친하고 싶었다면 귀여운 이모티콘을 보냈을 텐데.'


이렇게 자신의 입장에서 상대의 생각, 감정, 행동을 평가하는 태도는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특히,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부모는 자신의 정서와 아이의 정서가 일치해야 한다는 '헛된 믿음'을 갖고 있죠.


내가 기분이 나쁘니, 너도 나빠야지. 너 혼자 신나면 되겠니?   
   내가 기분이 좋으면, 너도 좋아야지, 너 혼자 슬프면 되겠니?      


누군가 자신의 기분과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정서적으로 미숙한 이들은 그들이 자신을 무시하거나 외면한다고 여기면서, 관계에 선을 긋거나 반대로 그들의 사소한 행동까지 통제하려 합니다.


정서적으로 미숙한 부모는 '자신의 욕구'를 '자녀의 욕구'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왜곡된 인지적 틀’을 통해 사고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실과 다르게 그릇된 해석을 하도록 '사고의 틀'이 잘못 형성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정서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부모는 다른 사람보다 더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보이는 거죠. 

    

이렇게 되면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의 욕구보다 늘 중요하게 여기는 부모의 왜곡된 생각을 자기 것으로 내면화하고, 아이 역시 왜곡된 인지적 틀을 갖게 되어 인간관계를 맺을 때 '너보다 내가 항상 중요해!'라는 '삐딱한' 자세를 취합니다. 


부모는 A를 하고 싶은데, 아이가 B를 하고 싶다면, 아이보다 성숙한 부모가 아이의 입장에 서서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죠. 


이전에서 말씀드렸듯이, 아이는 상대의 입장에 대해 공감하고 추론하는 ‘마음 이론’이 정교하게 발달하지 않았으니까요.     


이와 비슷하게 발달심리학에서는 다른 사람의 마음, 생각, 느낌, 행동 등을 상대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능력’을 ‘조망수용’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조망’이란 멀리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며 그 상황에 처해 있는 모든 사람의 입장을 바라보는 것을 뜻하고, ‘수용’은 같은 상황일지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거죠.      


이러한 ‘조망수용능력’은 아동기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며 계속해서 발달해 갑니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성인인데도 ‘조망수용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네가 엄마 입장이 되어 봐. 얼마나 속이 상하겠어?”     

다섯 살짜리 아이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인지발달 심리학자인 피아제는 7세 이후가 되어야 조망수용능력이 본격적으로 발달한다고 했으니까요.      


그러니 어린 아동에게는 부모의 마음이 어떤지 직접 알려주는 것이 맞습니다. 

아이는 아직 부모의 입장을 추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아이에게 자꾸 부모의 입장을 이해해 보라고 강요하면, 아이에겐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으로 인한 무기력과 부모의 뜻대로 하지 못하는 죄책감만 쌓일 뿐입니다.      


아이의 발달적 특성을 고려한다면, 자녀와의 관계에선 성인인 부모가 더 많은 이해와 배려를 해야 하는 거지요.      


부모가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면 아이와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사고방식이란 우리가 나 자신이나 주변 세상에 갖는 일련의 신념, 관점 또는 의견이다. 사고방식은 우리가 사물을 판단하고 행동을 선택하는 방식을 결정한다(헥터 맥도널드, 2018).     


부모가 사건이나 대상을 어떤 식으로 보고, 그것을 어떻게 행동으로 나타낼 건지를 정하는 사고방식은  아이와의 관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사고는 행동으로 반영되니까요.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만 집중하는 사고방식을 가진 부모는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는 거죠.                     


한 심리학 실험에 참여한 부부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봤는데요. 
 “당신은 집안일의 몇 퍼센트를 담당하고 있습니까?”
참가자들은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놀랍게도, 부부의 대답을 토대로 일한 양을 합해보니 대부분 100%가 넘었습니다. 
남편과 부인의 입장에서 말한 ‘자신이 하는 집안일’의 정도는 실제와는 달랐던 거죠.   
     

       


헥터 맥도널드는 모든 스토리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기에 그와 관련된 진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진실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아이와 갈등이 생겼을 때 부모와 아이는 같은 상황을 두고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각자가 사실이라고 믿는 진실이 다르니까요.      


“너 자꾸 엄마 몰래 휴대폰 볼 거야?”

“엄마도 계속 휴대폰 보고 통화하고 그러잖아.”

“엄마는 정수기 때문에 알아볼 게 있어서 그런 거지.”

“나도 숙제 때문에 물어보려고 톡한 거야.”

“그것만 한 거 아니잖아.”

“엄마도 쇼핑하고 친구랑 계속 톡하잖아. 엄마는 되고 나는 왜 안돼?”     


아이 입장에서 숙제 때문에 친구에게 문자를 보낸 건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말이 길어진 것뿐이죠. 

엄마도 정수기 AS신청을 하려고 휴대폰을 보고 통화를 했던 것이 사실이죠. 그러다 우연히 쇼핑앱에 들어가서 물건을 샀을 뿐이고요. 


아이에게 엄마는 필요해서 휴대폰을 사용하고 자신은 놀기 위해 휴대폰을 사용했다는 엄마의 생각을 무조건 수용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아이의 입장에서 그건 진실이 아니니까요. 

반대로 엄마는 아이가 친구랑 수다를 떨기 위해 숙제 핑계를 댄 것이라고 믿는 거죠.    

   

이렇게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선 수많은 진실이 경합하며 아이와의 관계에서 갈등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조망수용능력’이 중요한 겁니다.


부모는 아이보다 더 멀리서 바라보며, 아이와 나의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이와 자주 의견 차이가 발생한다면, 아이 입장에서의 진실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나에게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아이에겐 거짓일 수도 있으니까요.      

부모가 아이와 갈등을 겪게 되는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다음 회에서 말씀드릴게요.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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