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사이가 마음대로 안 풀리는 이유 세 가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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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욕구가 어떤 방해 요인에 의해 충족되지 못한 채 남아서 반복적으로 삶에서 문제를 일으킬 때, 이를 ‘미해결 과제’라고 부릅니다.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프리츠 펄스는 미해결 과제가 있으면 신체적 심리적인 증상을 통해 해결하라는 압박을 계속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인생은 끝없는 미해결 과제의 연속이고, 한 가지 상황이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나기 때문에, 충족되지 않은 욕구로 인한 미해결 과제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죠.
혹시 아이와 특정 상황에서 자꾸 부딪치는 일이 발생하진 않나요?
아이가 하는 말이나 행동 중에 유독 가시처럼 마음에 걸리는 게 있나요?
'아이가 다른 부모랑 나를 비교하거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칭찬하거나, 소소한 거짓맛을 하거나, 비웃는 태도를 보이거나, 아이의 얼굴에 그늘이 지기만 해도'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민다면, 아이의 말이나 행동과 연결된 나의 내면의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아이가 한 말과 행동 때문이라기보다 그것이 건드는 '나의 상처'가 원인이 돼서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겁니다.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내면의 과제는 개인마다 또 과제마다 다르게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칭찬보다 지적을 많이 받으며 자란 부모는 자신에게 보이는 상대의 호감에 적대감을 표시하기도 하는 거죠.
‘무슨 꿍꿍이가 있길래 나한테 좋은 말을 하지? 뭔가 수상해. 저런 사람은 가까이해선 안 돼.’
누군가 순수한 마음으로 나의 장점을 언급해도 그대로 받지 않고 스매싱을 날려서 던져버립니다.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아이와의 사이에서도 서로 인정과 칭찬을 주고받으며 긍정적인 자기 개념을 형성하고 자존감을 증진할 수 있는데도, 어린 시절 인정받지 못한 미해결 과제 때문에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이것이 한 번이 아니라 수백 번, 수천번의 기회였다고 가정해 보세요.
만약 내가 그런 기회를 상실하지 않았다면, 나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우리의 마음은 마치 물처럼 유동적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의 내면은 밀도가 강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지요.
마음은 심리적 평형을 유지해야 삶에서 주어지는 여러 과제를 해결하며 살아갈 수 있는데, 밀도가 높은 사람은 누가 돌을 던져도 금방 안정을 되찾지만, 밀도가 낮은 사람은 가벼운 입김만으로도 마음이 요동을 칩니다.
부모가 지속적으로 자녀의 욕구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아이는 어린 시절을 떠올릴 때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집니다. 문제는 성인이 되어서도 아동기의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껴안고 있는 것이 오히려 익숙하고 편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정말 이상하죠?
불행한 경험이 많으면 좋은 생각을 자주 해서 자신에게 부족한 긍정적인 정서를 느끼게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슬프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만들어내 어린 시절에 느낀 나쁜 감정 옆에 있으려 한다는 겁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행복하지 않은 게 익숙하니, 스스로 행복할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혹시 나는 '즐거움에 대한 혐오 반응'을 보이며,
불행에 중독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세요.
피퍼와 피퍼(2023)는 이것을 ‘즐거움에 대한 혐오 반응’이라고 부르는데요.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오면 다시 불행을 만들어내서 내적 안녕을 깨뜨린다는 겁니다.
어떤 분야에서 크게 성공했는데도 약물이나 우울 등에 빠져 자기 패배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신 적이 있죠?
블록을 멋지게 잘 쌓아서 누군가 “잘했네. 멋지다.”라고 칭찬하면 갑자기 “아니야!”하면서 블록을 무너뜨립니다.
아이는 칭찬을 받은 적이 별로 없습니다.
열심히 해도 “그게 뭐니? 더 잘해봐.”라는 말을 듣거나 자신이 뭘 하는지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무언가를 이뤄내도 잘한 건지 아닌지 알지 못한 채 눈치를 보며 자랐을지도 모릅니다.
어린 시절 부정적인 경험이 쌓이다 못해 즐거움보다 불행이 익숙하게 느껴지고 행복하지 않은 상태가 되어야 내적인 안녕을 경험한다면, ‘불행에 중독’된 것이죠.
이 아이는 미해결된 과제를 떠안고 성장할 겁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누군가 자신을 칭찬했을 때 기분이 나빠지는 이유를 알지 못하면 상처만 반복하겠죠.
매일 아이의 내면은 일기처럼 부모와 일어난 일들을 기록합니다.
아이가 어릴수록 더 자세히 새겨놓고 그것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요.
'오늘은 엄마가 나를 보고 친절하게 미소 지으며, 잘했다고 말했다. 기분이 좋았다. 엄마한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내가 자랑스럽다.'
꼬박꼬박 매일매일 성실하게 작성된 마음의 일기는
아이의 자아가 되고 자존감의 바탕이 됩니다.
자존감이 낮으면 당연히 관존감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 미해결 문제로 인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성인이 되어 나를 존중하고 이해하주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며 건강한 관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면, 배우자와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겠죠.
이때 '관존감'이 생기는 겁니다.
아직 내 자존감은 약하지만,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관존감으로 인해, 나의 자존감도 탄력을 얻게 되고 조금씩 강해집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미해결 과제가 있습니다.
인식하지 못하거나 무시 혹은 부정할 뿐입니다.
미해결 과제는 의식적으로 숨기려 해도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무의식적 동기에 의해 나타나기 때문에 통제하거나 다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삶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나의 미해결 문제가 아이와의 갈등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나의 부모가 짜증이나 화를 내면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면, 나는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다른 사람과 갈등이 생기면 머릿속이 백지가 되어 무기력함을 느끼는 어른으로 컸을 겁니다.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자녀의 감정도 수용하기 힘들 테니까요.
또한 나의 부모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수동적인 태도를 보였다면, 나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란 나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수용받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미해결 과제를 떠안게 된 거죠.
물론 나의 '미해결 문제'에 부모와의 관계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개인의 기질과 성향에 따라 같은 상황도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니까요.
예민하거나 까다로운 기질의 아이는 단 한 번의 부정적 경험에도 심리적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하고 느린 기질의 아이는 한두 번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다고 해서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있죠.
하지만 여러 심리학자가 주장하듯 성장하며 다른 사람들과 건강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맺으면 미해결 과제가 해결되기도 하고, 반대로 부모와의 관계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더라도 성장하며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미해결 과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내면에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경험은
미해결 과제가 되고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자녀와의 관계에서 원인 모를 갈등이 계속 발생할 수 있으므로,
가능한 빨리 알아차려서 해소해야 합니다.
부모도 자식에게 서운하고 미운 감정이 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건강한 부모라면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일시적으로만 느끼고 자식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겠죠.
하지만 나의 부모와의 관계에서 부정적인 피드백에 너무 자주 노출된 채로 성장했다면, 비난과 모욕적인 언행을 했던 부모의 모습이 나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자녀와 관계를 맺게 됩니다.
결국 나의 부모와 제대로 화해하지 못한 과제 때문에, 자녀에게 왜곡된 감정과 생각을 투영하여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거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모습으로 부모다움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있나요?
아니면, 어린 시절 싫고 두려워하던 나의 부모를 따라 하고 있진 않나요?
무엇이 잔잔한 호수에 파장을 일으키는지만 알아도 호수는 안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펄스의 말대로 미해결된 과제는 끝없이 외부로 자신을 드러내기에, 관심만 가지면 생각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지요.
미해결 과제를 직면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모른 척했어요.”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요.
정교하게 설계되어 나를 이뤄가는 요소들이 아무리 미세할지라도 조금씩 자리를 이탈하면서 자기 개념과 자아정체성에 영향을 주는데 모를 수가 없죠.
하지만 뭐가 잘못됐는지는 우연히 나를 쳐서 넘어뜨리는 거센 바람을 만나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이들은 삶의 고비를 넘기고 충분히 성숙해진 후에, 갑자기 불현듯 찾아오는 불안과 분노에 직면합니다.
그동안 온 힘을 다해 관리해 오던 미해결 과제가 ‘친구와 커피를 마시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오다, 남편이 벗어놓은 양말을 정리하다, 혼자 남은 반찬에 밥을 먹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이 터져 나오는 거죠.
나의 미해결 과제는 무엇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아이는 부모가 해결하지 못한 밀린 숙제를 대신하느라 불행을 친구처럼 옆에 두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나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떠안고 나처럼 성장하지 않도록,
왜 나는 내면의 안녕을 유지하지 못하고
아이와 갈등을 반복하는지 나에게 질문해 보세요.
때로는 현명한 질문만으로도 해답을 얻곤 하니까요.
나와 아이와의 'Good Fit'은 그렇게 작은 시도와 변화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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