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부모가 ‘불안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한 몇 가지 방법들
손톱을 물어뜯어서 손톱깎이로 깎을 필요가 없었거나
가만히 앉아있으면 답답하고 초조해서 계속 움직이거나
화장실에 있다가도 작은 소리만 나면 깜짝 놀라 변비에 걸리거나
애착인형을 빨기만 해도 울음을 터뜨리거나
혼자서 하려던 일을 누군가 도와주면 갑자기 화를 쏟아내거나
처음 해보는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고 강하게 거부했다면
그 불안은 어디에 있나요?
나에게 아직 남아있다면, 불안에서 분리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불안한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이들의 주요한 정서는 ‘불안’이죠.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을 떠올려 보세요.
아이를 낳은 기쁨과 행복뿐만 아니라 아이를 잘 키울지에 대한 불안과 걱정도 동시에 경험하지 않았나요?
우리는 찰나 같은 순간에도 '다양한 감정'을 동시에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안한 사람은 이런 감정이 표면으로 드러나지 못하게 에너지를 쏟습니다.
왜냐면 전에도 말했듯이 불안이라는 감정은 내가 편안해지는 걸 못 견뎌하거든요. 물론 진짜 목적이 그것만 있는 건 아닙니다. 불안의 진짜 목적에 대해서는 글의 말미에 설명드릴게요.
불안은 끊임없는 걱정과 근심, 두려움과 초조 속에 나를 가두고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통제하기에, 불안한 부모는 여러 감정들이 동시에 올라오면 이를 처리하지 못하고 억누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대화 중 상대가 잠시만 다른 곳을 응시하거나 자신에게 조금만 집중하지 않아도 기분이 상해 관계 종료 버튼을 누르기도 합니다. 상대의 관심이 자기에게만 향하기를 원하는 통제 욕구 때문이죠.
불안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공격적인 수단을 동원합니다.
아이가 자신의 말대로 하지 않으면 초조해져서 아이를 다그치게 되고, 아이가 내가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도 쉽게 좌절하며 자신과 멀어질까 두려워하는 부모라면, 나의 불안으로 인해 아이와의 건강한 관계 형성에 방해를 받고 있는 겁니다.
문제는 불안한 부모에게 자란 아이도 불안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지는데 부모는 아이의 불안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을 닮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쉽게 실망하고 포기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니 어디서부터 아이와의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지 모릅니다.
“엄마가 불안해서 너한테 같은 지적을 반복했어.”
“아빠가 불안해서 너를 믿지 못하고 간섭했어.”
아이는 부모가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보며 자신의 불안도 들여다보게 됩니다.
우선은 나의 불안을 인정하고 그 속에 감춰진 여러 감정들을 만나야 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다른 감정들을 접하지 못했다면, 아이가 나와 나누는 감정도 고작 ‘불안’뿐이었을 테니까요.
불안한 부모는 ‘끊임없이’ 자녀의 삶에 개입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나 보호’라고 믿는 잘못된 신념에 빠집니다. 아이와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관심은 지적과 조언으로 이어지고 결국 갈등만이 남게 되죠.
아들러는 아이가 한 번 지나친 애정에 중독되면 사랑에 대하 욕구가 과도해지고 결과적으로 애정 과잉 속에 한 사람이나 몇 사람에게 완전히 매달려 그들이 자기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참지 못하는 아이로 자란다고 말합니다(Adler, 2016).
지금 당장 아이의 특정한 행동과 습관을 바꾸는 것보다 중요한 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현재의 경험 아닐까요?
아이는 잘못된 행동을 지적받으며 ‘왜 나는 맨날 잘못만 하는 걸까?’라는 생각에 빠진 순간보다, 부모와 눈을 맞추고 창문에 매달린 거미 한 마리를 보며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 순간을 더 잘 기억할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불안을 내려놓고 ‘혼자서도 편안하게 있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하죠.
위니콧은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은 누군가와 함께 하면서도 각자 온전히 홀로였던 경험에 근거하며, 이런 경험이 충분치 않으면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은 발달할 수 없다.’고 설명하는데요.
불안한 부모가 누군가 의지할 대상이 없이 혼자서도 괜찮게 잘 지낼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나 아이의 영역과 개별성을 존중하는 바탕이 됩니다.
혼자 있어도 불안하지 않다는 건, 다른 사람이나 물건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챙길 수 있는, 다시 말해, 나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힘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부모는 부모만의 공간과 시간을, 아이는 아이만의 공간과 시간을, 누릴 자격과 권한이 있죠.
서로에게 정서적으로 융합되어 조금만 분리되어도 불안해지는 부모와 아이 사이에는 ‘자유와 쉼을 위한 틈 벌리기'가 꼭 필요합니다. 그래야 아이도 부모와 분리되었을 때, 홀로 온전히 있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으니까요.
아이가 '혼자 있는 시간과 혼자 있는 공간, 혼자만의 감정과 혼자만의 생각, 무엇보다 이것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나의 불안이 막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보세요.
: 불안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올가미는 강해집니다. 처음에는 불안을 수용하며 잠시 그 상태를 견뎌내는 과정이 필요하죠.
: 숫자를 세는 것만으로도 부정적 정서로부터 쉽게 격리된다는 연구들이 많은데요, 여기에 신체적으로 긴장을 완화시키는 행동을 통해 불안의 강도를 낮출 수 있습니다. 천천히 숫자를 세며 자신의 ‘손, 팔, 다리’ 등을 어루만지는 동안 감각의 전환이 일어나 위로와 안심과 같은 새로운 감정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이 생깁니다.
: 불안이 감당할 수준을 넘으면 공포와 분노로 돌변합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각과 감정을 전환하기 위해 잠시 공간을 이동하는 것도 좋아요.
: 누구나 심리적 안식처가 되는 경험이나 장소, 대상 등이 있지요. 그것을 떠올리며 불안이 내 안에서 흘러 나가도록 유도해 보세요.
: 지금 나를 둘러싼 불안은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마음속으로 파도가 밀려왔다 사라지는 연상을 하며 불안이 지나간다는 것을 기억해 보세요.
: 불안이 몰려와도 상대와의 관계에서 나의 책임과 권리를 회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아이와의 사이에선 더욱 그렇죠. 상대가 나의 불안을 자극한다고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는 겁니다. 나는 이 만남을 스스로 선택했고 그러므로 더 나은 관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능력과 힘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 상대가 나의 감정과 상태를 공유하지 않고 자신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만 늘어놓는다면, 정직하게 불안에 대해 털어놓는 것도 좋습니다. 만약 나의 불안을 무시하거나 나누기를 꺼려한다면 상대와 계속 만나는 것을 고민해 봐야겠죠.
: 누군가를 만날 때 계속 불안이 느껴진다면, 그 원인을 따라가 보게 되고 이러한 과정에서 나를 더 잘 들여다보게 됩니다. 그동안 불안에 떠는 나를 방치하고 외면했다면, 불안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불안도 나의 일부입니다.
불안의 진짜 목적은 무조건 나를 파괴해서 못쓰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바라보는 용기'일지도 모릅니다.
불안한 아이에서 불안한 부모가 되었다면, 불안과 분리될 시간입니다.
오랫동안 나의 단짝이었던 불안을 보내기 어렵더라도
'너를 통해 나는 나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됐어. 이제 너 없이 아이와 만나고 싶어.'라고 매일 나에게 말해보세요.
그러면, 불안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은 날이 찾아올 테니까요.
참고문헌
Adler, A. (2016). 아들러의 인간이해(홍혜경 역). 서울: ㈜을유문화사.
Winnicott, D. (2000). 성숙과정과 촉진적 환경. 한국심리치료연구소.
사진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