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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육진심 Apr 14. 2024

아빠의 커밍아웃,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죠?

부모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 영화 ‘나의 EX’가 답하다

오늘은 대만영화 ‘나의 ex’를 통해 아이의 눈으로 부모의 세계를 들여다보려고 하는데요.


영화 초반부터 시작되는 주인공 쑹청시의 내레이션이 강한 인상을 주네요.


우선, 뭐라고 하는지 들어볼까요?



어른은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생물이다.
자신들이 꾸며 낸 이야기로 비밀을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쁜 사람들이 보험들 때문에 우리 아빠를 죽였다고 한다.

멍청하기는.
사실, 난 진작부터 아버지가 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고등학생인 쑹청시의 아버지는 95일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쑹청시는 아버지의 죽음보다 아버지가 게이라는 사실에 더 화가 납니다.



도대체 이런 아버지를 어떻게 이해하라는 건가요?


류싼렌은 쑹청시의 엄마입니다.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남편의 불륜 상대를 찾아가죠.

남편의 사망보험금 수익자가 아들이 아니었으니까요.


쑹청시는 돈을 내놓으라며 소리를 지르는 엄마가 부끄럽고 싫습니다.


도대체 이런 엄마를 어떻게 이해하라는 건가요?


학교에서 친구들과 싸움을 한 쑹청시는 정신과 의사에게 심리상담을 받게 되는데요.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의사의 말에,

“불륜남과 불륜녀 중 누가 이길까요?”라는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지는 쑹청시, 과연 무슨 뜻일까요?


쑹청시는 엄마인 류싼렌을 ‘불륜녀’라고 부릅니다.

외도를 저지른 건 아버지인데, 왜 엄마를 이렇게 부르는지 아들의 이야기를 더 들어볼게요.

쑹청시는 엄마와 밥을 먹을 때가 가장 싫다고 말합니다.

끊임없는 잔소리와 신세 한탄, 자신에 대한 너무 큰 기대, 엄마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보상심리가 봇물 터지듯 나오는 시간이니까요.


그런데 남편이 외도를 저지른 상대가 남자라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감당하기 힘든 충격을 받게 되면 우리의 시각은 좁아집니다.

상대방의 잘못에만 초점을 맞추며 상대방이 잘한 부분은 무시하는 거죠.

이러한 현상을 ‘선택적 주의’라고 하는데요.


쑹청시의 엄마인 류싼렌은 동성애자라는 사실만으로 남편이 그동안 자신과 아들에게 대해준 따뜻함과 친절함, 가장으로서 성실한 태도 등을 간과한 채, 파렴치한 변태라고만 생각하죠.


이러한 태도는 아들에게도 적용됩니다.

갑자기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한 아들이 어떻게 공부에 집중하고 성적을 올릴 수 있을까요?


매일 학교에 가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아들의 노력은 인정하지 않고, 잘못한 점들만 들춰내며 불평하니, 아들은 편하게 밥조차 먹을 수가 없는 거죠.


엄마는 비싼 사립 중학교에 다니면서 성적이 오르지 않는 이유를 알아야겠다며 아들의 학교에 찾아가겠다고 합니다.


그때 아들이 한 마디 하죠.


"학교 오지 마, 창피해."


"다시 말해봐. 누가 창피해?"


엄마는 참았던 울분을 아들에게 터뜨리고 맙니다.


"네가 성적이 엉망이라 네 아빠가 널 안 보려고 한 거야."


끝내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내뱉고 만 엄마는 분노와 설움에 차서 통곡을 하네요.


"내가 너 키운다고 얼마나 고생하는데, 왜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어주지 않는 거야."

류싼렌이 이렇게까지 아들을 잘 키우는 일에 매달리는 이유는 내면을 잠식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녀에겐 '두 가지 두려움'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남편을 잃은 후, 아들마저 자신을 떠나버릴지 모른다는 불안이고,

두 번째는 아들이 잘못 클 경우, 사람들이 남편이 자신을 떠난 이유가 그녀의 책임이라며 비난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죠.


'아들도 저렇게 자란 걸 보면 분명 저 여자한테 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 그러니 남편도 집을 나갔지!'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실제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이 영화처럼 상영됩니다.

아들마저 자신을 떠나버리고 난 후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비웃으며 손가락질하는 장면이 반복 재생되는 거죠.


이렇듯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자신을 통제하게 됩니다.

류싼렌처럼 완벽한 엄마가 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거죠.


완벽주의자는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보다 잘못된 행동을 할까 두려워한다고 심리치료사인 베리와 베이커는 말합니다.


류싼렌이 왜 그렇게 쏭청시에게 집착하며 훌륭한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쓰는지 이제 아시겠죠?


잠깐 나를 한번 돌아보세요.


혹시 완벽한 아버지, 완벽한 어머니가 되기 위해 일과 가사, 양육과 교육, 인맥 관리와 취미생활까지 철저하게 관리하며 살고 있진 않나요?

그렇다면 나의 이면에 자리 잡은 두려움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부모인 나는 무엇이 두려워 이렇게 모든 면에서 완벽해지고 싶은 걸까요?


류싼렌은 아직까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사진과 편지, 아빠가 사준 시계를 보관한 상자마저 마음대로 치워버리죠.


결국 쑹청시는 집을 나옵니다.

그리고 불륜남 가오위제를 찾아가죠.


연극배우이자 연출가인 그는 예산이 부족해 오토바이를 팔면서까지 지금 준비 중인 ‘행복한 휴가’라는 연극을 꼭 무대에 올리고 싶어 하는데요.


가오위제의 집에 있는 쑹청시를 찾아온 엄마는 아들을 데리고 가려 하지만, 아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남겠다고 고집을 부립니다.

그렇게 둘의 동거가 시작됩니다.


어느 날 가오위제는 보험사에서 전화를 받습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쑹정위안, 즉 쑹청시의 아버지가 보험금을 그에게 남긴 거죠.

그는 충격에 빠집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요.


왜 쑹정위안은 아내도 아들도 아닌 그에게 돈을 남긴 걸까요?


쑹청시는 아버지의 삶이 궁금해집니다.


아버지와 가오위제는 17년 전 '행복한 휴가‘라는 연극을 처음 공연할 때, 스텝과 음향감독의 관계로 만났습니다.

둘은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견딜 자신이 없었던 쑹청시의 아버지는 평범한 삶을 살겠다며 가오위제를 떠나죠.


아, 쑹청시의 아버지는 엄마인 류싼렌을 만나기 전에 이미 가오위제와 사랑에 빠졌었네요.

그래서 엄마를 불륜녀라고 부르는 거군요.


하지만 그 이유만으로는 뭔가 부족합니다. 엄마를 이렇게까지 비난하는 이유는 뭘까요?


가오위제와 있겠다는 아들을 찾아온 류싼렌은 아들의 옷가지와 책을 집 앞에 던져놓고 갑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쟤는 쑹청위안의 아들이야. 최소한의 양심은 있겠지.
내일 아침 6시에 깨워서 학교 보내.
가방에 도시락 있어. 밖에서 튀김 사 먹지 마. 몸에 안 좋아.
그리고 네 몸은 네가 잘 지켜!


비록 거칠고 투박한 언어로 표현될지라도 그 안에 담긴 엄마의 마음이 사라지진 않죠.

쑹청시는 그런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그리움, 엄마에 대한 원망과 미안함,

아들은 양가적인 감정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맙니다.


청소년기인 쑹청시는 '외적인 말'보다 '내적인 말'이 익숙합니다.


쑹청시처럼 청소년기 아이들은 입 밖으로 내뱉는 ‘외적인 말’은 줄어들지만 마음속에서 말하는 ‘내적인 말’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죠.


아이의 내면에선 ‘나는 왜 태어났나. 세상을 왜 이런 곳인가. 친구는 왜 필요할까. 우리 부모는 왜 날 낳았을까’와 같이 복잡한 생각들을 자신만의 언어로 정련해 갑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쑹청시의 내레이션으로 인물과 배경, 사건을 설명하죠.

쑹청시가 밖으로는 하지 않는 내면의 말들을 고스란히 들어볼 수 있게요.


이 시기의 아이들은 이렇게 내적인 언어로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며, 나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게 됩니다.

정체성이 확고해지는 거죠.


그러니 이때 자신의 주변 사람들과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갖는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가오위제는 쑹청시에게 자신이 아버지를 어떻게 만났고 언제 사랑에 빠졌으며 아버지가 왜 쑹청시를 떠났는지에 관해 말해줍니다.


쑹청시의 아버지는 암에 걸려 시한부 선고를 받자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자신이 오랫동안 사랑하고 그리워한 가오위제와 보내고 싶었습니다.


가오위제는 마침내 자신에게 돌아온 쑹청위안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합니다.

간이식이 필요한 쑹청위안을 위해 엄청난 금액의 사채까지 빌리죠.


쑹청시는 가오위제와 자신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오위제도 진심으로 아버지를 사랑했으니까요.

오히려 엄마의 사랑이 가짜 같다고 느끼죠.


가오위제는 쑹청시에게 묻습니다.


"아빠가 집 나와서 화났지? 우리 아빠가 다른 남자 때문에 나랑 엄마를 버렸다면 화났을 거야."


그러자 쑹청시가 말합니다.


"엄마가 얼마나 불쌍한 사람인 줄 알아요?"


쑹청시는 아버지가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집을 나가 화가 난 자신보다 엄마가 더 불쌍하다고 말합니다.

아들은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었습니다. 싫어하는 것도 아니죠.

다만 엄마가 자신이 살고 싶은 삶과 다른 삶을 강요해서 힘든 것뿐이었습니다.


아이가 왜 부모의 삶을 이해해야 할까요?


정신과 의사인 유스케는 부모의 역사를 알게 되면, ‘그래서 이랬던 거구나’라는 새로운 관점이 생기며, 부모의 행동을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쑹청시가 자신의 엄마를 불쌍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엄마가 어떤 인생을 살았을지 생각해 봤기 때문이죠.


그럼, 이제 엄마와 아들은 화해하게 되는 건가요?


류싼렌은 우연히 가오위제의 어머니를 만납니다.

가오위제의 어머니는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류싼렌을 여자친구로 오해하는데요.


그녀는 정작 가오위제의 어머니는 사실을 모른 채 자신과 아들만 고통과 수치심에 빠진 것에 분노를 느낍니다.

류싼렌은 가오위제를 찾아가 3일 안에 보험금을 내놓으라고 독촉하죠.

아니면 그의 어머니에게 모든 걸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면서요.

그녀는 자신도 어머니이기에 가오위제의 어머니가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마주하면 얼마나 큰 충격을 받고 상실감에 빠질지 잘 압니다.


억울함에 소리치는 엄마를 본 쑹청시는 왜 그렇게 돈을 밝히냐고 묻습니다.  


보험금 때문에 아빠랑 결혼했냐며, 왜 당신이 내 엄마냐며 엄마의 영혼을 조각내는 말들을 내뱉고 말죠.


아들은 엄마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쑹청시는 잘못 알고 있습니다.


엄마는 돈 때문에 아빠와 결혼한 게 아닙니다.

엄마는 아빠라는 한 남자를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자신을 잃을 정도로 분개하고 있다는 게 바로 그 증거죠.


그녀에게 보험금은 단순한 돈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남편이 목숨값인 그 돈을 가오위제에게 남겨 줬다는 건, 자신과 아들보다 그를 더 많이 사랑했다는 의미죠.

그녀는 그 사실을 참을 수가 없는 겁니다.


류싼렌은 쑹청시를 통해 가오위제가 사채를 쓴 이유와 남편이 자신을 만나기 전 이미 가오위제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 오랜 시간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과, 마지막 남은 시간을 평생 자신만을 기다린 가오위제와 함께 보내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죠.


그렇게 류싼렌과 쑹청시는 남편이자 아버지의 인생으로 들어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함께 바라봅니다.

쑹청시는 동시에 어머니의 삶도 엿볼 수 있었죠.


이제 엄마가 왜 그렇게 자신에게 기대하고 집착하면서 잘 키우려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만약 아버지의 충격적인 비밀을 알게 되면, 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모는 아이의 삶에 일일이 끼어들면서 정작 아이가 알고 싶어 하는 정보는 숨깁니다.


부모가 이혼을 하거나, 갑자기 경제적 사정이 안 좋아져 이사를 하거나, 아버지나 어머니가 외도를 저지르는 등 아이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에 대해 자세히 말하지 않고 ‘애들은 몰라도 돼.’라는 태도를 취하죠.


엄마와 아빠는 이혼할 거야.
우린 다른 곳으로 이사 갈 거야.
아빠는 일이 있어서 한동안 집에 못 올 거야.
와 같이 아이는 그저 결과만 통보받으면 되는 건가요?


아이가 부모의 삶을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이해하나요?


아이가 알면 창피할까 봐, 아이가 알면 속상해할까 봐, 아이가 안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 아이 앞에서 부모의 인생을 꽁꽁 감추면, 아이는 올바로 부모를 바라보는 눈을 갖지 못합니다.


쑹청시처럼 아빠는 다른 남자를 사랑해서 자식을 버린 파렴치한 인간으로 생각하고, 엄마는 돈밖에 모르는 몰상식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죠.


자녀 앞에서 나의 치부를 드러내고 솔직해지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힘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힘의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영역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부끄럽거나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없는 힘을 마치 있는 것처럼 가장하면, 쏭청시와 부모와의 관계처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밀어내게 됩니다.


부모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그걸 안다고 해서 부모에 대한 사랑이 작아지는 건 아닙니다.

순간 실망하고 어쩌면 부끄러워할 수도 있겠지만, 아이는 부모가 실패를 겸허히 인정하는 걸 보며 인생에서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건전한 시각을 갖게 되죠.


자녀가 부모의 삶을 이해하면, '우리'라는 소속감이 더 강해집니다.


부모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깨닫게 되는 건, 우린 모든 것을 혼자 해낼 수 없는 존재라는 겁니다.

나의 부모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그때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으며, 그래서 실패를 부끄러워하며 거짓으로 힘을 가진 것처럼 살아왔을지도 모르죠.


쑹청시의 아버지가 오랫동안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숨겨온 것처럼요.


아버지가 이혼을 하는 이유와 앞으로 어떻게 가족이라는 관계가 변형될 것인지 아들에게 충분히 설명했다면, 아마 이들은 더 견고한 '우리'가 되었을 겁니다.


부모가 묻습니다.


자녀도 부모의 삶을 이해해야 하나요?

영화 ‘나의 EX’가 답합니다.


자녀가 부모의 삶을 알지 못하면,
부모가 상처를 줄 때마다 고의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나의 아버지가 동성애자인 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가족을 떠난 것이,
모두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고 믿을지도 모르니까요.

그러므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오해의 씨앗을 심지 않으려면,
자녀도 부모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대신 어떤 걸 알게 될지 모르니, 마음 단단히 먹고요!



참고문헌

Berry, C. R., Baker, M. W. (2012). 나는 왜 상처받는 관계만 되풀이하는가(이상원 역). 서울: 도서출판 전나무숲.

마스타 유스케(2023). 어린 시절의 부모를 이해하는가(명다인 역). 서울: 또다른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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