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대상에 줏대가 없는 것인가 유연한 것인가, 뚝심 있는 것인가 융통성 없는 것이다, 라는 술어가 공존할 수 있는 건 절 퍽 슬프게 합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기준을 정한 건 결과적으로 좋냐, 아니냐에 따라 그 술어를 정하기로 합니다. 제가 선택을 바꾼 것이 좋은 결과가 되면 저는 유연했던 것이고요, 제가 선택을 고수한 것이 나쁜 결과가 되면 융통성 없이 고집을 부렸던 것이죠.
살아있는 한 그 결과란 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재평가를 반복하니, 저는 유연했다가 줏대없었던 게 되고 고집불통이었던 게 실은 뚝심과 신념의 투사였던 것이 되기도 하지요. 이런 섭리는 꽤나 자주 절 슬프게 한답니다.
일례로 달리기를 예로 들겠습니다. 저란 인간은 사람이 몇키로씩 장거릴 장시간 연속해서 달린다는 것이 저의 머리에 장착돼있지 않았어요. 인식이 바뀌게 된 건 강제로였습니다. 왜, 보통 강제에 의해 겪지 않고 단정했던 것이 강제로 겪어보고 아, 해보니 이게 그게 아니었구나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잖습니까.
어쨌든 그 강제는 '베탈리언 런'이라고, 미군들이 주기적으로 부대 전체를 새벽부터 거의 영원히 달리며 도는 짓거리입니다. 네이버 지도로 서울 용산구쪽을 보면 거대한 녹지대로 표시된 곳이 있습니다. 거기가 제 부대였고 거기를 달리는 거예요. 당연히 소수의 혈기넘치고 소속감에 과몰입된 자원자들을 제외하고는 지원할 자가 없으니 결국엔 하급자들부터 머릿수를 채웠고 저는 하급자였죠. 그리고 달렸습니다. 초겨울 새벽에 미국 교도소 재소자들이 만든 회색 티에 ARMY가 적힌 티를 입고 덜덜 떨면서, Fun의 We Are Young이 크게 울리는 가운데 포메이션 하고, 깃발수 뒤로 줄지어서요.
무슨 상황이나 일에서 대오에서 이탈하는 건 저에게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미군들은 노동요처럼 사제로 전승되는 PT송을 부르는데 기억나는 건 우리 할머니가 80살땐 PT를 재미로 했지, 81살땐 PT하다 벽도 쳐부수고, 82살땐.. 이러는 재밌는 돌림노래였습니다. 중간중간 이탈자는 생겼지만 저는 이탈하지 않았고 We Are Young이 울려퍼지는 화이트하우스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후 저는 매일 자발적으로 10km 이상을 트레드밀로 달렸습니다. 유연하죠. 그러다가 피골이 상접해져 제가 제일 좋아하는 행위인 나라 사슴공원에서 자전거 타기를 조금만 경사진 곳도 못달리게 되게 됐습니다. 고집불통이죠. 그래서 지금은 적당히만 해요. 유연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