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서트펜과 죽음들

by Josh

'누군가 죽은 거지?" 내가 물었다. 다소 초췌해지고 여드름이 이마에 두어 개쯤 생겨서, 일주일 만에 돌아온 서트펜의 얼굴에 다소 놀란 빛이 순간 어렸지만, 예의 데스마스크 같은 침착한 석고상의 얼굴로 돌아왔다.


'맞아. 가까운 친척이 죽었어. 또 다른 사람도 죽었어. 아, 그리고 또 누구도 죽었어. 내가 저승사자라도 된 건가. 아니지, 죽음은 어디에나 있는데 요즈음에 죽음에 대해서 의식을 하게 되어서 그런가봐. 봐, 지금 흘러나오는 노래의 보컬도 샷건으로 머리에 펑, 하고 죽었잖아. 그냥 그거일 뿐이야. 또 다른 자극들에 의해서 잊어버리겠지. 강아지들도 어미 젖을 떼고 나서는 금방 잊어버리는 것처럼, 나도 죽음에 대해 특별하게 인식하는 지금의 상태는 언젠가 슬슬 사그라들 거야. 그리고 다시 예전의 엄혹한 서트펜으로 돌아가서 착취를 하고 냉소를 하고 이렇게 손님따위 필요 없는네 가게에 와서 너의 평안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깨버리겠지'


나는 석고상 같은 그의 얼굴은 다시 확인하지 않았다. 감자를 깎고 있어서 한눈을 팔다가 손을 다치기도 싫었고 그의 석고상 같은 얼굴은 정말로 석고상 같아서 석고상인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는 표정의 변화나 얼굴의 별다른 변화를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리 있는 말이야. 그래도 거기에 너 같은 사람이 영향을 받는 것처럼 보여서 좀 놀랍군. 다른 사람도 아닌 너가 말이야. 너가 임종이 가깝다는 가까운 친척을 억지로 만나고 왔다는 얘기를 일 주일 전에 그 자리에서 정말 대수롭지 않게 했었지. 어울리지 않게 비싼 헤네시를 청하고선 말이야(나도 뚜따를 하고 나서 아껴먹고 있는데, 마진을 너가 남겨준다면야 나야 별 상관은 없어). 나는 너의 인간성을 일깨우고 북돋을 생각은 없어. 그래도 그때도 다소 풀 죽어 보이더군. 그 사람의 죽음이야 그랬다 치고, 다른 어떤 죽음이 보이고 있는데?'


서트펜은 오른 팔을 턱에 괴고 왼 손으로 진이 들어있는 잔을 들고 개처럼 술잔을 할짝이고 있었다. 아까 그가 말한 것처럼 어미와 헤어지고 어미의 존재를 잊어버린다는 새끼 강아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먼저 그 다음의 죽음은, 내가 투자했던 회사의 대표가 급사했어. 갓 육십을 넘긴 인간이었고 자기 자식을 위해 배임을 해서 내 보유 지분의 가치가 흔들거려서 비슷한 처지의 다른 투자한 인간들과 하루종일 그 인간 욕을 했지. 나는 익살꾼이야. 그런 종류의 인신공격이라든지 조롱은 내 장기라구. 물론 지금도 그걸 후회하지는 않아. 그런데 내가 손해를 감수하고 그 지분을 처분하고 나고 얼마 되지 않아 미국에서 급사를 했다는 거야. 위중함이라던지 어떤 징후도 포착할 수 없었어. 당신이 나를 이 술집에서 좀 봐서 알겠지만 나는 나름 철두철미해서 그런 주변 정보들이나 동향은 나도 잘 찾아본단 말이야. 어쨌든 기분 참 묘하지. 솔직히 그 돈은 크지도 않았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인간인데 말인데, 우리가 했던 저주들의 영향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좀 들면 아무래도 유쾌한 느낌은 들지 않아. 근데 자존심이 참 상한단 말이지. 이런건 진부한 클리셰잖아. 누군가 죽도록 밉거나 그에 준하도록, 혹은 그에 못미치게라도 미워했는데 갑자기 죽어버리면 느끼게 되는 담보 없는 죄책감 같은 거. 나는 인간들이 그런 죄책감을 즐기는 거라고 믿어. A참사나 B참사 같은 대형 참사때도 인간들은 집단적으로 슬픔을 강조하면서 그 애도를 하는 자기 자신의 도덕적 허영심을 채우잖아. 나는 그런 게 정말 싫단 말이야. 그런데 그런 허영심을 나에게서 발견하게 되버리는 거잖아. 어쨌든 그런 느낌을 느끼는 건 아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야. 그 죽음을 동정할 생각도 없어. 그런데 마치 사랑하다가 싫어하게 된 친구가 죽은 느낌이 들더라고. 순간적인 고민이었지만 정말 빈소에 가서 조문을 하고 육개장을 먹고올까 고민까지 했어.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나? 물론 나는 미쳐있기는 하지만 이건 다른 종류의 광기야. 나는 이런 종류의 광기는 가지고 있지 않았어. 그렇게 그 아무 상관도 없는 죽음 같은 것들에 나는 의식을 하고 있어. 가까운 친척의 죽음이 그저 다른 죽음들을 의식하도록 트리거가 된 것일지도 모르지.'


말을 마치고 서트펜은 진을 한 잔 마셨다. 이제 샷건으로 머리를 쏘아 자살한 보컬의 밴드가 아닌 알콜 급성 중독으로 죽은 여자 재즈 보컬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손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나의 바에서 다른 술병들과 마찬가지로 그 진의 병의 대부분은 서트펜이 비웠다. 그 말고는 내가 혼자서 진 토닉을 한두 잔 먹은 정도 밖에 되진 않을 것이다. 씻은 감자는 결국 내가 다 먹거나 서트펜이 조금 먹을 것이다. 나 혼자 먹는다고 해도, 또 언젠가 다나 혼자만이 먹게된다고 해도 크게 유감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굳이 이 인간만이 전혀 장사할 의지가 없는 내 가게에 찾아와서 전혀 장사할 의지가 없는 나의 술을 받아 마시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아까 말한 배임을 한 회사 대표의 장례식장에서 육개장을 굳이 먹을까 고민하는 그의 남다른 광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누가 죽었는데?' '그건 솔직히 가물가물해. 꿈에서 누가 죽었던 건지, 아니면 누가 죽어서 부고장이라도 날아왔는데 내가 까먹은 건지, 아니면 전에 직시했던 죽음이었는데 내 자비로운 무의식이 지워버렸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분명히 누군가 죽었어'. '누구나 죽어. 죽음은 흔하다고 하면 흔한 거야. 위로하려고 하는 말은 아니야' 나는 깎던 감자의 전분을 제거하기 위해 물 위에 올려 두고는 맥주 한 캔을 땄다. 아주 솔직히 유일한 손님인 서트펜이 찾아오지 않으면 내가 아쉽거나 그리운 마음이 맥주 두 모금 만큼은 들지 않을까 자문해보았다. '그래도 언젠간 돌아오지 않을까?' 이제야 서트펜의 얼굴을 다시 쳐다보면서 내가 되물었다. '누가, 어디로 돌아온다는 거야?' '내가, 죽음을 다시 의식하지 않게 되는 상태로 말이야. 이거 내가 좀 손상된 기분이 들어서.'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라도 된 거야? 돌아올 구멍을 찾아야 되겠네. 물렁물렁해져 버렸구만. 너가 정말 엘리스나 숙녀였다면 아끼는 독주들을 선심쓰듯 주고 위로하고 공감하는 척하면서 부엌으로 데려가서 치맛춤을 올리지 않았을까?' '응 아마 그랬겠지. 아니, 그건 성별과는 상관 없는 일이야. 놀랍겠지만 나에게도 구애를 하는 여자들이 있다구. 물론 그녀들은 내가 아주 엄혹하다는 걸 알고 이 '엘리스' 같은 상태가 되면 나는 초라하고 파리만 날리는 네 술집 같은 동굴에 들어가 숨어 상처를 핥는단 말이야. 들켜서는 안 돼 그런 의미에서 압생트나 줘. 싼 거 아무거나. 그걸로 치료를 좀 해야겠어'


그는 압생트를 마저 마시고 일어났다. '망하지 않으면 또 오려나. 너는 상관도 없고 나도 딱히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야. 어쨌든 우리는 카드전표로 이어져 있지. 카드사와 국세청이 이어주고 있는 거야. 너가 마신 맥주까지 내가 계산하게 해. 어떤 구원을 바라고 그러는 건 아니야. 어쨌든 죽지 말라고' 그가 앞문으로 뒷문으로 나갔는지는 의식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도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방금의 감자들도 죽은 건가. 서트펜도 죽겠지. 나도 죽겠지. 엘리스도 죽을 거다. 다음 노래는 살아 있는 사람의 노래가 나왔으면 좋겠다. 플레이리스트를 내가 정해 두었지만 나는 아티스트의 순서의 기준을 죽음으로 나누지 않아서 어떤 노래가 들려올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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