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이 몇 년 지난 에너지드링크 한 박스를 찾아내서 마시고 있다. 힘이 나는 달큰한 마분지 맛이 난다. 절반쯤 먹고도 멀쩡한 것을 보니 나머지 절반을 먹어도 나에게 큰 위해가 올 것 같지는 않다. 나는 미군부대에서 에너지드링크 마시는 습관을 들였다. 췌장이 넉넉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코카소이드나 니그로이드 계열은 생수 통만한 에너지드링크를 가지고 다니면서 넥타르라도 되는 것처럼 아주 유효하고 맛있게 마셨다.
나는 몽골로이드이고 미군에도 김치 지아이 같은 몽골로이드 병사들이 있었고 대체로 그 인습을 따라했다. 물론 김치 지아이들을 만난 것은 긴 기간이 아님으로 장기간에 걸친 에너지드링크의 생수 대체가 그들의 췌장에 얼마나 파괴적인 결말을 불러왔는지는 모른다.
나는 제대하고 한동안 그 습관을 유지하다가, 에너지보단 수치심이나 인간의 존엄성 같은 것을 소모하게 되는 일로 직업을 바꾼 뒤부터는 에너지드링크를 멀리하게 되어서, 교대로 이어지던 집의 에너지드링크 박스의 대가 지금 내가 처리하고 있는 달큰한 마분지 맛이 나는 에너지드링크에서 끊긴 것이겠지. 그리도 마분지의 먼지 맛 사이로 어떤 그리운 맛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에너지가 필요한 일을 하고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 아주 건강하고 멋진 일인 건 분명한 일일 테니까.
소질이 있는 사람이 평생에 걸쳐서 모든 역량과 시간과 에너지를 야구공을 투수와 포수 사이의 거리만큼 던져서 정 반대의 소질을 평생에 걸쳐서 역량과 시간과 에너지를 갈고닦아 그 공을 쳐내는 것에 평생을 바친 사람의 스윙이 안되게 하거나 스윙을 못하고 설정된 스트라이크 존에 들거나 쳐내도 제대로 치지 못해서 뜬 공이 오랜 시간 뜬 공을 잘 잡아내는 데에많은 역량과 시간과 에너지를 들인 야수가 잡아내거나 파울 플라이가 되거나 하지 않고 공이 라인 안쪽에 떨어지거나 담장을 넘어가 홈런이 되거나 모든 일이 다 꼬여서 실책으로 인해 1루석이나 2루석이나 3루석이나 아니면 완전히 한 바퀴를 돌아 홈플레이트에 닿을 확률이 0.3, 3할, 이 명징한 수치가 높고 낮음의 기준이 된다는 걸 생각한다.
3할, 3할 타자. 정말 수많은 가능성과 수많은 변수들의 결합에 대한 가치판단이 3할에 모인다는 사실이 가끔은 나를 전율케 한다. 3할 넘게 치는 사람은 현대 고도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돈을 받고 인기와 명예를 얻는다. 반대로 자신의 공이 0.3의 확률 아래로 쳐내지는 공을 던지는 사람도 많은 돈을 받고 인기와 명예를 얻는다. 시대가 잠깐 삐끗했어도 그저 유용한 돌팔매였을 수도 있는데. 그 찰나의 과격한 차이도 가끔은 나를 전율케 한다.
그린북을 보고 커티삭을 샀다. 나는 옛날엔, 그리고 그린 북을 보기 전까지는 하루키를 생각하면서 커티삭을 사고 마셨다. 커티삭을 사마시는 부류 중 나 같은 부류도 있고 그린북을 보고 사는 부류도 많다는 것은 이미 2018년 이후로 꽤나 많이 들어 알고 있었지만 사실 영화를 본건 엊그제다. 아라곤이 늙어서 그렇게 되다니 서글프기도 했다.
소롱길, 엘레사르는 이제 가족을 중시하고 가톨릭 신앙을 굳게 지키고 미국식 스파게티를 케첩에 버무린 국수라고 쉽게들 비난하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이 되어 근육돼지로 브롱크스의 바운서로 일하다가 흑인 피아니스트의 기사가 되었구나. 변화의 추이보다 그 변화의 높낮이 자체가 나를 개인적으로는 서글프게 했다. 증류주는 이제 엔간하면 먹지 않으려고 다짐했는데. 그 다짐을 깨고 사게 만들 정도로 적어도 나에겐 괜찮은 영화네. 영화 스노비즘이 심한 시네필 도도새는 시네마와 무비는 다르다고 했다. 걔 기준에는 이것도 그저 무비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