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엄마, 콘라드, 관성

by Josh

엄마에게는 보통 다음 계절의 옷을 선물한다. 엄마는 나에게 언젠가 당신이 병상에 있게되고 연명치료의 가부를 내가 결정할 수 있게 되면, 부를 선택할 것을 나에게 몇번이나 종용했다. 아마 지금껏 부친과 부친의 육친들과의 수십년간 혼자 용렬하게 펼쳐온 더럽게 재미없는 전쟁으로, 또 태성적으로 외가 친척들이 가지고 태어나는 음울함으로 몹시 지쳐서 그런 것이리라. 그래서 여름에 롱패딩을 사주고, 겨울엔 양품의 반팔 티셔츠를 선물하는 것은 미래를 조금이라도 기대하게끔 하는 나만의 기만책이다. 연명치료의 가부를 결정할 때 내가 어느쪽을 선택할 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조제프 콘라드의 어둠의 심연을 읽었다. 보통 영화가 원작 소설을 못따라간다지만 이경우 나는 이를 모티브로 한 영화인 지옥의 묵시록을 더 쳐주고 싶다. 조제프 콘라드는 영문학 외적으로도 성인으로 습득한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쓰는 것을 넘어 어센틱한 책까지 쓴 몇 안되는 '7세 종말론'의 반대사례다. 7세 이전에는 습득해야 제2언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고 그 이후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외국인 악센트나 외국인식 언어를 완벽히 숨길 수 없는 슬픈 운명의 몇 안되는 반례. 각설하고 나는 영화판을 더 쳐주겠다. 책은 쓸데없이 유려하고 어렵게 썼는데 프로타고니스트가 도대체 뭐에 경악하고 뭐에 압도되는지 나는 잘 설득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옥의 묵시록에서는 나도 압도됐다. 그러니까 팍상한 폭포까지 내가 다녀왔지, 하하.


엊그제는 술을 왕창 마시고도 새벽에 일어나 취한 채로 정해진 시간만큼 정해진 거리를 달렸다. 취중에 흐르는 땀이 술에서 나를 거친 어떤 에센스같이 느껴졌다. 숙취는 그렇게 달리고 씻고 일터에서 한두시간쯤 일하고 찾아왔다. 그 광기에 특별하거나 비장한 이유는 없다. 그저 내 루틴이 그래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관성을 쉽게 거스르지 못하는 인간이다. 그 성질의 발현은 태어날 때부터 나왔다. 끝끝내 뱃속에서 뱃속 세계에서의 퇴출 및 새로운 세계를 거부하며 나오지 않는 나 때문에 엄마는 긴급한 제왕절개를 해야 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극단주의적이며, 예비된 변절자이기도 하다, 극을 달리다 순간이 바뀌면 영원히 바뀐 노선으로 맹렬히 달려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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