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오수, 전망대, 정신병원

by Josh

길을 가다 보면 맨홀 뚜껑이 '오수'라고 적혀 있습니다. 물론 그 뜻은 오염된 더러운 물이라는 뜻으로, 음식물 쓰레기에서 나오는 시큼하면서 매콤한 물, 세차하고 흘러나오는 물, 중국에서 불어온 중금속이 비와 섞인 물, 인간을 포함한 시체가 썩어 나오는 진물, 마약쟁이들이 증거인멸하고 내보내는 물, 기타 땀, 오줌, 정액등등이 자 섞인 물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런데요, 저는 고백건데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이 맨홀뚜껑의 '오수'라는 걸 뚜껑 하나하나 지날때마다 엔간하면 의식을 했습니다. 그 이유라면 '오수의 개' 의 '오수'를 그 '오수'로 의식했지 뭡니까. 옛날옛날에 오수라는 고을에서 개를 너무 좋아하던 양반이 잔칫집에서 진탕 취해 오는 길바닥에서 뻗어 자는데, 들불이 일자 사랑하던 개 그 양반을 깨우다 못해서 냇가에 물을 적시우고 스스로 불속에 굴러 주인은 살리고 자기는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에서의 '오수'를 말이에요. 마침 그 맨홀 안에선 물이 흐를 것이니 그 강아지를 만세토록 기리느라 맨홀바닥마다 그 단어를 새긴줄로 알았어요. 이처럼 가끔가다보면 저는 참 웃긴 인간이구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엊그제는 외국인 A와 북한이 보이는 전망대에 갔습니다. 저는 사실 군대도 다녀와놓곤 북쪽의 이웃나라에 관심이 그닥 없거든요. 그런데 글쎄 이녀석은 파수꾼이라도 된 것처럼 망원경에서 긴 시간 떨어지지도 않고 강 건너 공산주의식 건물들, 또 거적떼기 같은 차나 점 같은 인간들 같이 움직이는 모든 것에 열중하는 거예요. 이 친구를 GP나 GOP 초소에 갖다놔야되는데,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에게 정말 윗나라에 관심이 없냐고 묻더군요. 응, 나는 관심이 없다고, 우리나라는 그저 대만보다 조금 큰 섬나라일 뿐이라고 답했습니다. 우리 같은 범인들에게는 윗대가리만 다를 뿐이죠. 아, 그래도 거지 주인보단 대갓집 마님이 낫지만요. 지금처럼 말예요.


이라부가 내준 줄줄이 긴 약봉투를 보고 줄줄이 소시지 뭉테기를 메타포로 생각해내고 자랑스레 혼자 웃었습니다. 상담은 그저 약을 타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저를 이라부도 알아서, 이제 몇 년이나 단골이다보니 법의 범위 안에서 병원 방문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약 뭉텡이를 주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소시지는 분쇄육 아닌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약들도 반쪽짜리가 있고 작은 알갱이들 같아서 소시지의 메타포를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어쨌거나 제 마음이지 않겠어요.

작가의 이전글(에세이)과일, 나무, 부트캠프, 구소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