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배불리 먹고 문득 김치냉장고 안의 오래돼 물러져 버린 무화과와 연시가 생각나 서둘러 먹었다. 무화과는 사무실 근처 마트에서 싸게 파는 걸 생각없이 집은 것인데 싼 이유가 오래돼 물른 것이었고, 연시는 가끔 가는 사무실 근처 구멍가게에 맨 번 스타일 머리를 한 할아버지가 맛있다고 몇개 준 것을 깜빡하고 주말새 사무실에 두었다가, 고마운 마음에 물러져도 뱃속에 담고자 결의하고 집에 가져온 것이다. 물러터진 것들을 먹으며 실은 이것들이 나와 같다고 느껴져 나에게 걸맞은 것들이라 생각이 들었다. 물러터진 인간이 물러터진 것들을 몸 속에 받아들인다.
유대인의 촛불 형상이었던 아파트 휘트니스의 5번 트렌드밀 앞 창문의 나무는, 계절이 바뀌고 잎사귀가 떨어지고 하여 손을 내밀고 뭔가 말하려고 하는듯한 토끼행성 외계인 모양으로 바뀌었다. 텔레비전도 틀지 않고 달리면서 정면으로 응시하는 내 시야엔 그 모습에 들썩이는 움직임까지 더해져 정말 무언가 이야기하려 기를 쓰는 느낌이 되고 만다. 내가 뛰는 들썩임인지 진짜 그것이 토끼별 외계인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부트캠프에선 새벽 4시 50분에 모두가 정렬하고 점호를 하고 피티를 했다. 20살의 강퍅한 내 인생에 4시 50분에 점호를 한다는 이야기는 입대전 읽고, 또 들었지만 내 눈과 귀를 믿지 않기로 했었다. 인간이 어떻게 그 시간에 일과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인지. 그러나 그것은 진짜였다.
한여름이었지만 그 시간에 전철의 첫차도 없이 해가 일찍 뜨는 나날에 해가 뜨기도 전 나와 하루를 시작하는 추위는 그당시까지 내가 겪은 추위 중 가장 혹독했다. 나는 추우면 우울해진다. 그런데 그 어둠 속 근처 빛이 나는 조그마한 짐에서 신나는 펑크락을 튼 어느 중년의 부사관이 혼자 쇳질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실로 나에게 위로를 주었다. 그때 기를 쓰고 청음한 가사를 외워두었다가 훈련이 끝나고 곧바로 들었다. Offspring의 Why Don't you Get a Job. 오프스프링의 노래는 거의 다 좋지만 가사와 상관없이 아직도 이 노래는 나에게 위로를 준다.
시내 운전 중 앞차가 갑자기 멈춰서 나는 욕지기를 했다. 깜빡이에 평정을 찾았고 구소련계 일용직 노동자들이 내리며 전쟁터를 가듯 굳게 악수를 하며 내리고 헤어졌다. 꽤나 멋져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