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
잠시 글을 쓰는 지금으로 돌아와서, 난 그에게 매달리고 있다.
전화만이라도 하자 목소리 듣고 싶어
문자를 보냈고 알바가 끝나자마자 전화를 했다. 장대비가 퍼부었다. 전화하며 걸어가느라 흠씬 젖었다.
빗물이 신발 속으로 들어와 양말을 척척하게 적시고 우산 속으로 쳐들어왔다.
나 안 사랑해? 내가 물었다.
“사랑해. 근데 짜증나. 아침에 일어나면 너무 보고 싶고 만나러 가고 싶은데 여태까지 나 무시한 거 생각하면 짜증 나서 안 보고 싶어.”
나도 꼭 아침에 눈을 뜰 때 괴롭다. 밤에 자기 전도 아니고 꼭 아침에 그렇다.
“불꽃놀이 보러 갔을 때도 그랬어. 내가 계속 가자고 하는데 무시했잖아.”
“너무 힘들어.”
난 한 손에 우산을 한 손에 핸드폰을 붙들고 울며 말했다. 우산으로 가릴 수 있어서 비가 온 게 다행이었다.
“내일 얼굴 보러 갈게.”
그가 말했다.
“그냥 토요일에 보자.”
그날 그가 일을 하기 때문에 힘들 것 같았다.
“봐, 또 무시하잖아.”
그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가 다시 전화했지만 거절했다. 무시라는 게 뭔지 괴롭다, 진짜. 한 번 뇌를 끄집어내서 들여다보고 싶다.
내 얘기를 듣고 머리끝까지 화가 난 친구는 말했다.
난 그냥 쟤 행동이 이해 안 가는데? 내일 힘들잖아라고 했는데 무시한다는 소리가 왜 나와?
헤어지고 나서 체중이 오 킬로 줄었다. 엄마는 내가 다이어트하느라 예민한 줄 안다.
엄마한테 너무 미안하다.
결국 되지 않은 운명이라면 내 마음도 식겠지. 그때까지 가보기로 했다.
하루가 지났고 다시 글을 쓴다. 어제 그가 날 만나러 왔다. mushroom이라고 쓰여있는 검은 옷을 입고 왔다.
“이 옷 대체 어디서 난 거야?”
그는 원래 무늬가 정신없이 들어간 스타일을 입지 않는다. 심플한 옷을 입는데.
“우즈벡 돌아간 친구가 주고 갔어.”
손을 잡아주지 않는 그에게 내가 먼저 팔짱을 꼈다. 비가 와서 우산을 샀고 늘 먹던 맥도날드에 갔다. 난 상하이 랩을 그는 치즈버거에 밀크셰이크를 먹었는데 맨날 하던 걸 하니 눈물이 났다.
안양 일번가를 걷다가 그의 차에 탔다.
“졸려.”
그는 내게 머리를 기댄 채 삼십 분을 있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던 건지 모르겠다. 자꾸 이러니까 난 기대를 하게 된다.
“집 가야겠다. 내일 일 가야 돼.”
열한 시쯤에 그가 말했다. 난 가기 싫다고 했고 결국 같이 집에 갔다. 사귈 때와 똑같이 안고 잤다. 그는 졸리거나 잘 때 애교가 있다. 앵긴다.
“우리 무슨 사이야?”
내가 물었다. 그는 계속 날 당신이라고만 부르고 사귈 때처럼 다정하게 불러주지 않았다.
난 제대로 된 대답을 듣지 못했다.
---------------
3년 전, 사귄 지 1년쯤 되었을 때 엄마와 마찰이 심했다. 집에 들어가기 전 늘 심장이 뛰었다. 놀이터에서 하릴없이 그네를 타곤 했다.
그는 무조건적인 이슬람교도다. 나를 데리고 우즈벡에 돌아가길 원했고 나도 언젠가 그럴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염두에 두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집을 떠나 예상도 상상도 못 한 나라로 떠날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마음 아파했다. 심지어 그때 나는 지금보다 더 어린 이십 대 초반이었다.
집에서 쫓겨났다. 이 연애문제로 엄마와 대판 싸웠다. 자세히 쓰고 싶은데 기억이 도저히 안 난다. 그냥 싸우고 쫓겨난 사실만 기억난다.
일주일 간 그의 집에서 보내는데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 들어와. 엄마랑 화해해.”
집에 들어가기 전 떨려서 삼십 분 간 망설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집에서 내 남자친구 이야기는 암묵적으로 금지가 되었다. 누가 금지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모두 금지란 걸 알고 있다.
그와 같이 방을 구하러 다닌 날을 기록한다. 그가 서울에서 자취할 방을 구하러 다녔다. 며칠을 실패해서 지쳐버린 난 그에게 짜증을 엄청 냈다. 급하고 걱정이 많은 나에 비해 그는 느긋했다.
3년이 지난 지금 헤어지고서야 들은 얘기지만 서울에 온 것도 오로지 나 때문이었다고 한다.
짜증을 내는 날 투썸 플레이스에 앉혀두고 그는 혼자 가서 계약을 해왔다. 분리형인 작은 원룸에 주차장이 있는 집이었다.
그렇게 장거리 연애를 끝내고 나는 안양에 그는 신림에 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터졌다. 이미 지난달에 기숙사 신청과 기숙사비 납부를 끝낸 상황이었다.
“우리 학교는 원격수업 안 한대.”
거짓말이었다. 기숙사 환불이 내 통장이었다. 환불을 받고 집을 나가 그의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는 같이 살던 친구를 내쫓았다. 니 집구석 아니니까 나가라고 그랬다나. 그 친구가 지금까지도 날 싫어한다.
연락에 집착하는 스타일인 난 그가 언제 들어오는지 확실하니 안심했다. 그는 항상 나가기 전 내 볼에 뽀뽀를 해줬고 난 항상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그를 문까지 배웅했다. 그게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했던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