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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점 Sep 09. 2023

내 첫사랑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사람이었다

동거

 잠시 글을 쓰는 지금으로 돌아와서, 난 그에게 매달리고 있다.


 전화만이라도 하자 목소리 듣고 싶어

 

 문자를 보냈고 알바가 끝나자마자 전화를 했다. 장대비가 퍼부었다. 전화하며 걸어가느라 흠씬 젖었다.


빗물이 신발 속으로 들어와 양말을 척척하게 적시고 우산 속으로 쳐들어왔다.  


 나 안 사랑해? 내가 물었다.


 “사랑해. 근데 짜증나. 아침에 일어나면 너무 보고 싶고 만나러 가고 싶은데 여태까지 나 무시한 거 생각하면 짜증 나서 안 보고 싶어.”


 나도 꼭 아침에 눈을 뜰 때 괴롭다. 밤에 자기 전도 아니고 꼭 아침에 그렇다.


 “불꽃놀이 보러 갔을 때도 그랬어. 내가 계속 가자고 하는데 무시했잖아.”


 “너무 힘들어.”


 난 한 손에 우산을 한 손에 핸드폰을 붙들고 울며 말했다. 우산으로 가릴 수 있어서 비가 온 게 다행이었다.


 “내일 얼굴 보러 갈게.”

 그가 말했다.  


 “그냥 토요일에 보자.”

 그날 그가 일을 하기 때문에 힘들 것 같았다.
 “봐, 또 무시하잖아.”


 그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가 다시 전화했지만 거절했다. 무시라는 게 뭔지 괴롭다, 진짜. 한 번 뇌를 끄집어내서 들여다보고 싶다.


 내 얘기를 듣고 머리끝까지 화가 난 친구는 말했다.  


 난 그냥 쟤 행동이 이해 안 가는데? 내일 힘들잖아라고 했는데 무시한다는 소리가 왜 나와?


  헤어지고 나서 체중이 오 킬로 줄었다. 엄마는 내가 다이어트하느라 예민한 줄 안다.  


 

 엄마한테 너무 미안하다.  

 결국 되지 않은 운명이라면 내 마음도 식겠지. 그때까지 가보기로 했다.


 

 하루가 지났고 다시 글을 쓴다. 어제 그가 날 만나러 왔다. mushroom이라고 쓰여있는 검은 옷을 입고 왔다.  


 “이 옷 대체 어디서 난 거야?”


 그는 원래 무늬가 정신없이 들어간 스타일을 입지 않는다. 심플한 옷을 입는데.


 “우즈벡 돌아간 친구가 주고 갔어.”


 손을 잡아주지 않는 그에게 내가 먼저 팔짱을 꼈다. 비가 와서 우산을 샀고 늘 먹던 맥도날드에 갔다. 난 상하이 랩을 그는 치즈버거에 밀크셰이크를 먹었는데 맨날 하던 걸 하니 눈물이 났다.


 안양 일번가를 걷다가 그의 차에 탔다.  


 “졸려.”


 그는 내게 머리를 기댄 채 삼십 분을 있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던 건지 모르겠다. 자꾸 이러니까 난 기대를 하게 된다.


 “집 가야겠다. 내일 일 가야 돼.”


 열한 시쯤에 그가 말했다. 난 가기 싫다고 했고 결국 같이 집에 갔다. 사귈 때와 똑같이 안고 잤다. 그는 졸리거나 잘 때 애교가 있다. 앵긴다.


 “우리 무슨 사이야?”


 내가 물었다. 그는 계속 날 당신이라고만 부르고 사귈 때처럼 다정하게 불러주지 않았다.  


 난 제대로 된 대답을 듣지 못했다.


  ---------------


 

 3년 전, 사귄  1년쯤 되었을  엄마와 마찰이 심했다. 집에 들어가기   심장이 뛰었다. 놀이터에서 하릴없이 그네를 타곤 했다.  


 그는 무조건적인 이슬람교도다. 나를 데리고 우즈벡에 돌아가길 원했고 나도 언젠가 그럴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염두에 두고 있었다.


 엄마는 내가 집을 떠나 예상도 상상도 못 한 나라로 떠날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마음 아파했다. 심지어 그때 나는 지금보다 더 어린 이십 대 초반이었다.


 집에서 쫓겨났다. 이 연애문제로 엄마와 대판 싸웠다. 자세히 쓰고 싶은데 기억이 도저히 안 난다. 그냥 싸우고 쫓겨난 사실만 기억난다.


 일주일 간 그의 집에서 보내는데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 들어와. 엄마랑 화해해.”

 집에 들어가기 전 떨려서 삼십 분 간 망설였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집에서 내 남자친구 이야기는 암묵적으로 금지가 되었다. 누가 금지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모두 금지란 걸 알고 있다.


 그와 같이 방을 구하러 다닌 날을 기록한다. 그가 서울에서 자취할 방을 구하러 다녔다. 며칠을 실패해서 지쳐버린 난 그에게 짜증을 엄청 냈다. 급하고 걱정이 많은 나에 비해 그는 느긋했다.


 3년이 지난 지금 헤어지고서야 들은 얘기지만 서울에 온 것도 오로지 나 때문이었다고 한다.


 짜증을 내는 날 투썸 플레이스에 앉혀두고 그는 혼자 가서 계약을 해왔다. 분리형인 작은 원룸에 주차장이 있는 집이었다.


 그렇게 장거리 연애를 끝내고 나는 안양에 그는 신림에 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터졌다. 이미 지난달에 기숙사 신청과 기숙사비 납부를 끝낸 상황이었다.


 “우리 학교는 원격수업 안 한대.”


 거짓말이었다. 기숙사 환불이 내 통장이었다. 환불을 받고 집을 나가 그의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는 같이 살던 친구를 내쫓았다. 니 집구석 아니니까 나가라고 그랬다나. 그 친구가 지금까지도 날 싫어한다.


 연락에 집착하는 스타일인 난 그가 언제 들어오는지 확실하니 안심했다. 그는 항상 나가기 전 내 볼에 뽀뽀를 해줬고 난 항상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그를 문까지 배웅했다. 그게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했던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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