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점 Sep 23. 2023

내 첫사랑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사람이었다

동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생활이 반복되자 무료해지고 미안하기도 했다. 배달을 그만 시키고 요리를 하기로 했다. 무슨 날에 뭘 먹는지 메모장에 계획을 짰다. 찾아보니 아직도 그 메모가 있었다.


 8월 31일 부리또 (그가 제일 좋아한 요리다.)

 9월 1일 나 버리고 파티감

 9월 2일 김치볶음밥, 계란, 특제소스, 감자

 9월 3일, 4일 집 (내가 집에 간 날이다.)

 9월 5일 피자

 9월 6일 떡갈비, 김치, 소햄부침 (독특한 맛이다. 짜다.), 밥, 계란국

 9월 7일 부리또

 9월 8일 치킨 (요리하기 싫었다. 우리가 제일 많이 먹은 치킨은 깻잎 두마리 치킨. 두마리인데 맛이 세가지인 ‘두마리 세가지맛’.)

 9월 9일, 10일 서울 (같이 서울로 놀러 갔다)


 


 “요리 하고 싶으면 돈 줄테니까 재료 사 와.”


 그가 말했지만 짐이 되기 싫어 내 돈으로 다 했다. 내가 요리하면 그는 설거지를 했다.


 닭볶음탕을 해줬던 날, 사진을 찍어 가정식 먹는다며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기도 했고 한식을 주로 만드는 날 위해 밥솥을 사줬다


 수박 화채를 만들어 먹기로 한 날이었다. 후르츠 칵테일 한 개를 사오라고 시켰더니 업소용 후르츠 칵테일을 사왔다. 칵테일 통을 여는 방법도 따로 없어서 가위로 뚫었다. 당시 이래저래 해결할 일도 많은데 칵테일 뚜껑이 잘 따이지 않자 스트레스를 받은 그가 짜증을 냈다.


 그날 난 일을 하고 온 와중에 요리도 해야 했다. 집에서 쉰 그가 해주길 바랬다. 지치고 씻고 싶은데 요리도 해야해서 서운하고 화가 났다. 난 그가 후르츠 칵테일 통을 따는 중에 소리치고 방에 들어갔다.


 “안 해!”


 잠시 후 그도 날 따라 방에 들어왔다. 음료수만 부으면 끝인 수박 화채는 냉장고로 들어갔고 우린 한 방에서 말 없이 있었다.


 “집에 가고 싶어.”


 난 싸울 때 곧잘 하는 말을 또 했다.


 “백 번 중에 한 번 싸웠는데 왜 그래.”


 결국 자기 전 화해를 했다.


 무료함이 힘들어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그는 내가 일하는 걸 싫어했다. 힘들다고.


 그때쯤부터 마음 속 고민이 생겼다. 엄마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무작정 그만 보이던 시선이 바뀌어 가족도 보이기 시작했다. 고민을 진짜 많이 했다. 엄마가 절대 받아주지 않을 사람과 계속 연애를 해야할지, 헤어져야할지.


 코로나가 잦아들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사귄지 2년 째 되었던 날 사실 약속을 했었다. 우리 엄마한테 너 소개시켜 주겠다고. 소개는 무슨 엄마가 너무 싫어해서 소개의 시옷 자도 입 밖에 못 냈다.  고민을 많이 하며 그와의 싸움도 잦아졌다. 싸울 때마다 엄마가 생각났다.


 그와 나는 성격이 정반대다. 그는 표현을 전혀 하지 않는다. 남 얘기도 잘 하지 않고 남들 앞에서 애정표현은 꿈도 꿀 수 없다. 난 연락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디 놀러가면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그는 둘 다 힘들어한다.


 이 문제로 싸움이 났다. 내가 싸울 때마다 ‘헤어지자’ 소리를 했던 건 그때마다 매달려주는 그의 행동을 표현으로 여겼던 탓이다. 그는 언제나 내게 매달려주며 말했다.


 나랑 같이 가자.


 그의 고향으로 같이 가자는 말이다. 이번에도 그 소리를 했다. 됐어, 헤어져. 연락하지마. 라고 한 내 말에 4년 연애 중 처음으로 그가 대답했다.


 알겠어.


 난 그제서야 마음을 돌이키고 후회했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자취방에 가 두 시간 동안 울기도 하고 편지를 쓰기도 했지만 그는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내 첫사랑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사람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