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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점 Oct 10. 2023

첫사랑에게 걸어갔다. Andante

두 걸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숨이 안 쉬어졌다. 이건 진짜 왕따 각이었다. 아마 남자애들한테 쫙 돌려져서 전부 한번씩 읽혔겠지. 난 책상 옆 구석에 틀어박혀서 숨을 헐떡거렸다.


 “진짜 울고 싶다. 살기 싫다.”


 <간절한 사랑> 김은오 장편소설.


 “전학 갈까?”


  살면서 그때보다 더 두려웠던 적이 별로 없다. 난 거의 날밤을 꼴딱 새다시피 하고 다음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등교를 했다.


 등교  자리에 앉아 앞자리인 정유성 뒷모습을 쳐다봤다.


 잠시 , 정유성이 뒤를 돌더니 내가 왔는지  왔는지 확인했다.  보자 입꼬리를 실룩이며 다시 앞을 봤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은 딱 하나였다. 눈 떴더니 십 년이 지나있으면 좋겠다고. (십오 년이 지난 지금, 그 소원이 이뤄진 것 같다.)


 아침자습시간이 끝나자마자 뒤돌아 사물함으로 가서 교과서를 꺼내는 척했다. 오른쪽으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난 정유성을 돌아봤다.


 “존잼이더라.”


  정유성이 말했다.


 “아, 그거? 어어. 애들이 써달라고 해서 옛날에 써 준 건데. 꺅! 그걸 너가 봤다고? 와, 대박이다. 야, 재밌지? 나 그거 공모전 내 볼까?”


 죽고싶었다. 정유성은 쪼개고 난리가 났다.


 “우리 엄마아빠가 너무 재밌대. 푸흐흡.”


 “엄마아빠도 보여드렸어? 또 누구누구 봤어?”


 해맑게 물었다. 거기 내가 뭐라고 썼더라.


 ‘전교 킹카 유성은 황금비율로 떨어지는 얼굴, 사람을 녹아버리게 하는 목소리를 가졌다. 그 앤 성격도 다정하다. 아니 어떤 얼굴, 목소리, 성격이든 난 그냥 정유성이기만 하면 좋다. 내 심장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


 진짜 죽고싶었다.


 “아직 나 밖에 안 봤어. 걱정하지마.”


 방금 엄마아빠가 봤다고 해놓고. 정유성은 아주 웃다 못해 눈물을 흘렸다.


 “상관 없어. 나 그거 애들 보라고 쓴 거야.”

  난 말했다.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그래? 알았어.”


 난 똥줄이 탔다.


 “보여주게?”


  “어. 아직 지형이 안 보여줬어. 지형이부터 보여주려고. 보여줘도 되지?”


  정유성은 입꼬리를 쉴 새 없이 실룩이며 낄낄 웃었다.


 “어...아니, 안 돼. 내놔.”


  “왜? 된다며!”


  정유성은 배꼽을 잡고 허리를 젖히고 난리를 치며 웃었다.


 “줘. 내 거잖아.”


 도로 내 손에 가져오는 방법 하나뿐이었다.


 “너 얼굴 새빨개.”


  정유성이 말했다. 난 화가 나기 시작했다.


 “줘, 빨리. 지금 줘.”


  정유성은 들은 체도 않고 깔깔 웃다가 사물함에 텅 기댔다. 팔짱을 낀 채 날 지긋이 내려다보며 물었다.


 “나 좋아하냐?”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원래부터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 순간 정말 효영이 아저씨를 향해 마음을 쾅 닫아버렸다.


  “아니. 전혀 아니야. 빨리 내놔.”


 “야, 근데 나한테 미안하다고 하는 게 먼저 아니야? 공모전에 낼 거면 내 허락부터 받아야 되는 거 아니야?”


 목이 뜨거웠다.


 “미안해. 진짜 미안해. 기분 많이 나빴지...”


 “난 정유성을 평생 잊지 못할 거다. 그 이름 석 자 평생 새기며 혼자 살아가고 싶다.”


  정유성이 소설의 한 구절을 그대로 읊었다. 내 얼굴이 새빨갛다 못해 터지려고 하는 게 느껴졌다. 난 웃겨 죽으려는 정유성을 두고 돌아서서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화장실로 가 틀어박혀 울었다. 진짜 너무 쪽팔리고 수치스러웠다. 자퇴할까? 자퇴하고 검정고시 칠까?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눈앞에 정유성이 떡 버티고 서있었다.


 “야, 넌 또 뭘 울고 그러냐.”


 탱탱 부은 내 눈을 고개 숙여 쳐다보며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


 “야, 너 진짜 진심이구나. 나 진짜 좋아하는구나.”


 아니라고 할 기운이 없었다. 부인해봤자 어쩔 것인가, 소설이 정유성 손에 있었다.


 “야, 너 그렇게 내가 좋아? 진짜로?”


  괴롭고 미안해 죽겠다는 얼굴로 정유성이 물었다. 난 무시할 심산으로 가만히 있는데 그걸 보곤 말했다.


 “그랬구나...야...내가 잘해줄게. 너무 힘들어하지 마.”


 난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아버렸다.                          




 

 교실로 걸어가는데 뒤에서 누가 헤드락을 걸었다.


 “켁.”


 내 목을 감은 팔을 걷어치웠다. 정유성이 날 내려다보며 물었다.

 

 “너 동아리 뭐 들어갈거야?”


 “합창부. 반주. 왜?”


 “나도 그거 들어가려고.”


 “동아리는 진로에 맞춰 들어야지.”


 내가 말했다. 정유성은 어깨가 내 머리 위에 있었다.


 “내 마음이야.”


 정유성이 대꾸했다. 내가 그제서야 깨닫고 웃으며 손뼉을 치자 왜 그러냐는듯 날 봤다.


 “아, 알았다. 너 합창부에 좋아하는 애 있구나?”


 내가 웃으며 다 알겠다는 듯 말하자 정유성이 날 빤히 쳐다봤다.


 "어, 맞아."


 우리가 1학년이던 그때…2학년인 최나윤 언니한테 잘 보이려 서성이는 남자애가 한둘이 아니었다. 난 푸하하 웃었다.


 “나윤이 언니 남자한테 고백했다가 차였대. 이 기회에 고백해봐. 받아줄걸, 진짜로.”


 영화배우같은 정유성을 보며 내가 진심으로 말했다. 

 

 “할 거 없으면 바른생활부 들어가. 생기부에 뭐 하나라도 써야지.”


 내가 조언했다.


 “원하는거 들어주면.”

 

 정유성이 대답했다.


 “원하는게 뭔데?…아, 잠깐. 비싼건 안 돼. 만 원 내에서 골라.”


 “좋아. 약속했다.”


 “그래.”


 안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정유성이 내 정수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너 키 몇이야?”

 

 내가 손을 탁 쳐냈다.


 “백오십.”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 누구야?”


  실실 웃으며 기대하는 얼굴로 내게 물었다.


 “아빠.”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 누구야?”


 “귀여니. 그런건 왜 물어봐?”


 “그냥.”

  짖궂게 계속 웃었다.


 “넌 너무 말라서 체감상 백삼십도 안 되게 느껴져.”


 내가 떨어지라는듯 팔을 살짝 밀자 정유성은 신나게 웃었다. 잠시 후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아무튼 약속했다.”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고 앞서 걸어가다가 낄낄 웃으며 덧붙였다.


 “백삼십.”     




                         

 전교생이 귀찮은 행사에 툴툴대며 강당으로 모였다. 아직 자리가 제대로 잡히지 않아 모두 어수선하게 뒤엉켜있었다.


 “어! 정유성이다.”


 무대 위에서 방송부원 중 하나가 말했다. 입구로 들어온 정유성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너 동아리 뭐 들었어?”


 방송부원 윤민기가 거리가 멀어 마이크에 대고 정유성에게 물었다. 정유성이 크게 소리치자 민기가 안 들린다는 듯 눈을 찌푸리고 말했다.


 “뭐어? 안 들려. 야, 성우 형이 너 이리 와보래.”


 정유성이 무대 위로 갔다. 둘이 무어라 얘기하더니 윤민기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야, 정유성 바른생활부 들었대.”


 애들이 무대 밑으로 달려가 질문을 쏟았다.


 “어! 나돈데!”

 “정유성! 왜 바른생활부 들어갔어?”

 “유성아, 진짜임?”


 정유성은 대답하지 않고 민기와 대화를 주고받았다. 갑자기 민기가 눈을 크게 뜨며 마이크에 대고 내뱉었다.


 “김은오?”


 난 내 이름이 왜 강당 전체에 크게 울려야하는지 영문을 몰라 번쩍 굳었다. 애들이 날 보며 소근대기 시작했다. 민기가 마이크에서 입을 떼고 다시 정유성과 말을 주고받았다. 정유성이 웃으며 무어라 대답하자 민기와 무대 위에서 대화를 듣고있던 방송부원들이 입을 크게 벌렸다. 민기가 웃으며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야, 1학년 6반 김은오.”


 그 말이 마이크를 타고 대강당 전체에 커다랗게 울려퍼졌다. 난 얼음이 되었다. 민기가 이어서 말했다.


 “정유성이 너 좋아한대.”


 전교생이 일제히 날 쳐다봤다. 난 하필 강당 가장 중앙에 서있었다. 수근거리는 소리가 가득 퍼졌다. 내 이름이 입과 입을 타고 동서남북으로 퍼져나갔다.


“진짜야? 진짜?”

“야! 정유성, 진짜야?”

“아! 조용히 좀 해보라고! 야, 정유성, 진짜야?”


무대 밑으로 다닥다닥 붙어 묻는데 정유성은 웃기만했다.


화장실을 나와 복도를 가는데 정유성을 마주쳤다. 난 다가가 물었다.


 “야, 너 대체 왜 이래?”


 “왜? 너 나 좋아하잖아. 싫어? 좋으면서 싫은 척하기는. 니 얼굴에 다 써있어. 나 좋아한다고.”


  정유성은 태연하게 대답하고 가버렸다.


집에 오자마자 가방을 놓고 침대에 누워 한참 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왠일이야?”


내가 방에서 나와 물었다. 일찍 오는 일이 없는 엄마가 아리송하게 날 보며 말했다.


“너 레슨 안 가? 지금 여섯 시야.”


딱 걸린 난 한숨을 쉬었다.


“나 그냥 피아노 취미로 하면 안 돼? 피아노는 좋은데 피아노로 대학 가는 건 싫어.”


엄마가 또 시작이냐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그럼 이제 와서 뭐하고 살게. 너 싫대서 인문계 보내줬잖아. 가고싶은 과 있어?”


“생각해보려고.”


엄마가 한숨을 쉬었다. 난 레슨 가는 척 집을 나와 다른 길로 갔다. 텅 빈 예배당에 들어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인생이 재미없다는 생각에 잠겼다. 집, 학교, 학원, 집, 학교, 학원, 피아노, 피아노, 피아노…그때 난 인생이 끝없이 이어지는 지루한 악보 같았다. 마흔 딱 되면 자살해버리겠다고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생각했다.


엄마가 다시 집을 나갔을 때쯤 일어나 교회를 나왔다.


밤길을 걷는데 노래방 앞에 내 또래들이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야, 백삼십.”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정유성이 자전거 위에 앉아있었다. 애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날 쳐다봤다.


“얘냐?”


“어.” 정유성이 대답했다.


“야, 서환이 형 어디 갔냐, 형! 걔 왔어요! 걔!”


친구가 낄낄대며 소리쳤다.


“야! 하지말라고. 씹…진짜!”


정유성이 그 친구에게 화를 냈다. 골목 안에 쪼그려 앉아있던 오빠가 웃으며 벌떡 일어나 내게 손짓하며 말했다.


“야, 이리 와 봐.”


“야, 가지마.”


정유성이 말했고 난 주춤했다.


“가지마. 저 형 좀 이상해.”


정유성이 말했다. 애들이 킬킬대며 구경을 즐겼다.


“왜?” 난 물었다.


“나중에 얘기해줄게.”


야! 하고 오빠가 소리치자 다가가려는데 정유성이 소리쳤다.


“소설!”


난 본능적으로 멈춰서고 오만상을 지으며 정유성을 돌아봤다.


“타. 데려다줄게. 안 그러면 그 소설 카카오스토리에 올린다.”


 말만 들어도 등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난 정유성을 째려보며 자전거 뒤에 올라앉았다.


“어떤 오빠길래…”


앉자마자 자전거가 내 말을 끊고 쌔앵 달려나갔다.


“너네 집 어디야?”


어두운 밤, 바람을 가르며 도로를 자유롭게 내달렸다.


“소이아파트!”


자전거가 방향을 틀어 야트막한 내리막을 달렸다. 봄바람을 기분 좋게 가르고 달렸다. 그때였다. 심장이 쿵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졌다. 연분홍 안개가 가슴을 치고 들어온 기분이었다. 온 몸 발끝 손끝까지 포근함이 가득 전해졌다. 그때 눈 앞에 스치던 흰 꽃 덤불, 따뜻하고 시원하던 밤바람, 아스팔트 내리막길을 기억한다. 2012년 4월 중 어느 금요일 밤이었다. 내가 정유성을 좋아한건 정확히 그때부터였다. 며칠이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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