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결음
정유성을 처음 알게 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장미가 뒤를 홱 돌아보더니 말했다.
“정유성이네.”
“나 한번 물어보고 싶었어. 정유성이 누구야? 애들이 맨날 말하던데.”
“너 쟤 몰라? 생긴 걸로 유명하잖아. 인맥 장난 아니야, 쟤.”
장미 뒤로 보이는 남자애를 쳐다본 순간 사랑에 빠졌다. 너무 잘생겼으니까. 그날 하루종일 정유성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난 집으로 가 컴퓨터를 켜고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정유성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썼다. 물론 여주는 나였다. 내가 학교 최대 킹카 정유성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한 달 내내 소설에 빠져선 밤새도록 썼다. 마지막엔 사랑을 이뤄 진한 입맞춤으로 끝나는 결말이었다.
정유성을 향한 내 사랑은 한 달 만에 단념하고 말았다. 나 말고도 정유성을 좋아하는 애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 앤 나와 완전히 다른 부류였다. 어딜 가든 사람을 끌고 다니고 언제나 무대 중앙에 있었다.
그로부터 일 년 후 중학교 3학년, 같은 반이 되어서도 말 한 번 섞어본적 없었을 정도로.
정유성과 말을 해본 건 중학교 졸업식 날이 처음이었다.
“김은오.”
난 졸업식 날 하필 지각을 해 텅 빈 교실에서 혼자 나오고 있었다. 복도에 있던 정유성이 날 불렀다. 난 그때 혹시 지구가 네모가 아닐까 의심했다.
“애들 다 어디 갔어?”
정유성이 물었다.
“강당 갔지.”
“졸업식 날인데 왜 이렇게 늦었어? 교실엔 왜 왔어?”
자기도 졸업식 날 늦었으면서 정유성이 물었다. 우린 텅 빈 복도를 나란히 걸었다. 난 정신없이 뛰는 심장을 느끼며 대답했다.
“어제 교실에 핸드폰 놓고 가서.”
난 노리폰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2012년 2월 14일 화요일 오전 11시 22분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3월 아침, 국어시간 준비물이 공책이었다. 예전부터 있던 새 공책 두 권을 책가방에 넣다가 그 소설을 발견했다.
<간절한 사랑> 김은오 장편소설.
“뭐야, 그게?”
추억에 잠겨 소설을 펼치는데 호기심 많은 효영이 아저씨가 다가와 껄떡거렸다.
“뭐야? 나도 볼래.”
“아아, 아니에요.”
난 일단 효영이 아저씨가 절대로 볼 수 없는 내 책가방 속에 소설을 숨겼다.
“어, 은오야. 공책 두 개 샀어?”
그날 국어시간, 선생님이 내 자리를 지나다가 말했다.
“집에 있던 거에요.”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준비물 안 가져온 사람?”
선생님 말에 누가 손을 들었다.
“어, 있네? 어...은오야, 혹시 공책 하나만 유성이 빌려줄래?”
정유성이 내게 다가왔고 난 공책을 책가방에서 꺼내 건네주었다.
그날 저녁, 숙제를 하려고 그 공책을 꺼냈다. 분명 한 권이어야 할 공책이 두 개였다.
“어? 이상하다. 분명 하나 걔 줬는데.”
분명 공책은 두 개였다. 그날 오전에 정유성에게 공책을 내밀던 때를 되짚어봤다. 순간, 섬뜩한 기운이 들었다.
“설마.”
책가방을 들고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없었다.
“설마.”
진짜 없었다. 그 소설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