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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점 Oct 11. 2023

첫사랑에게 걸어갔다. Andante

네 걸음

                                                                                                                                       

 피아노 소리가 손끝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난 다른 생각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이 곡을 헌정 받은 여자는 베토벤에게 진심이었을까, 갖고 놀았을까?


 “은오야, 너 뭐하니?”


 꼭 어쩌다 집에 있는 날이면 부딪치는 엄마가 방에 들어와 인상을 찌푸리고 다가왔다.


 “빠르기 뭐야?”


 “프레스토 아지타토.”


 “이게 어딜 봐서 ‘빠르고 급하게’야. 너 언젠가부터 연습할 때 항상 이러고 있더라. 세상 모든 곡에 빠르기가 안단테 하나로 보여? 제대로 다시 쳐봐.”


 월광소나타 3악장이 울려퍼졌다. 괜히 심술이 났다. 엄마 말을 무시하고 하고 싶은 대로 연주했다.


 “더 빨리. 느려.”


 아무리 갖고 놀았대도 어느 정도 진심은 있었을거야. 


 “박자 더 빨리. 느리다고. 안단테인 곡만 평생 치고 살거야?”


 난 월광소나타를 달빛소나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달에 미친 소나타라고 생각했다. 그걸 칠 때면 미칠 것 같았다. 그 곡을 선물 받은 여자는 베토벤을 떠났다. 


폭염에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가 떴던 날, 정유성과 친구들과 함께 편의점을 나왔다. 표현수가 늦게 따라나와 껌을 들어보였다.

 

“쌤쳤어.”


 “뭐? 그러면 안 되는…”


 이지형이 말할때 점주가 뛰어나왔다.


 “너 이 새끼, 너 뭐하는 새끼야!”


 점주가 멱살을 잡아올리며 소리치자 현수는 빠져나오려 몸부림쳤다. 몸씨름이 벌어지더니 현수가 점주를 떼어내고 도망쳤다. 점주는 땅에 넘어져 허리를 싸쥐었다.


 그 정도로 아픈가? 정유성이 우리에게만 들리게 중얼거릴 때 점주가 벌떡 일어나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뭐야, 왜 저래?”


 이지형이 말하며 반사적으로 도망치자 홍재완이 따라갔다. 나와 정유성도 달리기 시작했다.


 “야, 야. 흩어져. 흩어져.”


 점주가 포기할 기세를 보이지 않자 갈림길에서 홍재완이 말했다. 이지형과 홍재완은 오른쪽으로 갔고 나와 정유성은 직진했다. 한참 뛰어 망원한강공원에 닿았다.


 “안 보인다.” 


 내가 말하며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한강 물비린내가 비릿하게 났다.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을때 정유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야…백삼십, 저 뒤에 있는 흰 차 점주 차 같아.”


 눈앞에 보인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계단참에서 잠깐 멈추고 숨을 몰아쉬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좁고 붉은 계단을 두 개씩 뛰어 올라가자 성산대교가 펼쳐졌다. 그림 같은 하늘 밑 무뚝뚝한 경호대 같은 가로등이 다리 양옆에 일렬로 줄지어 서 있었다.

 

 정유성과 손을 잡고 붉은 성산대교의 까만 인도를 뛰어갔다. 공사를 하다 만 월드컵대교의 교각이 물 위에 한 줄로 튀어나와 있었다. 막 뒤로 넘어가는 해가 멀리 늘어선 아파트들 위 중앙에 떠 있고 구름들은 태양을 향해 쏠려있었다. 황혼이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흐악!” 


 같이 난간에 엎어진 채 헉헉댔다. 검푸른 한강 물이 바람 따라 넘실거렸다. 난간이 뭔가에 진동했다. 무너질 것 같은 느낌에 무서워서 몸을 뗐다.


 “저건 이제 공사 안 하나?” 


 차가 안 보이자 마음이 놓인 내가 한강 위로 줄지어 튀어나온 교각을 가리켰다.


 “뭐? 저 네모난 블록 같은 거?”


 “응. 월드컵대교. 십 년 안에 다시 못 짓는다에 한 표.”


 “난 짓는다에 한 표.”


 “백만 원 빵 할래?”


 “그러든가.” 


 하늘이 우리 앞에 미술관에 걸린 풍경화처럼 펼쳐져 있었다. 난간에 팔꿈치를 대고 얘기를 하다가 정유성이 내가 나중에 자기 얼굴이 가물가물할 만큼 잊을 거라고 말했다. 난 덜컥 슬퍼 웃어넘겼다.


 “야, 저 끝에…그 차 아냐?”


 다시 뛰기 시작했다. 옆으로 차들이 꾸역꾸역 지나갔다. 우린 바쁘게 뛰어가는데 저 멀리 코딱지만한 비행기는 느긋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왜 이렇게 길어, 아, 나 진짜. 그냥 걷자. 어차피 여기서 저 차, 헉, 멈추지도 못해. 저 바보.” 


 성산대교를 걸어서 다 건넜을 때 차는 보이지 않았다. 흩어졌던 애들이 전화를 받지 않아 버스정류장이 나올 때까지 걸었다. 


 양화교에 닿았을 때 경찰차가 쫓아오기 시작했다. 우린 하천 위를 달렸다. 다리 끝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도로 위로 화려한 자동차 불빛들이 반짝거렸다. 정유성은 굉장히 빨랐다. 


 “우리 따로 뛰자.”


 내가 손을 놓았다.


 “왜?”


 “속도가 안 맞아.”


 섭섭했는지 표정을 굳히고 홱 뒤돌아 앞서 뛰어갔다. 그게 아니라 나 때문에 피해 보지 말라는 뜻이었는데. 쫓아오는 경찰도 잊고 뭘 잃어버린 사람처럼 텅텅히 서서 뒷모습을 쳐다봤다.


 한 줄로 늘어선 가로등이 띡, 띡, 띡 소리가 나더니 한순간 반짝하며 한꺼번에 불이 들어왔다. 오른편 건너에 있는 다리에도 노란 가로등 불이 다 함께 별처럼 들어왔다. 다리 끝에서 정유성이 뒤돌더니 다시 뛰어왔다. 놓았던 내 손을 세게 잡고 뛰어갔다.


 “이제 똑같지?”


 속도를 늦춘 정유성이 말했다. 검은 하천 위로 노란 불빛들과 다리 그림자와 건물 네온사인들이 함께 비춰졌다.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줄지어 늘어선 태극기가 저녁 바람에 팔락거렸다.


 하천을 지나자 다리 밑으로 도로가 깔려있었다. 왼쪽으로 가는 차들의 노란 헤드라이트와 오른쪽으로 가는 차들의 빨간 전후등이 도로 위를 수많은 빛으로 가득 채웠다. 


 결국 잡혀 지구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지형과 홍재완이 먼저 앉아있었다. 


 “도망을 왜 가요, 왜 숨어. 일만 커졌잖아.” 


 씨씨티비를 돌아보며 경찰이 말했다. 아빠에게 문자로 상황을 알렸다. 얼마 후에 엄마가 나타났다. 


 “어, 엄마.” 


 정유성이 벌떡 튀어올라 앉았다. 엄마는 충격적인 눈으로 정유성을 쳐다봤다.


 “안녕하세요.” 


 정유성이 구십 도로 인사를 했다. 엄마는 고개를 까딱이고 경찰관과 얘기하러 갔다. 바로 “가자.” 작게 말하며 내 손을 잡고 지구대를 나갔다. 


 “쟤 누구야?”


 차에 갈 때까지 아무 말 없던 엄마가 운전석에 앉자 조수석에 앉은 내게 입을 열었다. 


 “남자친구.”


 눈썹을 찌푸리며 왼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날 돌아봤다. 


 “쟤 딱 봐도 모델이나 연예인 하는 애잖아. 공부 잘 해?”


 “둘 다 아니야. 공부 열심히 하려고 해. 그리고 모델이나 연예인이 뭐 어때서.”


 “쟤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어떻게 된 일이야?”


 내가 설명하자 엄만 왼손으로 미간을 주무르며 한숨을 쉬었다.


 “너 공부 안 하니? 김은오, 너 내후년에 고삼이야.”


 “나도 알고있어.”

 

내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아는 애가 남자친구를 사귀어선 이런 사고를 쳐? 이거 대학 가는데 영향 미치면 어떡할거야? 너 얼굴 반반한거 좋아하지마. 그런 애들이 꼭 뒤통수 친다.” 


 “아, 좀. 말도 안 되는 편견이야.”


 발끈해 소리치듯 말했다.


 “니가 어떻게 알아?”


 “엄만 어떻게 알아?”


 “어른은 다 아는 거야.”


 “엄마가 제일 잘 아는 게 피아노고 제일 모르는 게 나야.”


 흥분한 나머지 묵혀둔 말을 토했다. 엄마가 멈칫하며 눈을 깜박였다. 


 “너 지금 잘했니? 미안하단 소리 한마디 없이 뭐야 지금?”


 아, 미안해…고개를 돌려 창문을 보며 성의 없이 작게 말했다. 엄만 말없이 날 보다가 앞을 보며 한숨을 쉬고 차를 출발했다.


 “내가 들어보니까 그 인간 반드시 합의금 뜯어낼거야. 알아서 냅둬놓고 도둑놈 만들겠단 심보야.”   



 부모님들이 다 모여 점주에게 사과하고 온 날 엄마가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침대에 털푸덕 앉았다. 난 네이버 학급 카페에서 정유성이 올린 게시물에 댓글로 ‘ㅗ’ 자를 이십 개쯤 달고 있었다. 의자를 돌려서 엄마를 봤다.


 “다 만났겠네? 정유성네 엄마아빠도?”


 “누구, 니 남자친구 걔?”


 “응.”


 “어. 지 아빠 빼다 박았더라.”


 거실에서 우리 집 분위기에 안 어울리는 우당탕 쿵쾅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거실에 효영이 아저씨 있어?” 


 엄마가 말없이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있었다. 맞다는 뜻이었다. 요란스러운 음악 소리가 들렸다.


 “자고 갈 거래?” 


 엄마가 말없이 천장만 보며 누워있었다. 맞다는 뜻이었다. 엄마가 열린 방문 틈새를 향해 목을 들고 특유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평소보다 크게 말했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


 대답 대신 집안을 쩡쩡 울리는 티비 드라마 오프닝 소리가 돌아왔다. 엄마는 한두 번이냐는 듯 고개를 돌렸다. 내가 물었다.


 “효영이 아저씨랑 결혼할거야?” 


 엄마가 말없이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있었다.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각시탈 한다! 야! 서현씨!”


 효영이 아저씨가 외쳤다. 난 엄마를 가만히 쳐다봤다.


 “엄마, 나 피아노로 대학 가기 싫어.”


 “또 레슨 갈 시간 되니까 저런다.”


 바닥을 쿵쿵쿵 뛰어오는 소리에 이어 문을 벌컥 열고 아저씨가 들어왔다. 


 “이강토가 오목단 좋아하는거 들켰어! 박기웅한테. 무슨 얘기해?”


 우리가 고개를 돌려 아저씨를 쳐다봤다. 아저씨는 ‘이런 좀비들’하는 표정을 짓더니 들어왔다.


 “아, 그래서 그런거 아니야.”


 내가 엄마에게 항의했다.


 “그럼 무슨 과 가고 싶은데?”


  “…….”


 “거기 지금까지 들인 돈이 얼마야?”

 

 난 대답 않고 컴퓨터를 돌아봤다. 메일이 왔다.


 활동정지 스텝: 정유성

 활동정지 사유: 비방


 “왜? 은오 뭐 하고싶은지 모르겠어?”


 “쟤 요즘 권태기 와서 저래.”


 아저씨의 물음에 엄마가 대신 대답했다. 난 벌떡 일어나 방을 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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