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성, 그 사랑
2. “문제는 섹스에 대해서 말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달리 없다는 데에 있다. 어째서 그런가?···섹스는 결합인데, 결합은 불가능하고, 불가능을 반복하는 일은 고통이기 때문에···고통을 피하기 위해서는 진실을 외면해야 한다.”(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597쪽-마지막 두 문장 순서 바꿈은 필자)
결합을 위한 유일 유력한 길인 줄 알고 들어서서 가보니 도리어 결합을 불가능하게 하는 심연을 목도하고 마는 섹스 고통. 고통인 섹스를 직시해야만 알아차려지는 진실. ‘진실은 늘 고통과 더불어 오고,’ 그 고통을 한사코 피하려는 인간에게 섹스는 진실을 은폐할 다시없는 수단이 된다. 진실을 외면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는’ 보상, 그러니까 생명 창조-그렇지 않은 섹스가 물론 있다-와 쾌락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결합했다고 스스로 속일 수 있는 천하 마약인 셈이다. 마약에 중독되지 않고 진실을 맞이하려면 결곡 곡진한 질문이 필요하다.
결합이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결합이란 사태가 가능하기는 한가? 결합이 가능하지 않다면 당연히 고통스러운가?
섹스는 하나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둘이 되기 위해서 하는 거룩한 행위다. 좀 더 진실에 육박한 기술(記述)은 “아름다운 둘이 되는 일이 바로 결합하는 일이다”(593쪽)다. 이 말을 두고 형용모순이니 이율배반이니 떠들기 전에 대뜸 알아차려야 할 진실이 있다. 즉, 우리가 결합을 오해하고 있다는 진실. 우리가 여태껏 속아온 결합은 제국주의적, 변증법적 결합이라는 진실. 제국주의적, 변증법적 결합은 반드시 폭력을 전제한다는 진실. 폭력을 전제한 결합은 없어야 한다는 진실. 아니. 당최 없다는 진실. 그 결합을 결합이라 한다면 극한 분열을 결합이라 우기는 짓이라는 진실. 우기는 섹스로는 참된 결합, 그러니까 아름다운 둘이 될 수 없다는 진실. 아름다운 둘이 될 수 없으므로 괴로움으로 받아들인다는 진실.
이제 진경으로 썩 들어서 본다. 아름다운, 아름다운 둘. 아름답다는 말이 핵심 중 핵심이다. 칼릴 지브란 절창 일부를 듣는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그렇다. 저 출렁이는 바다 때문에 아름답다. “무섭도록 내밀하고 끔찍하도록 격렬”(597쪽)한 “심연”(597쪽) 때문에 아름답다. 그 바다를, 그러니까 “몰락”(5쪽)을 “선택”(5쪽)하였기 때문에 “참혹하게”(5쪽) 아름답다. 아파서 아름다운 그 표정 둘은 “숭고”(5쪽)하다. 아프(痛)되 괴롭지(苦) 않다. 고통이라는 잘못 교배된 키메라 허깨비는 사라진다. 허깨비를 피하려고 외면하는 일도 사라진다. 직면하면 말할 수 있다. 그 말을 우리는 “섹스‘하는’” 인간이라 한다.
혼과 혼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 아름다운 둘이 되려 하는 사람들에게 그 바다를 메우라고 말하는 자, 그러니까 거짓 결합을 설파하는 자는 미상불 사탄의 주구, 그러니까 제국 백색문명 부역자일 테다. 부역자가 패거리로 몰려들어 아름다운 둘, 그 숭고함을 때려 부수는 일이 지금 이 땅에서 자행되고 있다. 무섭도록 내밀하고 끔찍하도록 격렬한 심연, 그러니까 아프디아픈 진실을 덮어야 제 곳간을 지킬 수 있는 자들이 생명과 안정이라는 미소를 흘리며 치명적 섹스로 홀리고 있다. 제국 백색 문명에 짓밟힌 사람이여, 오늘이야말로 녹색 섹스 ‘하는’ 삶을 살 때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