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34): 공시적 이야기-아베의 축원㉘
끗빨 패거리(정관계) 부역 서사 5
앞에 인용한 글들과 기본적인 취지를 같이 하면서 다른 시야를 열어주는 글 일부를 소개한다. 미디어오늘(
http://www.mediatoday.co.kr) 2023년 4월 12일에 고승우 님이 쓴 글이다. 지면을 빌어 감사드린다.
“미국이 2차 대전 후 남한에서 군정을 실시할 때 가장 중요시한 것은 소련이나 공산세력의 아시아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패전국 일본을 반공의 보루로 삼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미국은 일본에 천왕제의 유지와 관대한 전범 처리로 일본 지배계급과 연대하게 되는 방향을 추진했다.
미국은 동시에 남한을 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삼으면서 공산주의 세력의 저지선으로 삼기 위해 일본 등과 연합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보고 남한 정부에 친일 세력이 대거 진출할 수 있는 조치를 취했다.
미군정은 이를 위해 미군사고문단이 일본군 장교 출신 친일 조선인들을 앞세워 남한 내 치안을 담당할 군경을 조직하는 작업을 벌였다. 그런 과정에서 친일 인사를 우대하는 대신 독립군 출신 참여는 배제하면서 친미 세력 확충의 기반을 만들었다.
미군정은 군사영어학교를 개설해 일본군 장교출신 조선인들을 대거 입교시켜 친미세력의 배출처로 삼았다(Sawyer, Robert. Military Advisors in Korea: KMAG in War and Peace. Washington: Office of the Chief of Military History, 1962).
그 결과 1946년 남조선국방경비대 육군 사령관에 이어 이승만 정부 수립 이후 임명된 육군참모총장의 경우 초대부터 1969년 18대까지 일본육군사관학교나 미군정의 군사영어학교 졸업자들이었다.
오늘날 군 일각에서 주권 국가의 당연한 위상인 자주국방보다 한미동맹과 미군 주둔을 통한 군사적 예속이 최상이라는 주장을 펴는 것은 미군사고문단에 의해 의식화된 결과로 추정된다.
일제 치하에서 관리를 지낸 조선인 부역자들은 미군정 덕분에 반민족 세력으로 청산되기는커녕 하루아침에 해방정국의 가장 강력한 권력 집단으로 변신했다. 미군정은 행정 편의를 위한다면서 일제가 만든 관공서의 기능을 일부 부활시키면서 친일 부역자들을 기용한 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미군정기 전체 25,000명의 경찰관 중 일제 경찰 출신이 5,000여 명으로 전체 20%였다. 독립투사를 고문하던 노덕술, 하판락 같은 악질 일제 경찰 출신들도 미군정하에서 경찰이 된 것이다.
그러면 당시 광복군 출신이 경찰이 된 경우는 얼마나 될까? 놀랍게도 달랑 15명이었다. 이런 사실이 밝혀진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선 뒤인 2018년 12월이었다.
경찰청의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 TF’가 광복군 유공자 567명의 행적을 전수 조사한 결과, 경찰 입직이 이미 확인됐던 3명 이외에 12명이 경찰관으로 활동한 사실이 새롭게 발굴됐다. 광복군 출신 독립유공자 중 15명이 대한민국 경찰에 투신했던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KBS 2018년 12월2일).
친일파들은 미군정 하에서 군과 경찰 등에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으면서 미군정의 친일 청산을 적극 저지했다. 이들은 민족 반역자 또는 부일협력자의 선거권을 박탈하고, 고등경찰을 지낸 자에 대한 피선거권을 박탈하려는 특별조례법의 시행을 저지했다. 이들은 이 조례법의 입법 추진에 뇌물 제공 등을 통해 반대하는 로비활동을 벌이다가 통과되자 미군정에 취소 탄원서를 제출해 결국 이 법이 시행되지 못하게 만들었다.
미군정은 친일 경찰을 두호했다. 그것은 미군정은 친일 경찰 청산을 주장한 경찰 간부를 파면한 것에서 드러났다. 미군정은 1946년 10월1일 식량 수급 정책에 반발하는 '대구 사건'이 발발하자 그 원인분석 결과 일제 경찰 청산 등 경찰쇄신 문제가 제기됐지만 수용하기를 거부했다.
미군정 당시 경찰력의 20%가 일제 침략자들에게 부역한 인물들로 채워지면서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민중을 고문, 학살하는 살인마와 같은 쇠몽둥이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해방정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반공, 멸공이라고 보고 민중을 빨갱이로 몰아가는 짓을 수없이 저질렀다.
친일 경찰은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치하에서 온갖 반민족적인 범죄행각을 자행했는데 그 선봉에 선 인물의 하나가 조병옥이었다. 제주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가 공개한 조병옥에 대한 관련 자료는 아래와 같다.
‘조병옥은 4·3 발생 직후 일제 강점 시기에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살인적으로 고문한 친일 경찰들을 대거 현장에 투입해 진압하게 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제주도민이 학살당했다. 특히 조병옥의 비호를 받는 서북청년단의 무차별적 테러가 4·3 사건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주장도 제기된 바 있다.’
이승만 정권은 미군정이 기용한 일제 경찰들을 그대로 이어받은 데 이어, 서북청년단을 경찰 인력으로 흡수했다. 그 결과 경찰은 6·25를 전후해 수많은 양민을 불법적으로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친일 경찰의 만행 가운데 가장 심한 것 가운데 하나는 1949년 6월6일 자행한 ‘반민족행위자 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를 습격한 사건이다. 이승만은 친일파 처벌에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반민특위의 활동을 비난하는 담화를 여러 차례 발표했다. 나아가 반민특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반민족행위처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등 반민특위의 활동을 불법시하고 친일파를 적극 옹호하였다.
이승만은 제주 4·3 비극이 진행되는 동안 반민특위가 친일 경찰들을 구속하자 반민특위를 와해시키는 식으로 친일 경찰을 적극 두호했다. 반민특위를 주도했던 국회 소장파 의원 13명을 남로당 프락치라고 체포한 데 이어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하면서 특위는 극도로 위축되어 업무 개시 8개월 만에 무력화된다.
그 후 1949년 10월에 반민특위, 특별검찰부, 특별재판부는 해체되었고 반민족행위처벌법은 1951년 2월에 폐지되어 친일파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장치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승만이 친일파 청산을 방해하면서 한국 사회는 수십 년 동안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친일 경찰은 이승만 정권하에서 경찰력의 중심 세력으로 뿌리를 내렸으며 다수가 정부 훈장을 꿰차기도 했다. 지난 2016년 뉴스타파의 보도에 따르면, 친일 인사 222명에게 해방 후 440여 건의 훈장이 수여됐다. 일제로부터 훈장과 감사장을 받은 뒤, 해방 후 대한민국 훈장을 받은 친일파도 48명으로 집계됐다. 그 가운데는 친일 경찰로 가장 악명 높았던 노덕술도 포함됐다.”
“3·1운동이 발생한 뒤 1백여 년, 광복이후 70여 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독립운동 유공자가 발굴되고 있다. 이는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진 사람들에 대한 후손들의 작업이 부진했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이승만이 친일세력과 손을 잡고 반민족적 정치를 한 결과의 하나로 그 후유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발굴과 서훈 작업은 물론 독재정권에 항거해 민주주의 확립에 기여한 민주인사들에 대한 처우도 지지부진 상태다.
국가보훈처가 지난 수십 년간 독립운동 발굴과 서훈 등에 비판을 자초하는 자세를 취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며, 이런 부적절한 태도는 독재정권에 항거해 민주주의 쟁취에 헌신한 민주인사들에 대한 정당한 예우에 소홀한 것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이승만 정권 이래 수년 전까지 실시한 국가유공자 지정 등 국가 차원의 보훈 결정 96%는 군과 경찰에 집중되어 있고 독립유공자와 민주유공자는 모두 합쳐 4%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는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하면 본인은 물론 가족이 대를 이어 고생한다는 말이, 참혹한 현실을 고발하는 진실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수치다(한겨레 2019년 05월08일).
국가보훈 대상자는 국가보훈기본법 제3조 제1항에 네 개의 범주로 나눠 규정하고 있다. 첫째 일제로부터 조국의 자주독립, 둘째 국가의 수호 또는 안전보장, 셋째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발전, 넷째 국민의 생명 또는 재산의 보호 등 공무수행이다.
2019년 2월 발표된 국민중심보훈혁신위원회 의결 권고안에 따르면, 이 법에 따른 보훈 대상자는 2017년 12월31일 현재 2,573,100명으로 그 96.3%가 군인(일부 경찰 포함)이고 독립유공자는 2.9%(75,068명), 민주유공자는 0.8%(21,128명)에 불과하다. 민주유공자는 4·19혁명 및 5·18 유공자뿐이다.
4·19혁명 및 5·18 민주화운동 외에 민주주의 발전에 헌신한 민주인사들, 이른바 ‘민주 관련자’들을 민주유공자에 포함하기 위한 입법 추진이 2000년 이후 최근까지 여섯 번째 발의되었지만, 현재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김세진, 이재호 등 자신을 희생해 민주주의 발전에 헌신한 인물 등도 국가유공자 대열에 끼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불합리를 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난 20년간 계속되었으나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 국가보훈처는 아예 대놓고 특권층 부역자들이 국가 보훈 대상자 심사를 하도록 판을 엎어버렸다. 심사위원에서 광복회 회장을 배제하였다. 자신들 신분을 세탁하고 특권을 배가하기 위한 협잡질이다. 현재진행형 대한민국 모습이다. 알면 알수록 고통이 깊고 무거워진다. 한평생 기조 우울증에 시달리며 살아왔는데 황혼이 짙어가는 지금 더 엄중한 상태로 미끄러지는 중은 아닌지. 이렇게 살아봐야 우리 공동체에 어떤 이득도 남기지 못하는 건 아닌지. 물색없는 노인이 주책없이 벌이는 삽질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