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의학 소설-
내 이름 ㅍㅎ는 동종 업계에서 뜨르르하다. 내 성공은 극단적 영업 전략 구사에서 비롯했다. 극단적 영업 전략은 내가 지닌 극단적 세계관의 구체화다. 내 극단적 세계관은 생애 어느 순간 입은 날카로운 트라우마에서 형성되었다.
승승장구 사회경제적 성공 가도를 달려 안정 풍요를 구가할만한 시점에 다다른 어느 날, 나는 충격적 공허와 마주쳤다. 당혹감은 나를 주저앉혔다. 이 깊고 텅 빈 어둠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두리번거리다가 이른바 영성 프로모션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았다. 기품 없으되 경영 마인드 갑인 자기 계발 프로젝트에 거금을 쏘아 공허감 극복을 시도했다.
물론 효과는 있었다. 문제는 효과가 반드시 단계별로 나누어 나타난다는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 효과는 다음 효과를 위한 미끼여야 하니 말이다. 높은 단계로 올라갈수록 요구하는 돈은 당연히 수직 상승한다. 어느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 자신을 발견하고서야 나는 혹시 다른 길이 있지 않을까,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소개받은 숙의치료자를 찾은 이유였다.
숙의를 시작하자마자 대뜸 나는 ㅍㅎ가 많은 가면을 쓰고 산다는 사실을 간파할 수 있었다. 가면을 쓰는 이유는 드러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유는 자기 삶 소중한 일부로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가면이 많다는 사실은 삶 도처에 있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억누르고 산다는 증거다; 결국 삶 전반이 거대한 자기부정증후군에 빠져 있다는 증거다. 나는 나직나직 말했다.
“이런 상태를 의학에서는 우울장애라고 합니다.”
찰나적으로 그 눈빛이 날카롭게 흔들렸다. 아마 처음 듣는 말이었으리라. 그는 예의 그 가면으로 능숙하게 눙치고 지나갔다. 나는 모르는 척, 무심한 어조로 처방을 내렸다.
“치료가 필요하지, 자기 계발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자기 계발이 메우는 바는 공허가 아니라 공허감일 뿐입니다. 공허가 실재임을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려면 우울 본진과 마주 서야 합니다.”
수긍 여부와 무관한 표정으로 그는 심각하게 고려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얼마 뒤, 그가 자신이 참여했던 자기 계발 프로젝트와 관련된 일에 거액을 투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그 길은 그가 결정할 권리를 지닌다. 나는 그 결정이 독선이 낳은 독단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화살은 이미 어긋난 방향으로 떠나버렸다.
마냥 휑한 것만은 아니었다. ㅍㅎ 덕분에 잠시나마 속물근성 댕댕하게 불려 끌탕할 수 있었다. 아, 그 돈이 개 아깝게 느껴지지 뭔가. ㅍㅎㅍ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