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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Mar 14. 2024

나나보조 이야기 181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5 


         

껍데기알맹이    

 

뜻밖에 총명하고 깔끔해 보인다. 똑 떨어지는 서울말을 구사한다. 경위가 바르다는 인상을 준다. 함부로 끼어들거나 헤프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하물며 허리까지 꼿꼿이 편다.

      

맑은 정신일 때 1-2가 그려내는 최상급 풍경화다. 막상 아프고 슬픈 내면 풍경으로 들어갈라치면, 돌연히 마치 내면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반응한다. 기억도, 기억에 붙어 있는 감정도 일절 흘러나오지 않는다.

      

1-2는 중증 알코올중독이다. 전문병원에도 들락거렸으나 나아지는 바 전혀 없었다. 지친 가족이, 그러니까, 딸이, 그러니까 아들이 손을 놓아버렸다. 결국, 그는 영리하고 치밀하게 술만 ‘흡입하는’ 생활을 영위하는 자유를 획득했다. 빠른 속도로 몸도 마음도 허물어져 가는 일이 그 자유가 주는 대가였다. 

      

0은 일단 1-2가 병과 생을 숙의할 힘이 남아 있는지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그 깍듯한 페르소나에 말려 희망 끈을 놓지 않았다. 얼마 가지 못했다. 그는 오직 껍데기로만 존재하고 껍데기로만 말할 뿐이었다. 더는 속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드러낼 속이 본디부터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대화 지속은 무의미했다. 잠깐 퍼포먼스 외출을 끝내고 그는 이내 옛 생활로 복귀했다.   

  

1-2를 보낸 뒤, 0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정말 그에게 내면은 없는 걸까? 사실 우리가 쉽게 내면이라는 말을 쓰지만, 외부 세계와 절연된 내면이란 있을 수 없다. 내면은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 형성되는 기억·감정·각성·의지 흐름이다. 결국 내면 내용은 관계 내용이다. 내면에 어떤 문제가 있다면 관계에 문제가 있다. 이런 이치로 본다면, 마치 내면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일은 그가 접촉은 하지만 실질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 일이 낳은 결과다. 실질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 까닭은 모름지기 상처일 터. 그 상처를 각성하지 못하는 한 이 악순환 고리는 끊을 수 없다. 그 경우, 상처는 즉자적 상태, 그러니까 몸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각성 이전 아득한 시간으로 퇴행한 상태다. 막강한 퇴행 후원자가 바로 술. 술은 모성 이미지로 그를 포근하게 감싸 각성이 주는 서늘함을 차단한다.  

    

이런 전경 앞에서 의자는 겸허와 절망을 동시에 느낀다. 그가 가는 길을 빤히 보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0은 그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나마. 그러니까. 하염없이. 한도 없이 


          

 와 ’ 사이  

    

“한 사람이 평생 겪는 불행의 최소치는 있지만 최대치는 없다.” 

     

이치에 닿는 말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는데, 들으면서 실제로 그렇지 싶다는 생각이 불쑥 솟아오른다. 내 얘기 같으니 말이다.  

    

처음 0 선생님을 뵈었을 때, 나는 4살짜리 아이 하나를 두고 이혼한 상태였다. 아이 양육권은 저쪽이 가져갔고, 나는 월 1회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 파국은 어쩌면 예견된 바일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일찌감치 이혼해서 나는 계모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와도 계모와도, 그리고 낳아준 어머니와도 친밀하지 못했다. 당연히. 근본적인 친밀감 결함을 안은 채, 지르듯 혼인했으니 당최 제대로 된 일이 아니었다. 

     

눈물을 흘리며 내게 벌어진 아프고 쓰린 이야기를 하다가 0 선생님께 저녁 식사를 대접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흔쾌히 그러라고 말씀하셨다. 한창 맛있게 식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어느 순간 내가 느닷없이 여쭈었다. 

    

“선생님, 제 아버지가 돼주실 수 있나요?”   

  

앞서 했던 수많은 말보다 사실 이 한마디가 내 모든 병리를 함축하고 있는 무엇이었다. 0 선생님께서는 처음 겪는 일 아닌 듯, 별 망설임 없이 그러마고 대답해 주셨다. 그 뒤로 나와 0 선생님은 부모 자식처럼 삶의 구석구석을 이야기했다. 우여곡절 끝에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 재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과정도 함께 지켜보았다. 아이 건강에 문제가 생겨 천신만고하는 모습도 함께 지켜보았다. 온갖 갈등을 겪다가 다시 이혼하는 풍파도 함께 지켜보았다. 문제는 내가 아버지를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내가 원한 아버지가 이런 노릇이 분명 아니었을 텐데, 나는 미리 도움을 청해서 실수와 실패를 예방함으로써 삶을 바꾸는 길을 택하지 못했다. 일이 터진 뒤에 ‘왜 자꾸 이러는 걸까요?’ 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사후에 내린 아버지 처방조차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한동안, 아니 오랫동안 소식이 끊길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연락해서 약속을 잡으면 꼭 내게 무슨 일이 생겼다. 아니. 무슨 일을 만들었다. 약속은 미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루어진 약속은 끝내 아무 약속도 없었던 듯 스러졌다. 나는 꼼짝하지 못한다. 그저 이렇게 정리한다. 

 

“결핍이 낳은 그리움 때문에 타인이 내 경계 넘어 들어오는 일을 막지 못한다. 백발백중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그 그리움으로 타인 경계를 넘어 들어가지도 못한다. 내 삶을 바꿀 기회를 번번이 놓칠 수밖에 없다.” 

   

나는 아직도 0 선생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 내가 그날 이렇게 여쭈었더라면 삶은 분명히 달랐으리라.

      

“선생님, 제가 아버지로 모셔도 될까요?” 

    

아, 젠장. 나는 아직도 그 질문을 하지 못하고 있어. 우울증이라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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