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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Mar 27. 2024

나나보조 이야기 192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16     


     

진면모   

  

마음 실상을 표정으로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 마음 실상을 표정으로 감추는 사람이 있다. 3-3을 처음 보았을 때 뭐랄까, 결곡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호소하는 증상으로 판단컨대 그가 짓는 결곡한 인상은 아무래도 마음 실상을 은폐하기 위해 형성된 방어기전일 가능성이 컸다.   

   

나이로 따지면 그는 확실히 중견 간부급 회사원이다. 이를테면 산전수전 다 겪은 사회생활 베테랑이랄 수도 있는 위치였다. 그런 그에게 문제는 단순하다 못해 사소하기까지 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데서 뭔가 손으로 움직여 하는 간단한 동작을 못 한다는 사실이었다. 과도하게 손이 떨리기 때문이었다. 0이 물었다.    

 

“떨릴 때, 어떻게 대응하십니까?”  

   

3-3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당연히 억제하죠.”  

   

0이 다시 물었다.  

   

“억제하면 잘 되시던가요?”    

 

3-3이 찰나적으로 화난 표정을 지었다가 풀었다는 사실을 0이 모를 수 없다. 잘 됐으면 왜 여기 왔겠느냐는 뜻이니 말이다. 0은 나지막이 말했다.     


“일부러 더 크게 떨면 잘 됩니다.”  

  

이번에는 정말 화가 난 듯했다. 손 떨림을 과잉 동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치료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다. 3-3은 이름 석 자 대면 웬만한 사람 다 아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한테 매우 오랫동안 치료받았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0이 이치를 설명했다.   

   

“원하는 정상 상태는 손동작을 멈추는 일이 아닙니다. 유연하게 작동하는 일이죠. 그러니까 문제 되는 손 떨림이 두려움 때문에 억제되어 나타나는 경련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관건입니다.”    

 

3-3은 끝내 수긍이 가지 않는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0은 그 생각을 돌이키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손 떨림 본질을 오해하는 일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근원적인 오해가 있습니다. 떨면 안 된다는 전제입니다. 남들 시선이 집중될 때, 떠는 일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왜 떨면 안 될까요?”  

   

3-3은 더욱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선생님도 떠십니까?”   

   

0도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물론입니다.” 

     

3-3은 실망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선생님은 떠시지 않아야 맞는 거 같은데요.”    

 

홀로 있을 때 홀로 행하는 손동작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하는 손동작이라면 이는 분명히 어떤 상호작용이다, 영향을 받지 않는 상태가 도리어 이상하다, 노련한 연극 배우도 수백 번씩 오르는 무대지만 그때마다 떨린다, 떨린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덜 떨다가 이내 유연해지고, 부정하면 더 떨다가 이내 경직된다, 다시 한번 곡진한 설명을 덧붙였다.  

    

3-3은 흔쾌히 한약 한 제를 짓기로 하고, 다음 상담 예약을 잡았다. 약속한 날 그가 오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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