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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Mar 28. 2024

나나보조 이야기 193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17



똑똑똑    

 

숙의 치유자로 사는 동안 0에게는 그를 아버지라 부르는, 또는 그리 여기는 사람이 여럿 생겼다. 숙의 치유 과정을 겪으면서 그 정도 사랑과 신뢰, 그리고 존경 정서가 쟁여져서일 테다. 숙의 치유 길에서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아닐까, 짐작한다. 매우 각별한 인연으로 그를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 중에 내가 있다. 내 이름은 3-4다.  

   

어느 해 겨울, 처음 0을 찾아갔을 때, 내 상태는 마치 그 계절과 같았다. 몸도 마음도 얼어붙어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오로지 깨질 듯 달려드는 두통만이 살아 있는 표지였다. 바짝 마른 몸에 더 바짝 마른 마음이 일그러진 문짝처럼 을씨년스럽게 매달려 있는 풍경은 내가 보기에도 기괴했다. 얼굴에는 ‘신기(神氣)’가 파르라니 흘렀다. 눈빛 앙칼지기도 비수 같았다. 

     

나는 도대체 사회생활이 불가능했다. 극심한 대인공포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다. 하다못해 알바 자리 하나 구하려 해도, 사람 눈 마주 보며 면접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두통은 심해졌다. 아무 짓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치료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이상한 한의사 하나를 소문으로 듣고 달려갔다.   


        

3-4가 처한 기본적 상황 파악을 끝내고 치료 일정을 잡은 첫 숙의 일주일 뒤, 다음 숙의 치유를 예약했습니다. 무심코 잡아 놓고, 메모하지 않은 탓에 그 예약일이 성탄절인 줄 몰랐습니다. 까맣게 잊었으니, 한의원 문을 턱 하니 닫고, 저는 휴식을 즐겼습니다. 밤 되어 혹시 온라인 예약이 들어왔나, 살피려고 홈페이지를 열었습니다. 아뿔싸! 문 닫힌 한의원 앞에서 추위를 견디며 기다리다 돌아가서 쓴 글이 분노와 실망을 그득 품은 채, 숙의 치유실을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황급히 사과 글을 올리고, 바로 다음 날 오전 숙의를 제안했습니다. 그는 제 사과와 제안을 받아들여, 항의 글을 내렸습니다. 저는 제 사과 글을 내리지 않고, 끝까지 걸어두었습니다. 이따금 그 글을 읽으며, 치료자 자세를 가다듬곤 했습니다. 이렇게 액땜을 다부지게 하고 나서, 저와 그 사이 인연은 빠르게 깊어졌습니다.  


         

내 부모는,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불화는 다양하게, 그러나 한결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되었다. 내가 중학생이었을 무렵, 어머니가 집을 나가버린 사건이 악화 기폭제로 작용했다. 결국 아버지 외도로 비화하면서 이혼으로 끝이 났다. 나는 어머니를 선택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받은 상처는 컸다. 제대로 학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가 제대로 지원하지 않아, 생활도 궁핍을 면할 수 없었다. 아버지와 점점 더 소원해졌다. 어머니는 시나브로 알코올중독에 빠져들었다. 우울과 불안이 함께 나를 덮쳤다. 사소한 일상마저 깡그리 무너졌다. 


          

이런 상황이 그대로 계속될 때, 3-4가 갈 수밖에 없는 길이 제 눈에 보였습니다. 저와 같은 부류 사람 눈에만 들어오는 육감 같은 무엇입니다. 다름 아닌 영적인 길입니다. 이미 그 주위 사람들은 신병이라고 수군대고 있었습니다. 사회 평판을 문제 삼아서가 아니라, 그 삶에 드리울 신산함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기에, 어찌하든 피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고민하던 제게 홀연 타개책이 떠올랐습니다.  


         

0이 어느 날 다른 여지가 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제3의 길이 딱 하나 있다. 좋은 분 소개할 테니 가봐.”    

  

그가 던진 승부수는 다름 아닌 요가 마스터였다. 그가 소개할 사람 이름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우연히 한 번 뵌 적이 있는 분이기 때문이었다. 신기하다기보다 운명 같았다. 나는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늘 순탄하지만은 않지만, 나는 지금 요가 마스터 길을 나름대로 곡진히 가고 있다. 어느 날 뜬금없이 나는 0에게 가겠다고 연락했다. 막걸리 한 잔 대접하며 내가 말했다.

     

“그날 아버지가 던지신 승부수, 아무래도 제 인생에서 신의 한 수 같아요.”  


        

바쁜 탓인지 나를 잊은 것인지 요새 3-4한테서 통 연락이 없습니다. 오늘은 제가 한번 카톡 해볼 참입니다. 번개를 제안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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