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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Mar 29. 2024

나나보조 이야기 194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18



 

    

70년 가까이 살면서 만난 사람 중에, 첫인상이 가장 좋았던 3-5는, 무척 잘 생겼고, 키도 크며, 목소리까지 맑은 데다, 빙긋 웃음은 그야말로 매혹이었습니다. 심지어 마음씨도 비단결이었습니다. 딱 거기까지입니다. 신이 스토킹해서 그의 인생은 심하게 망가졌습니다. 

     

저를 처음 만났을 때, 이혼한 뒤 홀로 산 지 이미 여러 해 된 터였습니다. 극심한 우울증 때문에 여러 번 폐쇄병동을 들락거려야 했습니다. 여러 차례 자살을 기도해, 손목에는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생에 대한 애착을 잃어버려 피폐해진 심신 상태 때문에, 그는 수시로 생사 문턱을 넘나들곤 했습니다. 만난 이후 10여 년 동안, 저만해도 그를 세 번이나 살려내야 했습니다. 그가 저를 아버지라 부를 만하지 않습니까? 

    

두 번은, 음식점에서 쓰러져 호흡이 정지된 상태에 있는 그를 인공호흡으로 살렸습니다. 마지막 한 번은, 참으로 극적이었습니다. 제가 인생에서 맞닥뜨린 가장 힘든 일 때문에 허덕이던 어느 날 늦은 밤, 술에 취해 귀가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지, 저···죽나 봐요. 무서워 죽겠습니다.”  

   

택시를 잡아타고 그가 홀로 사는 집에 당도해 보니, 손목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온갖 술병이 어지러이 나뒹굴었습니다. 이곳저곳 핏자국이 낭자했습니다. 그를 들쳐업고 가까운 병원으로 뛰었습니다. 응급실에서 가족한테 알린 다음 돌아서 나오는데, 먼동이 터오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목숨 줄로 이어져, 저는 그 삶 구석구석까지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숙의 치유실에 마주 앉아서가 아니라, 그 삶이 그리는 동선을 따라가면서 크고 작은 일에 전천후로 엮였습니다. 그에게 일어나는 일이라면, 잠자리 빼고는 죄다 알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연애하고 결혼하는 일에 권유든 만류든 깊숙이 관여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함께 살아낸 세월 겹 위로 얼마만큼 안정된 빛이 그에게 비추고 있습니다. 이제 더는 그의 삶에 동행하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하며 살다가 문득 소주 한잔하는 정도면 만족합니다. 언제라도 그는 전화해 이렇게 말할 터입니다.  

   

“아버지, 낼 저녁 소주 한잔하시죠!”  

   

그와 제가 함께 했던 삶에서 일어났던 일을 더 구구절절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는 까닭을 아실 듯합니다. 혹시 3-5와 제가 소주 한잔할 때, 함께 하고 싶으시다면 연락하십시오.    



큰 눈   

  

“도통 뭘 삼킬 수가 없어요. 침 맞으면 밥 먹을 수 있나요?”   

  

낯빛이 새카맣게 죽은 3-6이 진료소 문을 밀치면서 소리쳤다. 0은 곡절이 있지 싶어 침 치료를 하면서 이리저리 말문을 두드려 보았다. 완강히 부인하는가 싶더니만 이내 기총소사하듯 말을 쏟아냈다. 

    

원인은 배우자 외도. 어느 종교단체 회원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현장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그는, 맹렬한 분노와 배신감을 여전히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었다. 3년째 부부는 똑같은 말로, 똑같이 소리치며 싸웠다. 이제는 아들딸들조차 지쳐서, 이혼하라고 말할 지경에 이르렀다. 진중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0이 물었다. 

   

“그 정도라면, 이혼하셔야 맞는 일 아닐까요?”  

    

3-6이 발자한 어조로 대답했다.   

  

“경전에 이혼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0은 단호함은 빼고 진중함을 더해 다시 물었다.      


“경전에 혹시 용서하라는 말씀은 없나요?”

     

민망한 표정을 지을 뿐, 아무 말이 없다. 그가 어떤 유형의 종교인인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런 사람들이 생애 기준으로 삼는 가치는 대부분 한쪽으로 치우쳐 있기 마련이다. 0은 부드럽게 어조를 바꾸어 다른 질문을 던졌다.      


“외도 상대방을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지닌 어떤 매력이 배우자분을 흔들었다고 생각하세요?”    

 

의외의 질문을 받은 3-6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익숙한 가부장적 어휘 몇 가지를 나열했다. 대답하는 그 얼굴에는 이미 다음 질문을 안다고 쓰여 있었다.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한 번도 정색하고 생각하거나, 문제 삼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0은 물론, 그가 예상하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대신 질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붙였다. 잠시 숨을 고른 다음, 결정적 질문 하나를 던졌다.    

 

“사달이 나기 전까지 부부간의 성생활은 어땠습니까?”  

   

그 발자함으로 이내 돌아왔지만, 3-6의 대답에는 어쩐지 겸연쩍은 기색이 묻어 있었다.   

  

“20년 이상 전혀 없었습니다.”     

 

0은 역시 간단히 질문에 대한 설명을 붙였다. 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 일주일 뒤로 숙의 예약을 잡고, 3-6은 돌아갔다. 사흘 뒤,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외람되지만 더는 상담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그 사람을 봐도 더 이상 화가 나지 않습니다. 신기해요. 밥이 잘 넘어갑니다. 정말 신기해요.”  

   

0은 싱그러운 리듬을 넣어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달포쯤 시간이 흘렀다. 3-6이 발목을 접질렸다며 침 치료받으러 왔다. 부부간 평화와 안정이 잘 유지되고 있다는 말을 전하면서 재삼 고맙다 했다. 그들 부부가 삶을 큰 눈으로 돌아봤음이 확실했다. 무엇이 큰지를 구태여 말할 필요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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