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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Apr 20.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13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36 


         

귀신 연구  

   

우리는 흔히 의학을 자연과학이라고 오해한다. 의료인도 환자도 자연과학이라면 지녀야 할 객관적 타당성·정확성을 전제하고 진단과 치료에 임한다. 제국주의 부산물인 서구 백색의학은 이런 자부심과 체계적 사기술이 결합한 키메라다. 무엇을 어떻게 왜 질병으로 인정하는가? 이 문제는 자연과학인 의학적 연구가 결정하지 않는다. 인문·사회적 조건, 정치·경제학적 역관계가 얼마든지 자연과학 연구 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 아니 거꾸로 인문·사회적 조건, 정치·경제학적 역관계가 자연과학 연구를 지휘하고 통제한다. 실제로 미국 정신의학 협회(APA)가 펴내는 정신장애 진단과 통계 편람(DSM)의 주요 내용을 초국적 제약회사의 로비가 좌지우지한다. 자연과학으로서 의학은 제국 자본주의 푸들로 소비되는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DSM-5가 신경발달장애로 분류하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우, 진단과 치료에서 남용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이미 광범위하게 남용되고 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로 진단받고 약물을 복용하고 있는 10대 초반 8-4가 왔다. 부모는 물론 가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는 사태의 본질을 모른 채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제국주의 백색의학에 따른 진단 소견에는 ‘반응과 정보처리 속도가 느리고 반응 일관성이 부족하므로 주의·집중력 문제가 시사됨.’이라고 적혀 있었다. 흔히 보는 지극히 타성적인 진단 소견이다. 8-4는 약을 먹으며 학습 효율은 다소 높아졌지만, 식욕이 현저히 줄었다. 그러자 늘 그러하듯, 식욕을 높이는 약이 추가 처방되었다. 문제를 이렇게 기계적으로 ‘처리해’ 놓고 담당 정신과 의사는 더 신경 쓰지 않았다.  

    

8-4에게 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그가 말했다.   

  

“선생님, 귀신이 보여요. 웃음소리도 들리고요.” 


         

조현병까지는 아니니까, 그냥 귀신이 어디 있냐 하고 정신과 의사는 물론 엄마 아빠도 일소에 부쳤다. 0 선생님은 내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셨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하시기에, 귀신 얼굴색은 시퍼렇고, 하얀 옷을 입었으며, 가라고 쫓아도 피식 웃고 만다, 모두 여자아이며, 서서 노려본다, 어떤 경우는 계단 구석에 처박혀 목이 꺾인 채 있는 귀신도 봤다, 실은 어제오늘 문제가 아니었다, 7살 이후 줄곧 겪어온 일이다, 꿈일 때도 있고 생시일 때도 있다고 말씀드렸다. 말을 먼저 걸더냐고 물으셔서 그런 적은 없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단호하되 따스한 어조로 내게 말씀하셨다. 

     

“8-4야, 걔 귀신 맞아.”  

   

내 눈이 반짝 빛났다는 사실을 나는 알아차렸다. 한 찰나에 안도하는 웃음과 호기심 어린 갸웃거림이 함께 지나가는 풍경을 선생님은 놓치지 않으셨다. 지체하지 않고 내 의문을 해소해 주셨다. 선생님은 다시 따스하되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그 귀신, 너야!”   

  

선생님 말씀을 나는 단박에 알아들었다. 정작 놀란 사람은 엄마였다. 이 대화 과정을 지켜보며 몇 차례 당혹스러운 순간을 겪었을 테지만, 마지막 순간이 아마 가장 놀라웠으리라. 0 선생님은 내게는 군말을 덧붙이지 않았으나, 엄마한테는 보충 설명을 상세하게 해주셨다. 아이와 어른 차이다. 더 이상 귀신이 나타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나는 얼마 뒤, 기회가 되어 외국으로 갔다. 내게 그 나라는 다시없는 해방공간이었다. 아무도 나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라고 낙인찍지 않았다. 학교 교사들은 내 행태를 개성으로 수용하고 걸맞은 교육을 실행했다. 나는 이제 대학생이 되었다. 엄마 아빠를 포함한 주위 사람들은 여전히 잘 적응이 되지 않겠지만, 나는 언제까지라도 나로서 신나게 잘 살아갈 작정이다. 귀신과 합체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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