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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Apr 27.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19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42



밥심 

    

나는 그 중2다. 인터넷 돌아다니다 우울증을 숙의로 치유한다는 0 쌤을 발견했다.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아빠한테 허락받지도, 치료비가 있지도 않았지만, 숙의 치유를 받고 싶었다. 형편이 이 정도임을 눈치챈 쌤이 먼저 교통비는 있냐고 물어왔다. 그리 멀지는 않지만, 나는 지방 도시에 살고 있었으니까. 교통비는 있다고 내가 대답하자 쌤이 웃으며 물었다.   

  

“쌤이 사기꾼처럼 느껴지지 않니?” 

    

“아뇨.”   


       

안정된 음성이 건너왔다. 다음 날이 마침 토요일이라 오전 중으로 오라 말했다. 다소 들뜬 짧은 대답 소리와 함께 9-4는 벌써 내 마음 한편에 궁금증으로 자리 잡았다.   

    

다음 날 오전 나타난 9-4는 예상대로 온몸에 불안과 체념을 휘감고 있었다. 얼굴에는 한가득 허기를 머금었고. 여느 사람 눈에는 영락없는 날라리였겠지만, 내게는 가난과 애통 풍경이 남김없이 드러나 보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이는 조잘조잘 한도 끝도 없이 얘기 타래를 풀어냈다.  


         

엄마는 정신병이 있었고, 진즉 집을 나가버렸다. 우울증에 빠진 아버지는 가정을 적극적으로 수습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내게 최소한 생존 조건만 제공한 채,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방치된 상태에서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예 공부를 포기해 버렸다. 왕따당하고 매 맞는 것일 학교생활 전부였다. 급우들은 심심하다고 때리고, 화난다고 때리고,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 엄마 놀이하며 때렸다. 나는 왠지 알 수 없지만, 매를 맞을 때 화를 내면 안 된다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문제 삼지도 않았으니 당연히 담임도 아빠도 알 리 없었다. 내 사정을 알게 된 날라리들이 내게 집을 개방하라 요구했다. 술과 담배를 사 들고 들어와 실컷 놀고 자고 가기를 반복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술에 취한 채 속수무책이었다.   

   

“쌤, 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해요?”  


        

문득 말을 멈춘 9-4가 영판 다른 얼굴로 내게 물었다. 이야기를 들을 때는 가슴이 먹먹하더니, 느닷없이 던진 질문을 들으니 머리가 멍멍해졌다. 이런 처지 아이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그런 말이 있기는 할까? 침묵하고 한참 아이 눈을 들여다보았다. 아이도 내 눈을 말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나는 그냥 웃었다. 아이도 따라 웃었다. 내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아이에게 말했다.  

   

“밥 먹자!” 

    

9-4는 냉큼 일어섰다. ‘나는 오늘 밥 먹으러 왔다.’라는 표정을 지으며 아이는 참으로 오달지게 밥을 먹었다. 나는 밥 한 그릇을 더 주문해 가만히 아이 앞에 밀어주었다. 아이는 눈 한 번 반짝 크게 뜨더니, 이내 밥그릇을 끌어당겼다. 잠시 뒤 그 밥그릇마저 깨끗이 비어 있었다. 콧잔등에 송송 맺힌 땀방울이 마치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9-4를 보내고 돌아서면서 나는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한 끼 밥이 백 마디 말보다 나을 때가 있다는 사실. 더 나아가, 밥 먹는 일이야말로 가장 근원적인 인간 행위라는 진실.    


       

나는 이제 스물아홉 살이다. 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지, 아니 기억이나 할지 알 수 없다. 쌤 기억에 나는 없고 밥 한 그릇만 남아 있어도 좋다. 그날처럼 오달지게 밥 먹는 나날이 계속되는 축복은 아직 내게 오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게 쌤 이름 0은 나날이 오달지게 기억되는 중이다. 자신이 익명 존재 아니라는 거 지금쯤 쌤 스스로 인정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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