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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Apr 30.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21

-허울 대한민국 부역 사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44  


        

아리홀가분  

   

나는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행복하다 느낀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외도, 도박, 사채, 폭력에 절은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모든 어려움에 쩔쩔매다가 집 나가겠다는 말을 수없이 되뇔 뿐, 어떤 타개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맏이로서 부담감은 크게 느꼈지만, 부합하는 이행이 따르지 못해 늘 자책감에 시달렸다. 연애도 순탄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다정다감하지 않은 터라 나 자신도 친밀감 부분에서 매우 서툴렀다.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될수록 상처만 커갈 따름이었다. 아침에 눈 뜨면 불안이 파도처럼 밀어닥쳤다. 무력한 시간으로 하루하루가 채워지면서 가슴은 텅 비어갔다. 그만 살자,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숙의 치료자 0을 찾아갔다. 

   

짧게나마 실팍한 숙의가 이루어졌다. 그 뒤 얼마 동안, 나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그와 맺은 인연을 놓지 않았다. 그러다가 힘든 연애와 결혼 생활 때문에 소식을 끊었다. 어느 날 그 온라인 상담실에 글 하나를 올렸다. 

   

“선생님,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껏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원하지 않는 결혼을 했습니다. 누가 떠밀지도 않았고, 반드시 해야만 하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배우자가 암만 봐도 못된 인간이라거나, 그 가족이 죽일 듯 스트레스를 준다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 사람과 제가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이 문제였습니다. 사소한 취향부터 말버릇까지 제가 싫어하는 요소만으로 구성해 놓은 사람 같았습니다. 딱 하나, 저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을 사람이라 믿었습니다. 그 믿음 하나로 연애 동안 불거지는 불안을 모른 척했습니다. 멈추려고만 했다면 언제든지 멈출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헤어진 적도 있었지만, 그 사람이 제 손을 잡았습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저는 그 사람 손에 끌려갔습니다. 아무런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결혼은 무슨 프로젝트처럼 진행되었습니다. 주변 사람 시선과 속상해할 어머니 걱정에 머뭇거리며 망설이다 결국 결혼식을 올리고 말았습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도시로 날아갔습니다. 한 달 넘도록 많은 시간을 가슴팍이 결릴 때까지 울었습니다.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깔끔하게 끝내자, 그런 충동에 사로잡힐 때, 내게 서늘한 용기와 남은 사람 따위 걱정하지 않는 냉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섬뜩해지곤 했습니다. 극단에 기댈 만큼 애통은 매 순간 임계점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단호하게 다짐받았던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소름 끼치도록 그가 혐오스러웠습니다. 어제는 결국 그 사람 입에서 자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면 헤어지자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 사람 입에서 그 말이 나오면 홀가분할 줄 알았는데, 그럼 그러자, 하며 짐 쌀 줄 알았는데, 도리어 심장이 내려앉았습니다. 헤어질 생각은 다시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그를 많이 의지하고 있었음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의지하고 있었던 저 자신이 당황스럽고 꼴 보기 싫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도 걸려 있기에 죽을 만큼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저렇게 덤덤하게 결별을 말할 사람이면 왜 그때 날 붙들었을까 야속도 했지만 결국 그 마음이 제게서 떠났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저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으리라 믿었던 그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타인보다 낯설게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손끝부터 시퍼렇게 얼어붙는 듯했습니다. 슬픔도 아니고, 분노도 아닌 뭐라 표현할 길 없는 감정이 아무것도 손에 잡을 수 없도록 저를 내몰았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자 하는 생각보다, 그런가, 헤어져야 하는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두려움과 망설임 때문에 잠도 오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로 벼랑 끝에 서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결별을 입에 담은 그도, 구구절절 스스로 변명하는 저도 용서되지 않습니다. 이렇게만 이어지는 상황을 견딜 자신이 없다면, 더 늦기 전에 이혼하는 게 옳다는 판단을 신뢰하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선생님, 어찌해야 할까요?”  

   

5년이나 지난 데다 익명으로 올린 글이었지만 0은 한눈에 나라는 사실을 알아보고 답신을 달았다. 내가 재 답신을 보내지 않아 다시 인연은 끊겼다. 또 5년이 흐른 어느 날 뜻밖에 0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나는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무슨 일로 전화했느냐 물었다. 그는 당혹스러운 듯 머뭇거리는 어조로 잘 지내느냐, 물었다. 나는 가장 짧은 말 한마디를 툭 던졌다. “예.”    


지금 0 손에 바리공주 생명수가 들려 있다고 해도, 직접 찾아와 내 부서진 심장을 되돌릴 수 없다는 현실이 냉엄하다. 극진함도 능력도 구체적 인연으로 엮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간절한 호소에 폐부를 찔려 온 영혼이 흔들려도 가 닿지 못할 때, 숙의 의학 하는 그가 나로 말미암아 아리디아린 형벌감을 느끼는 일은 숙명이지 싶다. 내가 그에게 아무리 미안해해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득하고 아뜩하다. 내 야멸찬 응대를 그는 어떻게 품었을까? 덕분에 그가 홀가분해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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