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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May 04.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25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48 


         

범속 

     

불우하다는 말은 ‘불우이웃’이라는 용례에서 보듯 단지 가난하다는 납작한 뜻이 아니다. 본디 재주나 포부가 출중함에도 기회를 얻지 못하여 삶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사람이 많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열린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사회가 건강하다. 사회가 구성원을 각자도생 약육강식으로 내몬다면 이는 스스로 공동체이기를 포기한다는 뜻이다. 특권층 부역 집단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현실을 전복하지 않는 한, 지금 우리 사회는 결코 공동체라고 할 수 없다. 뻔뻔하고 잔혹하게 불우한 사람을 양산해 내는 중이다. 여기 불우에 절은 사람 10-7이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방치되어 학교 교육조차 평범하게 받지 못했다. 일찍 직업을 구해 가족을 먹여 살렸다. 늦깎이로 대학에 들어갔다.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미국에 유학해서 아이비리그 명문대 학위를 받았다. 돌아왔지만 나는 대학에서 자리를 잡을 수 없었다. 사교육 시장을 통해 삶을 지탱해야 했다. 타고난 능력과 비상한 노력으로 단기간에 경제적 안정은 찾았다. 중요하긴 해도 경제적 안정이 자기 가치를 떠받치지는 못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자신이 불우하다는 생각에 점점 더 강하게 침윤되기 시작했다. 과도하게 술에 의존했다. 인사불성 상태에서 사회를 비난하고 가족을 비판했다. 이튿날 나는 전날 밤에 일어난 모든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해결되는 바가 있을 리 없다. 나 자신과 가족이 피폐해질 따름이었다. 가족 권유로, 고통과 삶을 숙의하기 위해 나는 숙의 치유자 0을 찾았다.   


        

10-7은 매우 감성적이면서도 치밀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누구며 어떤 생각을 지닌 사람인지 알려주려고 긴 글을 써왔다. 그 글은 기본적으로 탄탄한 사고력에 터하고 분석과 논리력이 동반되어 있었다. 현실 비판적 태도에서 생긴 격정이 수시로 분위기를 뒤흔들지만, 자기 의사를 전달하는 데 크게 무리는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자아상과 세계관을 지니고 있어 일방 훈계 어법을 구사한다는 데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문제 때문에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사람은 가족일 터이다. 실제로 그가 가족 문제를 말한 글에 가족 단점과 자기주장은 세밀히 적었지만, 가족 장점과 자기반성은 전혀 적지 않았다. 나는 그가 지닌 비범함을 십분 인정한 터 위에, 자기성찰 죽비로 어깨를 툭 쳤다.   

  

“비범함은 스스로를 닦아세우는 초달입니다. 타인을 닦아세우면 범속입니다.”  


        

사실 내 배우자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내 고뇌와 감수성을 독해할 수 없다. 하물며 딸이야 오죽하겠나. 나는 그 빤한 간극을 용납하지 못했다. 이 용렬(庸劣)은 내 평범함이다. 내가 모른 진실은 바로 내 안에 도사린 평범함이었다. 자기 평범함을 모르는 비범함은 범속 그 자체다. 붓다 수단설법, 그리스도 비유 말씀이 아니어도 범속은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 0은 내게 그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상처 때문에 일시 흐려졌지만, 10-7이 맑은 영혼임을 알기에 나는 그 뒤 그가 빚어갈 인생 서사를 신뢰한다. 세월이 흘러 이제 그 또한 노년에 접어들었다. 그와 다시 만나 ‘필름 끊기도록’ 한번 마시고 싶다. 혹시 그 끊어진 필름 속에 내 이름이 들어 있으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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