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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May 03.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24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47



모호함을 모호하게 명쾌히   

  

인간에게 결혼이란 무엇일까? 결혼과 사랑에는 함수관계가 존재할까? 일부일처제라는 보편 조건이 언제 어떻게 왜 만들어졌을까? 세상 무슨 고전도 어떤 스승도 정답을 주지 못하기에 참 어려운 문제다.   

   

이렇듯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 아주 특별한 한 사람이 찾아왔다. 10-5는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한 사람을 사랑해서 결혼했고, 나름 행복하게 살다가 어느 날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 다른 사람 또한 이미 결혼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 모두 각자 가정에 불만이 없다. 아이도 있다. 배우자에게 염증을 느끼지도 않았다. 우연인 듯 필연으로 만나 처음엔 선선한 친구였다가 이내 열렬한 연인이 되어버렸다. 알면 알수록 좋아진다. 어찌하면 좋을까?    

 

사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숙의 치유를 내건 의자한테 오기도 쉽지 않았으리라. ‘바람피우게’ 만드는 어떤 정신적 문제가 있는지 의문이 들어서 찾아왔다고도 딱히 말할 수 없다. 나는 그 첫인상에서 풍기는 담담한 당당함에 좋은 예후를 느꼈다. 말하자면 어떤 선택을 하든 홀랑 말아먹지는 않을, 자기에 대한 종자 신뢰 같은 무엇을 지닌 사람으로 보였다는 뜻이다. 그가 주눅 들지도 않고 야비하지도 않으니 내가 할 말은 오히려 세계 진실이 지닌 모호성, 그러니까 비대칭 대칭을 은근하게 돋을새김하는 기본만으로도 족했다.  

    

10-5의 명민한 얼굴이 지금도 눈에 어린다. 그가 턱 받치고 톡톡 던진 질문도 귀에 생생하다. 그때 그보다 오늘 그가 덜 행복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뿐이다.  



        

천치 미학  

   

뭘 해도 능력보다 일 잘되는 사람이 있고 잘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 판단 기준이 모호함에도 우리 경험이 먼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게 사실이다. 중요한 인생사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깊은 우울장애에 빠져 허덕이는 사람 10-6이 반쯤 넋 나간 얼굴을 하고 들어섰다.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그가 매우 똑똑하고 육감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람과 삶이 이렇게 서로 어긋나기도 하는구나, 젊은 날 내 자신에게 품었던 상념을 문득 떠올렸다.  

 

        

나는 10살이 채 못 되어 아버지를 잃었다. 유난히 아버지를 따랐던 내게는 형언하기 어려운 충격이었다. 이후 내 삶은 내 똑똑함과 무관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뛰어난 내 육감은 늘 좋지 않은 일에만 적중했다. 내 이런 삶에 어머니는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다. 형제자매 또한 어려운 일이 터지면 감내하며 살라고 강권하는 선에서나 개입했다. 나를 가장 잔혹한 질곡으로 몰아넣은 일은 사기 결혼이었다. 배우자 가족은 의도적으로 나를 속이고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중증 정신장애 상태에 있는 사람과 결혼시켰다. 여기서 파생된 수많은 불행과 마주하느라 내 인생 황금기가 다 지나갔다. 어느 정도 수습은 했지만 나 자신과 삶 자체를 향한 우울감은 갈수록 짙어졌다. 치료하지 않으면 내가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는 소원 하나마저 물거품이 되겠다, 싶어 숙의 치유자 0을 찾았다. 나는 간절한 눈빛으로 그에게 말했다.     


"제 소원은 세상 어둠을 빛으로 바꾸는 일에 참여하기입니다.“   


       

어둠 보는 눈이 너무 밝아서 아프디아픈 삶을 살아온 10-6의 소원은 과연 이루어질까? 다음 숙의를 예약하고 여느 때처럼 나간 어느 날부터 그가 홀연히 소식을 끊었다. 만일 지금 세상 어둠 하나가 빛 하나로 바뀌고 있다면 거기 그가 있지 않을까, 가끔 그를 떠올린다. 그를 떠올리면 루시아 벌린이 얼핏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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