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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May 08.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28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50   


       

메시아   

  

해월 최시형 가르침에 ‘향아설위(向我設位)’가 있다. 내 밖(向壁)이 아니라 내 안을 향해 하느님의 길을 닦으라, 정도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겠다. 나사렛 예수가 안식일 주인임을 선포한 일이나, 단하 선사가 불상을 땔감으로 쓴 일처럼 수승한 가르침이다. 하느님은 내가 숭배해야 할 우월적·배타적 타자로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게로 스며들어 내가 되고야 만 소미한 바람이며 소리이며 냄새다. 이 진리를 놓친 거대종교는 모두 포르노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다시 온 메시아라고 굳게 믿는 11-4가 나를 찾아왔다. 자신이 다시 온 메시아임을 확인해 줄 증인으로 삼겠다고 했다. 나보다 먼저 찾아간 사람은 정신과 백색 의사였는데 정신병자로 취급하며 약을 먹으라, 하기에 내게로 왔다고 했다.   


        

한의사 0은 정신과 백색 의사와 달리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내가 스스로 다시 온 메시아라 주장할 수밖에 없는 심리 실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여러 차례에 걸쳐 묵직한 자세로 경청한 뒤 보송한 음성으로 그가 내게 물었다. 

    

“11-4씨가 메시아라는 주장을 저라면 증언해 주리라 믿으십니까?”  

   

나는 간절하고 단호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예, 그러실 거라 믿습니다.”    

 

그는 부드러움을 걷어내고 말했다.   

  

“다시 올 메시아는 누가 증언하고 말고 할 존재가 아닙니다. 메시아 자신이 삶으로 드러내면, 귀 밝은 영혼들은 침묵 가운데 우렛소리를 듣습니다. 11-4씨가 정녕 메시아라면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떠나 메시아다운 삶을 사십시오.” 

      

순간적으로 나는 각성과 의문이 교차하는 묘한 상태에 놓였다. 그가 기민하게 내가 할 구차한 질문 하나를 덜어주었다.  

    

“노동하십시오.”    

 

내 표정에서 의문이 지워지는 것을 확인한 뒤, 그는 거래인 음성으로 야젓함을 갖추어 말했다.  

    

“열심히 일해 자신부터 먹여 살리는 시점에서 메시아 길이 비롯합니다. 제 노동 대가 또한 정당하게 지급하셔야 함은 물론입니다.”  


        

11-4는 돌아가 노동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잊지 않고 조금씩이나마 나누어 내 노동 대가를 지급한다.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럴 필요도 없다. 노동하는 삶에서 이탈하지 않는 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건 문제 삼을 이유란 없다. 자신을 다시 온 메시아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정신질환자로 몬다면 자신을 살아 있는 부처라고 생각하는 허구한 중들은 다 뭐란 말인가. 그를 이단으로 몬다면 자칭 정통개신교단이야말로 예수의 향아설위를 모독하는 ‘삼’단 아닌가. 그가 자기 메시아로 살아가는 시간을 나는 존중한다. 11-4가 엊그제 내게 5만 원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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