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용원 May 13.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32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54 


         

나가며- 00(for good) 이야기  

   

나는 ‘잘나가는’ 한의사다. 숙의 치유자 0의 대학 후배다. 어느 날 뜬금없이 내가 그에게 물었다. 

    

“선배님, 재미있으세요?”  

   

그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재미있어.”  

   

나 또한 주저 없이 그의 대답에 응했다.    

 

“저는 재미없습니다.”  

  

나는 이어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재미있으신데요?”    

 

그는 이어 주저 없이 대답했다.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으로 들어왔다가, 사는가 싶게 사는 사람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잖아.”     


내가 재미없는 까닭은 내 의료에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0이 재미있는 까닭은 그의 의료에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 병을 숙의로 치유하고, 더 나아가 실생활 난제도 숙의로 풀어냄으로써 아픈 사람과 함께 삶 이야기를 써가기 때문에 재미있다. 그들 이야기는 물론 근원적으로 아프고 슬프다. 그 어둠을 통과해 빛으로 가는 과정이 보람 있으니 ‘재미있다’라고 표현했으리라.  

     

그들이 함께 빚어낸 이야기는 그러나 그러므로 베스트셀러가 아니었다. 그럴 수도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었다. 이제도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 베스트셀러 등 뒤에서 벌어지는 통속한 음모가 그들 이야기에 들어설 여지란 근원적으로 없다. 이야기 나눈 익명인 각자만이 간직하는 워스트셀러이므로 내밀한 생명 네트워킹을 통해 함께 익명성을 꿰뚫고 나아갈 뿐이다.  

   

0 숙의 이야기가 그러하듯 그 인생 이야기도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다. 인생 이야기가 베스트셀러로 되려면 승리나 기획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 인생은 패배와 방치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고통에 찬 신음과 웅얼거림이 뒤엉킨 치유 서사가 조증 숭배하는 이 사회에서 왁자하게 소비될 리 없다. 아픈 사람, 버려진 사람만이 소리소문없이 정독하고 재독할 뿐이다.    


아픈 사람, 버려진 사람이 0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는 일은 그가 아픈 사람, 버려진 사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또는 포개지고 또는 쪼개지며 이야기들은 엮이고 기억된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즉시 사라지는 운명, 그 베스트셀러 천형은 그들이 짊어질 바 아니다. 그들을 아프게 하고 내버리는 삿된 힘들이 존재하는 한, 그들 이야기는 모질게 번져 가리라. 이 번짐을 0은 ‘욼음으로 이루어 가는 숙의 팡이실이’라 부르더라. 사실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어서 ‘잘나가는’ 나로서는 적잖이 쪽팔린다. 아마도 0은 00          

작가의 이전글 나나보조 이야기 23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