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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Aug 05. 2024

염장

    

진료 끝나고 늘 가는 백반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얼마 뒤 내 연배로 보이는 여자 사람 하나가 죽상을 하고 들어선다.  

    

“아이고, 힘들어~ 죽고 싶다, 즈응말!”   

  

나더러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지만, 나밖에 다른 손님이 없으니 내 눈과 귀는 자연스레 그리 쏠린다. 처음 보는 사람이다. 나는 이내 밥 먹는 일로 돌아간다. 

     

한 바퀴 쓰윽~ 둘러보더니 그는 똑같은 말을 한 번 더 되풀이한다. 마침 장 보러 갔던 여주인이 들어온다. 여주인을 본 그는 반색하며 큰 소리로 똑같은 말을 한 번 더 외치듯 말한다. 여주인이 짐짓 관심을 표한다. 

    

“언니, 왜? 무슨 일인데 그래?”   

  

뜻밖에 자랑스러운 목소리가 한층 더 카랑카랑하게 튀어나온다.  

    

“내가 건물이 네 개잖아. 아, 근데 세입자 미친놈 하나가 소송을 걸었어!”  

   

나는 찰나적으로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여주인이 묻는다. 

    

“왜?”   

  

그가 더 우렁차게 답한다.     


“보증금 반환이 좀 늦어지니까, 빨리 달라고 지랄이지!”   

  

나는 찰나적으로 음식 씹던 동작을 멈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시 찰나적으로 입을 연다.     



 “미친년!” 


물론 그는 듣지 못한다. 바로 앞에 앉아 있어야 들릴 크기로 내뱉었기 때문이다. 딱히 더 크게 내뱉어서 사달을 만들 일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가 백반 시켜, 반찬 많고 맛있다면서 우걱우걱 먹고 나간 뒤 나는 여주인에게 누구냐고 묻는다. 여주인이 심상하게 대답한다.

      

“몰라요~ 처음 보는 여잔데?”   

  

아, 웬 똥 부자 염장질이 내 부아를 염장해 버렸구나, 하는데 누가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자격지심이거든, 이 좁쌀영감탱이야! 휙 돌아보니 각 잡은 내가 씩 웃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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