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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장

by 강용원


진료 끝나고 늘 가는 백반집에서 저녁을 먹는다. 얼마 뒤 내 연배로 보이는 여자 사람 하나가 죽상을 하고 들어선다.


“아이고, 힘들어~ 죽고 싶다, 즈응말!”


나더러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지만, 나밖에 다른 손님이 없으니 내 눈과 귀는 자연스레 그리 쏠린다. 처음 보는 사람이다. 나는 이내 밥 먹는 일로 돌아간다.


한 바퀴 쓰윽~ 둘러보더니 그는 똑같은 말을 한 번 더 되풀이한다. 마침 장 보러 갔던 여주인이 들어온다. 여주인을 본 그는 반색하며 큰 소리로 똑같은 말을 한 번 더 외치듯 말한다. 여주인이 짐짓 관심을 표한다.


“언니, 왜? 무슨 일인데 그래?”


뜻밖에 자랑스러운 목소리가 한층 더 카랑카랑하게 튀어나온다.


“내가 건물이 네 개잖아. 아, 근데 세입자 미친놈 하나가 소송을 걸었어!”


나는 찰나적으로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여주인이 묻는다.


“왜?”


그가 더 우렁차게 답한다.


“보증금 반환이 좀 늦어지니까, 빨리 달라고 지랄이지!”


나는 찰나적으로 음식 씹던 동작을 멈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다시 찰나적으로 입을 연다.


염장.jpg


“미친년!”


물론 그는 듣지 못한다. 바로 앞에 앉아 있어야 들릴 크기로 내뱉었기 때문이다. 딱히 더 크게 내뱉어서 사달을 만들 일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가 백반 시켜, 반찬 많고 맛있다면서 우걱우걱 먹고 나간 뒤 나는 여주인에게 누구냐고 묻는다. 여주인이 심상하게 대답한다.


“몰라요~ 처음 보는 여잔데?”


아, 웬 똥 부자 염장질이 내 부아를 염장해 버렸구나, 하는데 누가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자격지심이거든, 이 좁쌀영감탱이야! 휙 돌아보니 각 잡은 내가 씩 웃고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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