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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Aug 06.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96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64  


        

난지도 물 한바퀴    

 

서울 마포구 상암동 난지도는 쓰레기매립장으로 사형선고를 받기 전까지 유명한 신혼여행지였을 만큼 아름다운 섬이었다. 젊은이들한테는 무슨 전설, 그것도 개그 판본처럼 들리겠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난은 난초고 지는 영지다. 오늘날 모습과 사뭇 다르게 배를 타지 않으면 오갈 수 없을 만큼 뭍(!)과 멀리 떨어져 있었고, 대개는 뭍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농사를 지었다. 생활 수준은 비교적 높은 편이었다.   

  

1978년 쓰레기매립장으로 지정된 뒤 15년 동안 200만 톤에 달하는 생활 쓰레기, 산업폐기물, 건설 폐자재를 쌓아 올려 90m가 넘는 산을 이루었다. 1992년 매립이 금지되었다. 무너진 삼풍백화점 잔해는 예외로 거기 묻혔다. 먼 훗날 무슨 일로 여기를 발굴(?)한다면 거대 지층을 이룬 라면 봉지와 부서진 백화점 한 동 유적을 보고 대체 뭐라 할까? 모순이 들끓는 식민지 풍경이 그때는 사라지고 없을까?    

 

쓰레기 매립장 난지도에도 사람이 살았다. 전성기에 700여 명, 최후에는 400명 정도였다. 그들은 쓰레기 더미에서 쓸 만한 물건을 캐내 삶을 이어갔다. 공식으로 출입 금지였으니 공권력도 미치지 못했다. 그들은 극빈층으로 분류돼 이를테면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았다. 그들과 후손은 어찌 됐을까? 오늘 푸른 난지도가 깔고 앉은 검은 역사를 대체 어찌해야 할까? (이상 내용 많은 부분은 나무위키를 참조.)    

 


지금은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어 수많은 사람이 찾아오지만, 나는 그 공원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난지도 경계를 따라 한바퀴 돌면서 물에 가까이 닿는 일이 목표다. 한강 지천인 홍제천, 홍제천 지천인 불광천, 한강, 한강 또 다른 지천인 향동천, 향동천 지천인 난지천-아마도 옛 이름은 샛강이었을-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점검한다. 마포구청역 7번 출구로 나가자마자 홍제천과 만나면서 오늘 걷기 출발이다. 


홍제천은 삼각산과 백악산에서 나와 여기까지 오는데 제법 물이 깨끗하다. 가장 하류인 지점에서 사람들이 발을 담그고 있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자, 지천인 불광천과 만나는 꼬꼬마 두물머리가 나타난다. 불광천은 오염이 심하다. 최하류 지점에서는 흐름마저 거의 없다. 그 불광천을 만나면서부터 홍제천도 신음을 토한다. 주춤주춤 역류를 기다리는 듯한 모습으로 내려간다. 나는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선다.  


불광천과 홍제천이 만나는 개치

   

홍제천이 한강과 만나는 두물머리부터 나는 다다 물 가장 가까이 놓인 길을 골라 걷는다. 그러나 한동안 좀처럼 물에 가닿지 못한다. 처음 닿은 곳은 의외로 물가에 깔아 놓은 덕 뜯어진 부위다. 그 아래 찰랑거리는 물을 반가이 모신다. 별일이라며 웃는다. 그다음부터는 수시로 자연스레 물에 닿을 수 있도록 곁 내주는 길이다. 35도짜리 땡볕 피하려 나무 그늘 좇으며 서둘러 걷다 보니 가양대교 아래 서 있다. 


홍제천과 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희한한 물모심


드디어 향동천 두물머리가 보인다. 하지만 접근 불가다. 수량도 아주 적을 뿐 아니라 방치 상태로 거기까지 시난고난 흘러왔음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향동천은 나지막한 봉산이나 망월산 어디선가 시작됐을 테니 본디부터 작은 시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강으로 흘러드는 열 개 지천 가운데 하나-가장 서쪽에 있는-임은 틀림없다. 따로 떼어 걷기는 그렇고 오늘 난지도 경계를 따라 최대한 다가가기로 한다. 


향동천과 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강변북로 밑에 뚫어 놓은 생태로를 통해 푸른 쓰레기 산으로 올라간다. 가장 먼저 나타나 가장 끄트머리까지 이어진 길을 따른다. 가양대로 가까이서 찾았지만, 향동천은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다. 여러 번 숲 틈을 기웃대 겨우 작은 물길을 발견했지만 여기도 접근 불가다. 결국 통행 금지된 곳까지 내려간다. 향동천과 난지천 꼬꼬마 두물머리를 찾아낸다. 여기마저 접근 불가다. 난지천에 닿고서야 물 위에 선다. 


난지천과 향동천이 만나는 개치

    

난지천(샛강)


폭서는 가차 없이 땡볕과 땀과 갈증과 허기, 그리고 단내나는 거친 숨으로 나를 몰아댄다. 가져간 물도 동이 났다. 빨리 식당을 찾아 목을 축이고 속을 채워야 한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마지막 발걸음은 더듬대고 구불거린다. 지도만으로는 찾기 어려운 복잡함을 견디며 찾아낸 최단 경로는 월드컵경기장역 직전에서 불광천 따라 내려가 처음 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그래. 잘됐다. 불광천은 이렇게 마무리다.    

  

마포구청역 일대 음식점이 죄다 문을 닫았다. 한참을 걸어 내려가 건널목을 건넌 다음 다시 올라와 찾은 유일한 음식점에서 나는 막걸리부터 시킨다. 없단다. 이런! 얼른 맥주로 바꾼다. 한 병을 순식간에 다 마시는 순간 나는 깨닫는다: 500ml까지는 맥주가 다만 시원한 물일 뿐이구나. 다음은 대구맑은탕 차례다. 찬 맥주 바로 뒤에 닿은 뜨거운 국물도 몸은 시원한 물로 감지한다는 사실 하나를 더 깨닫는다. 喝!  

    

물과 술이, 찬물과 뜨거운 물이 하나로 경험된 염천 속 물 걷기는 여태까지 물 걷기 기운데 가장 힘들었다. 갈증은 밤까지 이어졌다. 집에 와 확인하니 오늘 걸은 거리는 20km였다. 힘들 만했구나. 경강(京江) 걷기는 이로써 7구간 가운데 하나만 남았다. 마무리되면 지천 걷기로, 지천 걷기가 끝나면 철길 따라 경기도, 강원도로 번져간다. 그다음은 모른다. 물이 이끄는 대로 간다. 의전이자 놀이인 생명 참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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