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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Aug 07. 2024

가방 사회사

     

1970년대 시내버스에서 가방은 인정을 나누는 방편이었다. 운 좋게 자리에 앉은 사람은 으레 앞에 선 사람의 가방을 받아주었다. 특히 커다랗고 뚱뚱한 고등학생 가방은 꼭(!) 받아주는 ‘국민 보따리’였다. 가난함과 고단함을 함께 하는 온욱한 풍경의 총아였다.  

   

어느 때부턴가 시나브로 사람들은 더 이상 가방을 받아주지 않았다. 시내버스에 짐 싣는 시렁이 생기면서부터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만 생각할 것은 아니다. 시렁이 차서 가방을 손에 들고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 가방도 받아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각자도생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이제는 가방을 받아주겠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한 시선이 돌아올 수 있는 지경이 됐다. 남 자체에 관심이 없는데 남 가방에 무슨 관심이 있겠나. 삶이 각박해진 거다.    

  

최근 몇 년 동안 가방은 한 걸음 더 나아간 사회현상 매개물이 되었다. 이를테면 가방 폭력이다. 가방으로 다른 사람을 밀고 심지어 치고 지나가도 가방 주인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싶은 부류 사람만 무례하게 그런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거의 누구나 그런다는 느낌이다. 주로 백 팩이 문제가 되기는 하나 모든 가방이 다 그렇다. 삶이 강퍅해진 거다.   

   

엊저녁 밥 먹으면서 딸아이가 중년 사내 백 팩이 얼굴 가격한 이야기를 했다. 단지 그 사내 한 사람 문제가 아니라며 혀를 찼다. 오늘 아침 지하철 안에서 나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 6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데, 그래 놓고도 표정이 전혀 없다. 무표정을 보는 순간, 그가 커다란 가방으로 보였다. 대화 불가능이란 판단이 서서 그냥 웃고 말았다. 이런 사회에서 가방 아닌 노년으로 살아가는 사건은 도대체 무엇인가. 내가 도리어 소심한 늙은이는 아닌지 뒤돌아본다.      


주먹과 돈, 그리고 말에 힘 쌓는 짓이라면 무슨 범죄든 저지르는 막장 인간들이 ‘초’ 상류층으로 준동하는 요즘, 가방은 일약 국가급 폭력으로 날아올랐다. 가방 하나로 온 나라를 들쑤셔 벌집 만듦으로써 근엄 무인지경을 구가하는 고수 하나 있어 실로 기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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