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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Aug 08. 2024

바느질 오지랖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길거리에 떨어진 휴지를 보고 그냥 지나가면 아이고, 주워 휴지통에 버리고 가면 어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온통 아이 천지인 셈이다. ‘세금으로 월급 주는 환경미화원이 있는데 왜 내가?’라고 묻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반론이 분명히 있을 테지만 이는 논점을 벗어난 윤똑똑이임이 틀림없다.  

    

지지난 일요일인가 외출에서 돌아와 옷을 갈아입던 옆지기가 하하 웃는다. 밥집에서 둘렀던 앞치마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무심코 그 위에 겉옷을 입는 바람에 알아차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번 주말에는 앞치마 돌려주려 그 집 가야겠다며 다시 웃는다. 그러자 하고 앞치마를 챙겨 개키는데 크게 뜯어진 솔이 눈에 들어온다.   

   

생각을 되작인다. 일부러 뜯어서 되돌려준다고 생각이야 하겠나만 이대로 돌려주기에는 민망한 꼴이다. 그렇다고 꿰매서까지 돌려주는 일은 지나친 오지랖 아닐까. 이대로 돌려줄 때 음식점에서 바느질해 쓸 가능성은 없다. 이렇게 뜯어진 줄 뻔히 알면서 다시 손님에게 내밀도록 눈감는 일도 그렇다. 결국은 쓰레기통으로···.


생각을 되잡는다. 구멍 난 양말, 해진 한복 바지저고리를 꿰맬 때 사물과 생명을 향하는 내 공경심에 경계가 있는가? 있다면 어디까진가? 이른바 “내 것”에서 멈추는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내 버려두지 않고 내 시간을 조금 덜어내 바느질하는 일이 마냥 오지랖만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이내 5분가웃 꿰매어 간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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