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생

-숙의의학 소설-

by 강용원


20대 후반인데 30대 후반 얼굴을 하고 ㄷㄷ가 찾아왔다. 본디 우울증이 있는데다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갑자기 파혼을 선언하고 잠적해버려 창졸간에 마음과 삶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렸다.


나는 20대 초반, 1년 사이에 부모를 모두 잃었다. 나이도 어렸을 뿐더러 외동인 내가, 친척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홀로 장례를 포함한 모든 일을 처리할 수는 없었다. 이때 홀연히 초등학교 동창인 한 친구가 나타났다. 그는 망연자실해 있는 나를 다독이며 헌신적으로 수습을 도와주었다. 그는 중단했던 내 학업도 다시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논문을 쓰는 과정까지 희생에 가까운 뒷바라지를 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다. 그 부모님도 두 사람 사이를 인정해주셔서 결혼을 약속하고 집까지 마련했다. 내 삶이 이렇게 거의 완벽할 정도로 안정을 찾자, 비로소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홀로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면 결혼식을 올리자 하고,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났다. 이 가벼운 발걸음이 나중에 너무나 무거운 변화를 몰고 돌아올 줄 그때는 몰랐다. 여행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돌아오자마자 나와 그 부모님 앞에서 그는 돌연 파혼을 선언했다. 더 이상 이런 삶을 살지 않겠으며, 유학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그는 사라졌다. 지금까지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 도대체 뭘 어찌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나는 ㅂㅇ를 만났다.



의문 하나로 수렴된 선하고 슬픈 ㄷㄷ 눈망울이 8년 지난 지금도 선연히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그를 보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름지기 그는 자기 파괴적 희생으로 사는 동안 서서히 영혼이, 그 내면 힘이 소진되어갔습니다. 자기 요구와 거절을 봉인하고 오로지 그대만을 위해 몰두함으로써 그 실존은 공동(空洞)이 되고, 존재는 형해(形骸)가 되었습니다. 무(無)에 묻혀버린 자기 자신을 발견한 찰나, 그는 가차 없이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가 자기 삶을 찾도록 놓아주십시오. 그 놓음이 기다림일지 포기일지는 천천히 그대가 결정하십시오.”

참으로 아픈 사연이다. 그를 보살피는 동안 자기 우울증이 한없이 깊은 골짜기로 미끄러져 내려갔다는 사실을, 아마도 그와 떨어져 지내면서 어떤 경로를 통해 깨달았으리라. 물론 결별 방식이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당사자에게 그 결단은 최선이었으리라. 친구 희생 덕분에 마음 건강을 되찾은 그라면, 친구가 최선을 다해 내린 결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리라. 그 뒤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숙의를 마치고 일어서는 그 눈망울만큼은 적어도 비관적이지 않았으니, 두 사람 다 잘 견뎌냈으리라 믿고 있다.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나는 ㄷㄷ와 함께 ㄷㄷ 삶을 신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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