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의학 소설-
나는 다섯 살 무렵, 아버지가 집에서 키우던 개를 죽인 뒤, 그 내장 주무르는 광경을 우연히 목격하고 크게 충격받았다. 그 때문에 결벽증이 자리 잡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동네 노인에게 성추행당한 뒤, 그 증상은 더욱 강해졌다. 급기야 중학생 시절, 야동을 통해 들이닥친 강도 높은 음란함을 더러움으로 인식한 이후, 극심한 병적 상태로 빠져들고 말았다.
하루 7~8시간씩 피가 나도록 손을 씻어댔다. 자위행위를 하고 나면, 손과 성기가 더럽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하루 종일 씻고 확인하느라,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나중에는 소변을 보고도 그랬다. 성폭행의 가해자와 피해자 의식이 번갈아 찾아들면서 성기를 확인하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확인하는 과정에서 증인 역이었던 가족, 심지어 어머니에게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이런 상태를 대처하는 데 미숙했던, 그럴 수밖에 없었던 부모는 강제로 나를 정신병원 또는 유사한 수용시설로 4차례나 보냈다. 심지어 개신교 기도원 같은 곳에 가두어 놓고 결벽을 도리어 부추기기도 했다. 결국 복잡하고 거대한 강박증후군에 시달려 심신이 극도로 피폐해졌다. 5가지 화학합성약물을 처방받아 복용했다. 효과는 미미한데 부작용이 뚜렷하고 다양해, 약을 먹는지 독을 먹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약이라도 먹는다는 심리적 위안 때문에 끊지도 못한 채, 부작용으로 100kg이 넘어버린 몸을 견뎌내고 있었다. 학교는 진즉 그만두었고 아예 외부 생활 자체가 불가능했다. 천신만고 끝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가 찾아간 사람이 바로 숙의치료자 ㅂㅇ.
ㅂㅇ가 나를 대하는 태도는 곡진했다. 나는 그 치료 방식과 효과에 놀랐다. 신뢰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또한 온 힘을 다해 치료에 임했다. 한두 달 만에 상황은 몰라보게 호전되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외부 생활을 조금씩 재개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안정에 도달하자, 더 이상 진전되지 않는 게 문제였다. 어느 하나가 좋아지면 다른 하나가 불쑥 나타나는 방식으로 헛돌면서 교착상태에 빠져들었다. 나도 그도 서로 안타까워하며 힘을 내었으나, 좀처럼 타개되지 않았다. 나는 시나브로 지쳐갔다. 어느 순간 나는 더 이상 그에게조차 갈 수 없는 상태로 굴러떨어졌다. 나는 어렵사리 그에게 소식을 전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석 달째 못 가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모든 것이 멈춰버렸습니다.
도통 밖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가난했던 나의 부모는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수백만 원이 밀려 있기까지 했다. 나는 이래저래 그에게 미안했지만 달리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도리어 내게 미안하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치료연대는 그렇게 는적는적 뭉그러져 갔다. 얼마쯤 지나 짤막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의 진료소가 없어졌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