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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Aug 23. 2024

아기는 왜 길을 잃는가?

 

아기가 집을 나가면 다시 찾아오지 못하는 까닭은 길을 알지 못해서가 아니다. “돌아볼” 줄 몰라서다. 아기 시선은 한 방향으로 고정돼 있다. 왜 그럴까? 어떤 고전에도 이에 대한 답은 없다. 내가 고전을 참고는 하되 존숭은 하지 않는 까닭이다.  

    

아기 때부터 진실이 지닌 모순성, 그러니까 역설을 본다면 인간은 어떻게 될까? “절대” 조현병에 걸린다. 살아갈 수가 없다. 왜 그럴까? 어떤 고전에도 이에 대한 답은 없다. 내가 고전을 참고는 하되 존숭은 하지 않는 까닭이다. 아, 죄송, 지송.      


엄마 배에서 나오자마자 걷는 아기 코끼리를 본 적이 있는가. 아기 코끼리는 아기면서 어른이어야 살 수 있다. 모순이 공존하는 역설 현실을 태어나면서부터 살아간다. 인간은 그렇지 못하다. 20년가량 아기 상태로 역설 현실에서 보호받아야 산다.    

  

본성처럼 보이는 이 차이는 물론 역사 사건이다. 직립 보행이 빚은 저주다. 직립 보행하는 인간 눈은 정면 중심으로 몰려 있다. 이 중심 시각이 집중을 낳고, 집중은 형식논리를 낳고, 형식논리는 투사/전가를 낳고, 투사/전가는 제국주의를 낳았다.     

 

제국주의는 모든 인간을 “돌아볼” 줄 모르는 아기 상태로 가둬둔다. 그래야 쉽게 통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통치되는 제국 신민은 영영 길을 잃은 채 살아간다. 지상 제국 미국 신민, 그 마름 일본 신민, 그 마름의 마름 한국 신민을 보라. 

    

  

자신이 아기인 줄 모르는 아기 둘이 자신이 아기인 줄 모르는 아기 오천만을 끌고 현해탄으로 들어간다. 무슨 짓인 줄 알아도 몰라도 아기인 그 둘은 이 물귀신 놀이에 도취해 있다. 낄낄대는 언론인도 악악대는 정치인도 당최 어른 될 생각이 없다.   

  

어른은 “돌아볼” 줄 안다: 내가 혹시 잘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왔다면 돌아가지 못할 길이란 없다.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지 않으면 방법은 둘뿐이다: 강제로 되돌려지거나 영원히 돌아가지 못하거나. 필경 이렇게 될 양이면 빠를수록 좋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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