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친이 남긴 유일한 명품으로 롤렉스-선친은 금딱지 홈모노(ほんもの)라는 말을 꼭 덧붙였다- 시계가 있다. 선친은 그 시계가 세계에서 가장 좋은 시계라고 굳게 믿었다. 나도 며칠 전까지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롤렉스와 동급인 시계가 스물이나 더 있으며, 그 위에 또 넘·사·벽 “BIG 5”가 있단다. 평범한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세계가 같은 하늘 아래 엄존한다. 어디 시계뿐일까. 모든 분야 기예, 지식, 구도행(求道行)에도 이런 격차는 있기 마련이다.
격차는 불가피하니 자연(Sein)에 속한다. 그 자체로는 문제 되지 않는다. 격차를 계층으로 만드는 사악한 당위(Sollen)론이 문제다. 파텍필립 시계와 세이코 시계 사이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각각 그 시계를 찬 사람 사이 격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단일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같이 취급되는 까닭은 인간 관지에서 비롯한다. 그 인간 관지는 돈에서 비롯한다. 돈을 많이 가진 인간이 더 고급 인간이라 하는 가소로운 생각은 더 탐욕스러운, 그러니까 더 저급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뒤집은 음모에서 비롯한다.
음모는 사유가 단절된, 정확히 말하자면 사유를 단절한 지점에서 샘솟는 독극물이다. 스스로 일부러 사유를 단절하는 까닭은 사유가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유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 부정은 단정(斷定)을 낳는다. 단정은 독선을 낳는다. 독선이란 자기중심주의 원리를 천명할 때, 확증편향에 의존하는 태도다. 인류 역사상 가장 표독하고 배타적인 독선은 구약성서 창조론이다. 구약성서 창조론에 터 잡은 인간중심주의 원리(anthropocentric principle)가 인류세를 낳는다. 이 과정 어디쯤인가에서 끼어들어 거대한 파국 서사를 꾸민 주체가 바로 제국이다. 제국이 지닌 음모 본성을 우리는 제국주의라 부른다.
제국주의란 말을 심상히 듣든 낯설게 듣든, 직면하지 못한다면 이미 그 음모에 말려든 거다. 음모에 말려든 사람이 백이면 백 중얼대는 단어가 하나 있다: 설마
“설마”에 기대는 사람은 상상 너머 사건과 마주칠 때 처음에는 없다고 완강하게 부정하다가 이내 급격히 돌아서 꿇어 엎드린다. 이렇게, 설마가 사람 잡는다. 설마가 잡은 사람 앞에 펼쳐놓는 지옥은 압도적 계층 구조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이 창안한 “장사꾼 제국주의” 하청(下請) 구조다. 원청인 ‘파텍필립’이 부리는 아홉 계층 아래 ‘세이코’ 하청 인간은 영원히 거기서 헤어나지 못한다. 하청 본성, 바로 이게 실재로서 일본이다. 일본 총리 기시다 후미오가 서울에 온다. 식민지 총독은 무슨 퇴임 선물을 준비해 놓고 기다릴까.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