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작 팔아먹기 위해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이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사기 치는 바람에 이제는 유치원생도 우울증을 입에 올린다. 이를테면 우울증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셈이다. 인플레이션임에도 정작 치료받아야 할 많은 중증 우울증 환자가 ‘못난’ 사람으로 분류돼 안전망 바깥을 배회하고 있다. 그 대신 인플레이션 현상을 틈타 교묘히 들어와서 의자와 자신을 속임으로써 피차 삶, 나아가 공동체 전체 삶을 착취하는 부류가 있다.
이들은 나쁜 삶을 살면서 아픈 삶에 허덕인다고 하소연한다; 악한 삶을 살면서 착해서 당한다고 억울해한다. 이들은 이른바 “단절성” 정신장애로서 이른바 “연속성” 정신장애인 우울증과 정반대임에도 우울증 환자 행세를 한다. 대규모 역학 연구를 기다려야 하지만 일단 내 임상 경험으로 말하자면, 1970년대부터 일어난 비정상적 경제 성장 과정에서 비정상적 경로를 통해 쉽게 성공한 중산층 이상 상류층 성인과 그들 자녀 세대에 급격히 번지고 있는 사회 현상으로 보인다. 매우 중대한 공동체 현안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기애 또는 자기중심성이 강하다. 자기 언행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모르거나, 알아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반대로 다른 사람 언행이 자기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며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잘 모르거나, 알아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성과 감성, 모든 면에서 그런 상호작용이 서툴거나 아예 한쪽으로 심하게 치우쳐 있다. 정서장애에서 인격장애까지, 가벼운 아스퍼거증후군-폐기된 개념이긴 하지만-에서 사이코패스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치료가 힘들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힘들어진다.
이야기가 이 정도 진행되면 감을 잡겠지만 이 간악한 사회정치적 질병은 명백히 최상위 지배층이 먼저 걸려 감염시킨 독이다. 숭일 매국 특권층이면서 애국을 부르짖고, 독재 부역 지배층이면서 민주주의를 전유하는 권력자들이 자기를 매국 좌파 세력에 포위된 피해자라고 우긴다; 그 악한 무리와 성전을 불사하노라고 떠든다. 이 투사 정치 공작을 의학 버전으로 옮긴 투사 우울증이 거리를 활보한다. 그 거리엔 일장기가 나부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