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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Sep 09. 2024

발달 불균형 증후군 소고

   

2010년 호시노 요시히코의 『발달장애를 깨닫지 못하는 어른들』 리뷰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질병은 발달 불균형 증후군이다. 물론 그때 “모든 질병”은 의학 경계를 벗어나지 않았다. 오늘 이 문제를 더 넓은 지평에서 이야기하려 한다.    

 

아이, 특히 영유아는 제 “생각”이 곧 제 삶이라고 믿는다. 이른바 마법 사고다. 그 시기 마법 사고는 실제로 마법을 일으키니 문제 될 일이 없다. 마법 지팡이인 울음 하나로 만사가 해결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엄마 마법이 통하지 않고 생각을 몸으로 옮겨야 삶이 된다는 진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어른으로 가는 길이다. 이 과정에서 사고가 일어나면 발달이 멈추고 거기 고착되면서 정신장애로 똬리 튼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상식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도 남아 있는 마법 사고 원형을 들깨워 신성으로 호려서 영구히 아이로 살아가도록 하는 음모가 있다는 사실을 상식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초상식일 수도 몰상식일 수도 있는 이 음모를 우리는 종교라고 부른다. 특히 거대 유일신을 신봉하는 종교는 예외 없이 인간을 영구히 어른이 되지 못하도록 잡아둠으로써 성립·유지·성장하는 절대 음모 체계다. 그 체계 기축인 믿음, 기도, 구원 모두가 “생각”이고 그 생각과 삶을 동일시하는 사람만이 살아남는 구조다. 거대 유일신을 신봉하지 않는 듯하지만, 통속불교도 여기에 해당한다. 결국 따지고 보면 인류가 만든, 이른바 고등종교 모두가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   

   

단언컨대 인류 멸망 이후에도 이 종교는 사라지지 않는다. 신봉하는 자들이 간(!) 천국과 극락 때문이다. 왜 이런 음모가, 아니 그 전에 마법이 불사 존재가 되었을까? 심오하거나 복잡한 무엇이 숨어 있지 않다. 단순명쾌한 진실에서 발원한다. 인간이 근원에서 무지·무능하기 때문이다. 거기서 오는 불안, 탐욕, 어리석음에 보상은 불가결하다. 그 보상을 마법, 실제로는 마법 아닌 짝퉁 마술로 해결하는 속임수가 종교다. 마술이 중독적 매력을 지니는 이유는 초인과적 마법을 인과적 진실인 것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악의를 가지고 처음부터 꾸미지 않았으므로 음모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본디 음모는 그런 틈을 타고 스며드는 본성을 지닌다. 음모로서 종교는 정말 인간에게 불가피한가?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면 음모를 벗어던질 수 있다. 인간중심주의는 삼라만상을 인간에게 봉사하는 인과 사슬로 파악한다. 이때 인과, 그러니까 과학이란 가면을 쓴 주술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폭력을 포기하면 음모 종교를 벗어나 초인과 팡이실이, 그러니까 어른이 나누는 호혜 평등·평화·평범 신령한 세계가 열린다. 우리는 이 어른 세계를 꿈꾸어마지않는다.

 

음악가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친 음악가 에릭 사티는 “너무 늙은 세상에 나는 너무 젊은이로 왔다.”라고 말했단다. 그 말을 듣고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너무 어린 세상에 우리는 너무 어른으로 왔다. 세상이 여전히 아이니, 우리는 하릴없이 늙어만 간다. 부부 대통령 놀이하는 두 아이가 어른 세상을 속절없이 망가뜨리는 이 “종교”의 아침, 그래도 우리는 두 손 모으고 하루를 연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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