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와 행진이 있을 때 뜨겁던 거리가, 끝난 뒤 냉랭한 거리로 바뀌는 틈새에 선 사람들이 있다. 영상이나 음향을 담당하는 실무자들이 전형에 해당한다. 이들이 최후까지 남아 정리하고 떠나야 거리는 시침을 뚝 뗄 수 있다. 나는 이따금 그런 풍경을 일부러 보러 간다. 이들 아니면 일이 되지 않지만 정작 이름 없이 뒤꼍에 먼저와 나중을 지키는 사람들이 지어내는 풍경은 어쩌면 처연하고 어쩌면 숭고하다. 직업이 그렇다고 넘기면 그만이지만 내 눈에는 자꾸 밟힌다. 변방 사람이라 중심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작은 일을 포착하는 눈이 열린 모양이다.
한참을 서서 보다가 사진에 담고 떠난다. 이럴 때 심경은 참으로 묘하다. 대단하지는 않으나 뭔가 각별한 진실을 경험하고 나서 드는 모종 적요랄까. 천천히 아크로비스타 언덕을 오른다. 고갯마루쯤에 이르렀을 때 대형 태극기를 휘두르는 남자 사람이 불쑥 나타난다. 물론 굥교도다. 오늘따라 호기심이 맹렬하게 발동한다. 다가가 짐짓 묻는다: 왜 여기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습니까? 그가 답한다: 대통령님이 내려다보고 계세요. 다 듣고 계시잖아요! 그 말투에서 진심과 자부가 뚝뚝 떨어진다. 그는 자신이 뒤꼍에 서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뒤꼍에 선 사람이 제 처지를 알고 자기를 과소평가하는 일보다 제 처지를 모르고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일이 훨씬 더 심각하고 위험하다. 후자가 준동하면서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공격·폭력·혐오·파렴치로 얼룩지고 있다. 악의를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매체에 빠져 불요불굴 전사로 미쳐가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득하고 암담하다. 이들을 볼모 잡은 특권층 부역 집단은 갖은 수법으로 나라를 망가뜨려 제국에 바치려 획책한다. 반란 이후 저들 행태를 보면 갈수록 태산이라는 표현이 제격이다. 나도 반란 세력을 갈수록 모질게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