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32: 열천과 열정

by 강용원


148-1.jpg


연일 낮 최고 온도가 35℃를 넘으며 열천(熱天)이 아스팔트를 삶는다. 그 아스팔트 위에서 148차 촛불 대행진이 벌어진다. 집회가 6시부터라니 얼마나 다행인가. 5시 조금 넘어 도착한 교대역 9번 출구 앞 대로엔 벌써 사람들이 펄펄 끓는 아스팔트 위에 앉아 있다. 날이 날인지라 평소보다 적은 인원이긴 하지만 이만으로도 자주 민주 함성은 충분하다.


물론 이는 일단 내 생각이다. 몇 명이 지르는 소리냐가 중요하지 않고 무슨 소리를 지르느냐가 중요하다는 주장은 물색없는 생각으로 폄훼되곤 한다. 하여 집회나 행진에 몇 명이 모였느냐를 가지고 주최 측과 경찰 측이 사뭇 엇갈린 통계를 제시한다. 소수면 무시해도 되고, 일정 수 이상이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통념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148-2.jpg


148-3.jpg


민주주의가 다수결 원리를 따르는 정치 제도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다. 그 원리를 승자 독식과 동의어로 여기는 집단에 권력이 돌아갔을 때 마주할 수 있는 최악 상황을 최근 우리가 겪는 중이다. 이 집단은 이긴 다수는 “말하기만” 하는 존재고, 진 소수는 “듣기만” 하는 존재로 규정한다. 소수가 입을 열면 그땐 잡아들인다.


현실 정치에서 인간이 지닌 공생 팡이실이, 곧 상생 네트워킹을 온전히 실행할 수는 없다. 부단히 거기를 향해 다가갈 따름이다. 진부한 진실이지만 이 진부한 진실이 극한으로 진부해질 때 공동체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극한 진부함에 빠지지 않으려면 경청하는 생명으로서 인간 본성을 화급히 복원해야 한다. 경청은 윤리가 아니라 존망을 가르는 생리다.


오늘 열천을 뚫고 나온 이 열정은 듣지 않으려고 막무가내 나대는 특권층 부역자 주류 집단 귀를 열기 위한 맞불 같은 것이다. 이 작은 쓴소리가 저 큰 개소리를 끈다. 개소리가 꺼지면 잠잠해진다. 잠잠해지면 귀가 열린다. 귀 열어 들으면 현·타가 온다. 독하디독한 현·타가 저들이 최후로 누릴 수 있는 인간성이다. 아니면 악귀고. 악귀 확률, 더 크고.


Lorsque tu parles, tu ne fais que répéter ce que tu sais déjà. Si tu écoutes, tu apprendras peut-être quelque chose.


148-4.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어떤 본성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