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의학 소설-
어르신이란 표현이 이제 막 어울릴 듯 보이는 초로의 ㅁㅁ가 깍듯한 공간만을 점유한 채 ㅂㅇ 앞에 앉아 있었다. 얼핏 보아도 자기 병약함과 까칠함을 자랑 또는 무기로 삼는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겸손한 태도와 정중한 말투는 교육자였던 그 직업에서 나온 매너일 뿐 그는 결코 겸손하거나 정중하지 않았다. 자기 병약함과 까칠함이 누군가 공격하고 학대했기 때문이라는 확신을 지녔으므로, ㅁㅁ는 겸손한 태도와 정중한 말투로 무장하고 늘 그 누군가를 비난하고 원망했다. 같은 말을 끝없이 되풀이했다. ㅂㅇ의 진단과 처방을 수용하는 듯하다가도 이내 자기 생각으로 돌아가곤 했다.
ㅁㅁ는 두 차례에 걸쳐 제법 오랫동안 ㅂㅇ와 숙의치료를 했다. 그 사이 휴지 기간이 생긴 까닭은, ㅂㅇ가 고통 원인이 그가 지목한 사람에게만 있지 않다는 의학적 진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ㅂㅇ가 새로 지목한 사람에는 부모와 자신이 포함되어 있었다. 반발은 격했다. 필경 ㅂㅇ는 배신자였을 터이다. ㅁㅁ가 치료와 동조를 혼동했으니 말이다. 숙의는 즉시 중단되었다. 이 년가량 시간이 흐른 뒤 무슨 연유에선지 ㅁㅁ는 태연히 전과 같은 얼굴로 ㅂㅇ 앞에 나타났다. ㅂㅇ 또한 태연히 전과 같은 얼굴로 ㅁㅁ 앞에 앉았다.
ㅁㅁ는 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겸손한 태도와 정중한 말투로 자신을 공격하고 학대한 사람을 비난하고 원망했다. ㅂㅇ 또한 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그 말을 경청했다. ㅁㅁ가 지치지 않았으므로 ㅂㅇ도 지칠 수 없었다. 다만, ㅂㅇ는 ㅁㅁ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ㅁㅁ도 ㅂㅇ의 말에 전적으로 찬성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전과 전혀 달리, ㅂㅇ는 단칼에 문맥을 잘라버렸다.
“어르신, 이는 견해차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의학적 진단 결과를 말씀드렸습니다. 이 의학적 진단은 진실 전체 맥락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어르신 찬성을 기다려 타당 여부가 가려지는 사안이 아닙니다.”
확 깨는 듯, 어안이 벙벙한 듯, ㅁㅁ는 한참을 침묵한 채 앉아 있었다. 침묵을 깬 것은 ㅂㅇ였다.
“숙의는 말 그대로 깊게 의논하는 일입니다. 돌이켜 보면 아실 테지만 지난 많은 시간 동안 어르신께서는 오로지 본인 말씀만 해오셨습니다. 제가 제 말을 하는 순간, 발길을 끊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치료는 편들기가 아닙니다.”
지극히 진부한 말이다. 치료 과정에서 아픈 사람 말에 귀 기울여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일은, 문제 되는 그 심리적 실재를 여실히 보아 진실 전체 맥락을 잡으려 함이지, 덮어놓고 편드는 작업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바로 이 대목에서 걸려 넘어진다. ㅁㅁ가 왜 다시 ㅂㅇ를 찾아왔는지 끝내 알 수는 없었다. 추측건대 ㅂㅇ에게 다른 기대를 했다기보다, 그대로는 살 수 없겠다 싶고, 막연히 어떤 돌파구가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결국 ㅁㅁ는 의학적 소견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 다른 이유를 들어 숙의를 완전히 그만두었다.
ㅁㅁ는 그 뒤 이따금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 자기 마음에 걸려 있던 질문을 불쑥불쑥 던지곤 했다. ㅂㅇ는 평가 없이, 반박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답해주었다. 5년쯤 시간이 흘렀다. 바람결 소식에 따르면, ㅁㅁ는 비난과 원망을 전혀 하지 않은 생때같은 가족 한 사람을 잃었다. 이제 남아 있는 ㅁㅁ 편은 누굴까.